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이럴 때가 아닙니다.
지금 학문하실 때가 아니어요.
자 제가 보는 요가 명상 채널, 아까 말한 명상 책은 이거예요.
그리고 제가 추천하는 심리학 실용서는 땡땡땡, 뇌과학 책은 땡땡땡입니다.
다음 만날 때까지 이 중 하나라도 들여다보고 오세요.
확인할 거예요.
나는 나를 서포트해 주러 와 준 교수님에게 돌연 역으로 열변을 토하고 있다.
아우토겐 트레이닝 방법을 알려드리니 그건 뇌를 속이는 거잖아
라고 하시길래 우리는 끝없는 망상으로 또 뇌를 속이면서
이건 안된다는 건가요 라며 개조를 시도했던 그 대화 후에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노파심에 책 한 권만 딱 정해 제목을 보내드리니
이윽고 교수님께 답장이 왔다.
우울할 땐.. 술 아닌가요
아뇨 아니요 교수님 제발..
뇌과학 책의 바이블, 뇌과학 책의 황금 종려상, 월계관 씌워 보관해야 될 책 1위
내가 보낸 책은 바로『우울할 땐 뇌 과학』이다.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너무나 좋은 인연이나 연인을 만나면
괜히 흔하디 흔한 첫 만남을 갑자기 핀 조명 때려 숭고하게 되새김질해보는 그런 때.
그 책과의 처음을 말하자면 처음에 북디자인이 너무나 천재적이라고 생각해 집어 들었다.
우울할 땐 뇌과학? 우울할 땐 니체 책제목 구조 따라한 거 아니야?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수억 개의 노랑 스펙트럼 중에 기가 막힌 옐로우를 뽑고, 핵심개념을 말끔한 드로잉으로
뽑아 획 안에 착착 수납해 배치한 것이 퍽 안정적으로 다가왔다.
제목 배치 역시 패턴의 일환으로 줄글 형태가 아닌 일관성에 더 초점을 맞춘 것도 좋았다.
이 정도 박자가 다 맞아 들어가 기는 힘든데,라며 혹시 날개에 북디자이너 이름이 실려있을까
뒤집어 보기까지 했던.
지금 생각해 보니 여러모로 우울증에 조예가 깊은 편집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이제 대망의 속을 들여다보는데 세상에 펼치자마자 "뇌"를 설명하는
그림이 여러 장에 밑도 끝도 없이 변연계 편도체 타령을 하는데..
이보세요.
하 정말..
이래서 학자는 싫다니까
당신 우울증 안 앓아 봤지? 우울을 머리로 알면 꼭 이런 사달이 나요..
우울증 환자는 활자를 읽는 것도 풍파인데 무슨 뇌 그림을 그려놓고
거기 부위별로 설명을 하고 있냐고 누굴 위한 책인 건데 이거 기만이야 기만
우울증 환자 위한다고 해놓고 공부부터 시키는 책이 이미 그것부터 어불 성설이
아니면 뭐란 말이냐 라며 책을 팽 내려놓고 다신 보지 않았던 게 이 책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러다 돌연 꿈처럼 중간과정이 생략되고 어느새 나는 운전면허 학원을 통학하는
긴 시간을 지하철에서 주행코스 외우는 이 책을 뚫어져라 보는 내가 나타났다.
이 책을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빌리고 그리고 쓰고 다시 그려보기를 반복,
한마디로 푹 빠지게 되었다.
책은 굉장히 유려하게 흘러간다. 어렵지 않게 설명하며, 과한 의미부여부터
내려놓아 무게를 떨어트리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개진하려는 게 보인다.
이 책이 그간의 책과 다른 이유는 말장난 같지만 다르게 시작해서 다르다.
나는 좀 오래전부터 과하다면 과하게 심리학 서적만 오래 보며 자랐는데
뭔가를 알고 싶어서 든 책이 '어린 시절 애착의 패턴으로 아이는 자라서도 평생
그 패턴으로 애착관계를 맺는다.'는 식의 마침표 같은 정보 위주의 책에
진저리를 쳐와서 인지 그런 쪽에 예민한데
이 책은 초반에 그 뇌구조 공격(?) 말고는 전혀 그런 두드러기가 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노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뇌의 가소성'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낙장불입 같은 개념에 반대편에 있는 것.
뇌의 가소성이란 인간의 뇌는 고정된 것이 아닌 오히려 찰흙처럼
무언가를 배우고 경험할 때마다 신경세포들의 연결이 바뀌고 회로가 강화되거나
약화되는 유동성이 특징이라는 말을 볼 때 얼마나 놀랐던지.
내게 윤이나는 개념이었다.
표지도, 핵심내용도, 전개도 탁월해서 사랑했다 해도 충분하지만
이 책을 깊게 들이게 된 이유는 사실상 좀 엉뚱한데 있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물리치료를 굉장히 오래 받아
당시 물리치료 유튜브 영상을 습관처럼 보곤 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외운 듯 한' 대사를 꼭 한 번씩 하는데 그게 바로 수행 전에
주의사항으로 "통증을 유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평생을 통증을 유발하는 범위 내에서 살아왔다.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는 게 무슨 효력이 있어? 라며 나는 그 경계를 잘 몰라했다.
감각이든 계획이든 언제나 괴롭고 무리하게 잡아놓는 바람에
운동을 해도 너무 과하게 해서 운동을 쉬어야 하는 날이 꼭 생기게 하거나
계획을 세워도 너무 장대하게 잡아 (당연히) 실패하곤 자책하기.
그게 내 오랜 물레방아였다.
평생을 그렇게 살다 본 그 말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단 몇 분이라도 산책할 것"
단 몇 분이라니..
단 몇 분만이라도 산책하라니
그걸로 뭘 하라고
그걸로 뭐가 된다고
근데. 그걸로 뭐가 기어이 되었다.
나의 '단위'를 파악하고 그걸 좀 쪼개보기 시작했다.
동대문에서 '마'단위 이상만 파는 사람처럼 구는 건 그만하고
티코스터로 쓰기에도 작을 단위부터 좀 만들어보자 그랬다.
작은 게 작은 것이 아닌 걸 알게 된 후에는 그 행동은 저절로 강화되었다.
스트레칭이라도 하세요, 30분만이라도 운동하세요,
몇 정거장 전에 내려 집까지라도 걸어가세요 같은 작은 단위의 조언을 들으면
나는 그게 무슨 운동이냐며 아예 안 해 결국은 마음먹고 팔 걷어
붙여지지 않는 이상 운동 0인 인간에 수렴하게 되는 걸 반복해 왔음에도
딱히 개선되지는 않다가
우울이 깊어 단 몇 분 밖에 기력을 낼 수 없게 되자 그것들이 비로소
내 말이 된 것이다.
그렇게 단 몇 분에 꽂혀 나는 총각무 같던 심리대중서는 잠시 뒤로한 채
뇌가소성만 말할게! 라며 가벼운 톤을 가진 이 책을 정말이지 여러 번 읽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