시장에서 지금 가장 자랑하고 있는 과일을 산다.
나물은 아직 어렵지만 정신을 놓아버리면 금방 퇴색되어 버리는 채소들도 산다.
헬스를 다시 끊어야 한다. 벌써 몇 번째 재등록인지 모르겠다.
이게 몇 년째 인지 모르겠다.
이러한 한 묶음이 마치 성공가도를 달리는, 몸과 정신의 이해가 빠삭한 인텔리의
하루 같다. 그러나 항상 극단은 서로 닮아 있어서 이건 팔자 좋고 머리 좋은 어떤
이의 하루치가 아닌, 저 서클 중 하나만 빠져도 금세 하강나선을 그리는 어떤
우울증 환자의 회생루틴이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마치 류시화작가의 책 『당신을 알기 전까지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처럼
나도 우울증에 걸리기 전까지는 저런 것들 없이도 잘 살았다.
사치재가 사치 재였달까.
과일, 있으면 먹고.. 아니 엄마가 턱 앞에 가져다 놓아도 그릇을 다 비우는 법 없고
채소, 피할 수 있으면 피했다. 어쩌다 운대가 맞으면 스포츠는 즐겼어도 매번
헬스장에 따로 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우울증에 걸리고 나사 저런 사치재들이 고스란히 필수재가 되어버렸다.
우울증에 오직 우울증 약값만 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만 감당하고 산다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우울증은 그런 게 아니었다.
'정신과 약'이라는 것에 너무 큰 결심이 들어가서 인지
나는 약에 거는 기대가 있었다.
내 결심만큼 효과로 등가교환 해주길 하는 마음.
그런데 약은 그냥 약이었다.
요술봉이나 할 일을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었다.
약은 그저 최후의 저지선 정도인 것이고
그 외에는 오로지 다 내 몫이었다.
그게 다 시간을 다시 들이고, 돈을 다시들이어야 하는
내 우울증의 거대한 부대 비용이었다.
나만 내 증상보다 낮은 약을 원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처방받은 약을 먹으며 적절한 우울선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 나빠져서 나쁜 마음먹는 극단까지 가지 않는 선을 말한다)
나는 상담, 영양, 신체활동에 돈과 시간을 가장 많이 들였다.
애초에 상담치료를 주로 해서 그런지 나는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상담이 불가피했다.
회당 10만 원, 그보다 더 적게 양질의 상담을 받을 수 있는지 발품을 팔고
시도해 보고 결렬되는 것까지 다하면 굉장히 값비싸고 지난한 과정이다.
약으로 조절한다 해도 스트레스는 여전히 산재하고 스트레스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도 많아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영양분 섭취 흩날리기인데 그렇게 되면
똑같이 먹고도 자고도 반타작만 하는 격이라
기력과 기분에 크게 관여하고 그건 다시 악순환이 되어 더 큰 우울과 스트레스를 부른다.
그러니 애초에 문지기 두 명을 세우는데 그게 잘 챙겨 먹기와
해 맞으며 걷기 등 신체활동을 하며 보다 나은 양질의 수면취하기이다.
잘 챙겨 먹기가 또 비싸고 거기서 거기인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부터 지켜 준다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헬스장 가기는 소리지르며 쓰러지고 싶은 마음을
해소해 주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
너무 거창한 것을 하려고 하면 그 압박감에 다시 학을 떼겠지만
팔꿈치를 잡아 허리를 늘리는 일, 집에서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헬스장에 간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잔잔히 기분방어가 된다.
이 모든 과정
이 모든 지난한 과정이 내가 우울하게 태어나서
드는 비용이라면 너무 외롭지만
자기 돌봄에 대한 비용이었다면 또 용하지 아니한가.
다 적고 보니 이 모든 행위가 우울증 부대비용이 아니라
우울증 핵심비용이었네.
나는 항우울에 팔과 다리를 붙여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네.
지금은 방어전에서 피어난 전술이었지만
부디 훗날의 전면전에서도 쓰일 수 있게 자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