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처음의 시작

by 내담자 Jay

나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그리고 그 아웃풋은 내 독립한 부엌에서 처음 발생했는데

한꺼번에 왕창 설거지를 하고 건조대를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현대미술이 따로 없었다.


‘흔하고도 기괴하며 새롭다..!’ 비평까지 할 수 있을 지경이다.


설거지라는 건 내게 노역.

집안일을 싫어하는 건 아닌데도

희한하게 설거지만 싫어하고 미뤄하다 보니

한번 하고 나면 그렇게 작품하나가 뚝딱 완성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에 비하면 그리 많지도 않은 양을 설거지하고 있었는데

돌연 숨이 차서 설거지를 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나는 너무 많이 많은 복서처럼 개수대에 팔을 걸친 채

허리를 숙이고 헉헉 거리고 있었다.


나는 약간 나만의 철칙 같은 게 있는데

축구를 좀 좋아하는 사람은 알 수도 있는데

선수들이 훈련 중에 숨차서 허리 숙이면 코치한테 엄청 혼나는 거 아시는지.

"경기 중에도 허리 숙일래!!" 하며 바로 고함이 바로 날아온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허리를 숙이면 힘이 풀린다.

뭐랄까 시동이 한번 꺼지는 것 같달까.

그 이유 때문에 우리 몸은 숨이 차면 무의식적으로든 하나같이 그러는 건데

급박한 경기 상황에서 언제 쉬고(이완)-다시 힘주고(수축)- 돌진하겠는가

또 한 번 푼 나사를 다시 조이는 건 전보다 배로 힘드니 아예 그 습을

떼어놓게 하는 것..


그렇다고 내가 훈련을 따로 받아 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구기를 너무 사랑한 탓인지 운동선수 DNA가 돌고 있는지 탓인지 몰라도

어찌 되었든 나는 숨이 차도 웬만하면 허리를 안 숙이려 한다.

차라리 빙빙 자리를 돌아버리고 말지.


그런데 뜬금없이 설거지하다 그 사단이 난 것이다.

격한 운동 중도 아니고 겨우 설거지거리 몇 개 씻다가

중단하고 헉헉거리면서 숨을 고르고 있다고?

이 상황이 조감되자 나는 위협감을 느꼈다.

설거지도 힘들어서 타임아웃을 외치면.

나는 어떡하란 말인가?


나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문을 박차고

냅따 하천으로 뛰러 갔다.

그게 달리기 처음의 시작이었다.


그때 내 뒤꽁무니는 몰랐을 것이다.

그 후 달리기라는 게 수년을 우울로부터 나를 묵묵히 지탱해 줄

대들보가 됐을 줄은.


그리곤 그 주에 정신과에 가서 나는 말했다.

아 맞다 선생님 그리고 저 달리기 해요.

설거지하려고.



- 처음의 시작


나는 좀 여러 영역에서 고루고루 실패를 많이 해봐서

성공하는 법은 몰라도 ‘이렇게 하면 학을 떼고 다신 하지 않는 법’은

어느 정도 정립된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하루 이틀 달린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길게 갈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전략을 짰다.


이를 테면 1km를 최단시간이 목표가 아닌

최대한 발자국이 많이 찍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라고 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엇. 근데 의외로 그게 재밌었다.


속도문제가 아니니 우리가 익히 아는 전투적인 자세가 나오지 않고

위로 콩콩 뛰듯 달리다 보니 기분도 같이 콩콩 뛰었다.

‘전진’에 별 관심이 없으니까 그냥 하나의 놀이 같았다.

너무 느슨한 퍼포먼스에 전투태세를 갖추고 싶다가도

"자자 하나만 생각하자.. 만약에 여기서 덧붙이기 시작하면

이 운동에 두 번은 없을 것"이라고 나를 달랬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짧은 거리를 몇 개월을 콩콩 뛰기,

최대한 발자국 많이 찍는 방식으로 달리기를 계속했다.

호전성이 사라지니 두 번도 가고 세 번도 가지더라.

그렇게 나한테는 없던 일인 '여러 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6은 큰 수.


그렇게 달리기를 생활에 넣고 살던 어느 날 교수님을 만날 때 일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 요새 심리적으로 힘드시다고 하신 교수님에게

나는 자연스레 조깅을 권해드렸다.

그랬더니 오, 그 말 또 듣네, 내 지인도 달려보라고 하더라고

그 사람은 어느 소속에 들어갔어요. 어디서 뛴다 그랬더라..

오 보니 J 씨 집 근처네 여기가

하여간 여기를 모여서 같이 뛴다나 그런가 봐요.

그런데 나는 6분만 뛰어도 못 뛰겠던데 너무 힘들어서

라고 교수님이 말이 끝나자

나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교수님, 6분이면 많이 뛰신 건데요.

6분 뛰는 게 얼마나 힘든데요

제가 6분 뛰기까지 얼마나 걸렸는 줄 아세요!!!!

6분이 얼마나 힘든데 얼마나 고비인데!!!!!라고 까지는 말하지 못했다.

다음에 교수님 또 만나고 싶으니까.

점잖게 전자까지만 했다. 교수님 6분이면 많이 뛰신 거예요.

그것도 처음이시라면서요. 6분이면 많이 뛴 거예요..


너무 반짝거리고 화려한 세상에 내 6분이 담길 바구니는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너무 나고. 내 세상을 살아가는 건 나 자신이어서

끝없는 달래고 타협한 세월이 내가 달린 역사보다 길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몇 개월을 그 상태로 답보하고, 그 마저도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하는 바람에 못난 남편 숨기듯 자꾸 숨기고 싶은 내 달리기 타임라인이지만.


그게 뭐든지 어떤 변화가 최선의 결과를 내놓는다면

우리는 그 변화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10km 정도는 주파할 수 있게 되었거나,

몸이 눈에 띄게 가벼워졌다거나 한다면.


하지만 그다지 사랑하지 않을 변화도 사실은

이미 최악은 면하게 해 주었다는 걸 생각하면

시간 날 때마다 뒤로 숨기려 할 일은 또 아닐 것이다.


이미 내가 설거지할 때 너무 많이 맞은 복서처럼

이젠 쉬고 있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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