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이지 양치가 싫다.
그래서 건강검진 구강 진료를 받을 때면 조용히,
선생님 제가 유치원 생도 아닌데 양치가 너무 싫어요라고 말해버리곤 했다.
그럼 누구한테 말하겠는다. 이미 이를 섞여 만난 치과의사에 말하겠는가
아니면 정신과 의사에게 말하겠는가.. (정신과 의사에게 말해도 된다)
그러면 치과의사 선생님은 아이고 그래요?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치아상태가
양호하신데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다.
그리고는 치과에 가면 다시 충치가 많아요. 라며 치료를 잔뜩 받고 나오는 게
미칠 노릇이다. 정말이지 우울하다.
물론 이 역사에는 정신과의사에게 말해도 될만한 배경이 있다만.. 어쨌거나
드르륵 이가 갈리고 과잉진료인지 적정진료인지 모를 치료를 받고 지갑을
털리고 우울함에 사무치는 건 오로지 내 몫이지..
하여간 그다음 해 역시 건강검진을 갈 때 이미 그해에도 충치치료를 받고 온 상태인지라
선생님을 붙잡고 또 말했다.
저.. 선생님…. 제가 이가 많이 썩은 편이죠?라고
선생님은 차트를 적다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더니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네? 아니 제가 어금니는 뭐 거의 다 때웠잖아요.. 아니..
나는 우울해서 더 말을 잇지 못하자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음 아니에요. 이가 많이 썩은 그룹과 안 썩은 그룹으로 나눈다면 본인은 안 썩은 그룹에
속해요. 그 그룹 안에서는 물론 이가 1번만 썩은 분도 있으니 많이 썩은 편에 속하겠지만요.
네..? 아니 그래도.. 하며 나는 딱히 말을 찾지 못했다.
나는 선생님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치과 갈 때마다 형편없는 환자 역할이었고 집에서 치과비로 손을 벌릴 때마다
너는 우리 집에서 이 제일 많이 썩는 애라고 이마에 도장이 몇 번이나 찍혔는데
그게 모두 아니라니 아니라니
인간이란 건 정말 형편없구나..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그냥 자기가 평생 듣고 자라온 말을
진짜라고 믿으며 사네.. 그게 뭐든 간에.. 많이도 필요 없고 가족 울타리에서만 별라도
세상 별종인 듯 알고 사는구나
하지만 나는 당장은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오래 나는 부끄러울 정도로 치과치료를
많이 한 인간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으니까.
선생님이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와 이익관계도 없는 의사의 말인데도 믿을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의 구강상태보다 더 수백만명의 치아를 보고 통계를 내린 건데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사실 나중이 무서웠다.
이 상태로면 임플란트얘기 나올 확률이 더 높을 텐데 지금의 의료기술은 내게 의아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길에 차이는 임플란트 광고 배너를 보면 무슨 잇몸 안에 드라이버 같은
거를 박아 놓고 자랑하는데 내 뇌는 그럴 때마다 이게 도대체 뭐지라며 그 사실을
매번 떨쳐내니..
이런 구조와, 치과 VIP인 나인지라 나는 마저 치과 전문의를 붙잡고 말했다.
“아니요 이게.. 하 늙어서는 어떡하려.. 아니 늙으면..”
“늙으면 늙어서 걱정하면 돼요.”
“네?”
이번엔 내 쪽에서 눈이 동그래졌다.
“늙으면 늙어서 걱정하면 된다고요.”
순간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아 무안해서 웃어버렸다.
이상한 사람 같잖아.
“치과 위생 문진표 있죠? 여기에 일단 만점을 채우시면 돼요. 양치, 하루 4번.
자기 전에는 무조건 치실 당연히 하셔야 하고요. 그리고 담배..”
“저는 담배 안 해요. 술도 안 찾고요”
“아네 뭐 근데 사실 술이 크게 문제 되는 건 아니에요. 술 먹고 뻗어 자는 게 문제지
술 먹고 양치하고 치실하고 잔다? 그럼 다른 게 문제되지 치아에는 사실 이상 없어요”
나는 그해에도 치과치료를 받고 연거푸 이 3개를 치료해야 한다고 해서 혹시나 해서
그것도 보여주니 대답은 충격이었다.
몇 번을 유심히 보시더니, 음.. 글쎄요. 다른 병원을 한 번 가보세요.
뭐 엑스레이 상으로는 다를 수 있지만 제 소견으로는 없어 보입니다.
나는 그 희소식에 흥분하며 진료실을 나왔다.
돈 굳었다 돈 굳었어 얼마나 벌벌 떨었는데 3개 연달아? 100 정도는 들 거라고
아이고 목돈 굳었다 굳었어하며 아는 모든 사람에게 자랑까지 했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예리한 그 문장을 다시.
‘늙어서는 늙어서 생각하면 돼요.’
그건 무슨 말일까.
글쎄 그런 말 자체를 처음 듣는 건 아니지만
질병을 앞에서 그런 말 하는 의사는 나 처음 본 것 같은데
그건 대체 무슨 말이었을까
한참을 생각하다 그 생각의 덜미를 잡고 보니
그거였다.
왜 젊은이가 늙은이 고민을 하냐는 거네
철학적이네
그래 왜일까
아 그래 그 차이였다.
나는 늙은 이는 아니지만 ‘늙을 이’여서 그 고민을 한 거고
선생님은 아니 그건 늙은 이의 고민이야 젊은 이의 고민이 아니지.
벌써부터 끌어다 하지 마.라고 딱 잘라 말한 것이고.
“일단 여기 체크하는 문진표 있죠? 이거나 만점 받으세요
그리고 그다음은 늙으면 그때 고민하세요.”
어떤 일을, 인이 박히게 하는 사람이 그것을 현명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품은 철학을
나는 너무 좋아한다. 그 선생님은 어느 분야에 종사했든 간에 그렇게 말하겠지
한국지리를 가르치는 사람이어도, 고기를 끊어파는 식당 사장님이어도, 요가 강사여도.
난 희한하게 불행이 닥치면 그게 영원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왜인지는 모른다.
근데 그건 불행의 성격 중 하나인 것 같다. 두 눈을 가리고 시간성을 뒤에서 잘라가
버리는… 웃긴 건 나도 불행해 우울한 친구를 위로할 때 ‘지금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고 단호히 말해놓고
다시 내 집으로 돌아오면 백 년도 못 살 거면서 천년짜리 근심을 이고 지고 살려 근력을
기르곤 했지.. 정말이지..
‘미래에~’ 란 주어만 지워도 머릿속에 얼마나 가벼워지는가.
‘~어떡하지’란 술어만 지워도 막 더워지는 여름날에 술 많이 친 머리카락처럼
사는 게 얼마나 가벼워지겠냐고..
이거 보세요 나는 늙을 사람이라고요!
라는 뿌리에서 나온 싹을 단번에 잘라버린 나의 건강검진 치과 선생님
굳이 왜그랬냐하면 글쎄요. 힘이 아마 넘쳐가 그랬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