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도 멈추지 않았던 꿈의 대화를 지난 몇 년간 기록하고 해석해 내었다. 글로 표현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던 차, 마음의 작은 공간을 내어 심리 치유 겸 그림을 그렸고, 인고의 연습 끝에 꿈과 자연의 영감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표현해 내기 시작했다. 첫 시작, 그곳에 도착하기까지의 망설임. 또 다른 세상 속 편견의 시선들을 열심히 회피한 끝에 필자의 작은 세상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때마침, 글은 산속 어딘가 고요히 흐르던 작은 물줄기를 따르기 시작했고, 그 여정에서 작지만 위대한 사람들의 글을 발견하며, 인간의 표현 방식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게 된다. 사람마다 삶을 통해 각자의 깨달은 바가 있는 것도, 동 * 식물 그리고 우주 지구와의 관계 정리 또한 이쯤에서 하게 된 것 같다.
의식의 방향과 불규칙한 감정들의 얽힘은 삶이 보여준 환영들의 편견과 시선을 그대로 보여주며, 자연 그 자체인 “모두”를 멀찌감치 빗겨 세우고 정렬하고, 우월성을 강조하며, 탑처럼 누가 먼저 쌓았느냐, 누가 완벽하고 정교한 탑의 구조물을 발견하여 안정감을 주었는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게임 속으로 끌어들인다.
의식 저편에 존재하는 무수한 죽음들이 바로 곁에서 비처럼 흘러내리고, 흐르며, 그로 인해 감각적으로 만져지는 모든 것들이 훌륭한 스승이란 것을 깨우치는 날에, 자기 자신으로써 작은 세상의 틈을 발견하고 비집고 들어가 탐구하며, 비롯소 삶의 환영에 사로잡히지 않고 삶을 그려내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킨다.
꿈[무의식]과 현실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면서도 괴기스럽기까지 하지만, 고유한 그곳의 영역은 핑크빛 구름을 아주 손쉽게 얻을 수 있고, 어렵지 않게 공중부양을 하기도 하며, 스산한 분위기 속 커다란 가치를 발견하기도 하는 초현실적 그림 한 장을 순수히 삶 앞에 내려놓는다. 복잡함을 넘어 왜곡되고 가끔은 어이없으며, 가슴에 쌓인 신랄한 비판이 가능한 그곳의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표현의 분출구이자, 무의식의 순수한 대화이다.
잠시 곁길에 취하던 작은 꿈의 대화이자 또 다른 세상, 어쩌면 다른 세상처럼 보이는 공간에서의 질문과 탐구심을 자극하는 시간. 자신의 이러한 발견은 순간적 호기심의 자극, 때에 따른 엄청난 고통을 가지고 현실이란 세상과 맞닥뜨리게도 한다.
당신의 꿈속 손길은 표현의 아름다움이 꼭 아기자기하고 특별해야지만 가능하다는 편견 따위는 없다. 그건 당신을 살리기 위한 메시지일 수도, 타인의 삶에 대한 통찰, 그로 인해 돌아볼 수 있는 자신의 세계 등 많은 것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인간 내면 세계의 고유함을 통찰하게 한다.
개인의 삶 속 스며든 꿈과 기억, 한 인간이 고뇌하고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매일 밤낮을 그 고통들과 함께 나뒹굴었을 때에야, 온몸을 적시는 식은땀으로 눈물인지 땀인지 알 수 없는 아침을 맞이했을 때에야 진정으로 깨닫게 되는 고유한 서사가 어느 날 그렇게 탄생되는 것처럼 말이다.
정형화되고 이해하기 쉽게 그려진 그림 자체로 표현할 수 없는 한 폭의 영감 속 작가 본연의 영혼이 깃들어 있음을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내면에 존재하는 또렷하고 의식적인 흐름과 땀의 눈물, 시간을 알 수 없는 그 속의 무게감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기에 동료들은 누군가의 삶을 도둑질할 염치와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만의 고유함을 흩어져 버릴 것들에 기대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며, 한계란 것의 무의미함을 깨닫는다. 그것은 당신만이 느끼고 깨달은 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며, 자신에게 반드시 존중받고 배려받아 마땅한, 어떠한 대가도 무의미하게 만드는 유일한 사랑 자체가 바로 자신이란 것을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덕과 윤리는, 온전히 받아들이는 자신을 통해 사랑이란 씨앗을 머리가 아닌 자연이 흩어지게 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부담스럽지도 억지스럽지도 않다. 그 자연스러움이 곧 당신이며, 그렇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무엇이 당신의 마음에 사랑대신 쓸쓸함을, 고독 속 피어나는 생명의 뿌리를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인가. 당신은 새로운 계절을 계획하고 당신만의 위대함을 준비하고 있다. 보이는 것 뒤의 본모습을 당신 영혼은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왜 당신은 당신의 삶이 멋지지 않고, 부족하고 아름답지 않다고 거짓을 이야기하는가. 자신의 고유함은 어디 내다 버리고, 텅 비어 있는 채로 응시하는가.
삶이 준비한 모든 사랑을 왜 당신은 그토록 외면했는가. 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랫말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충직하게 삶을 살아온 자신만은 아름답게 바라보지 않는 것인가. 당신에 관해 아는 바가 없지만, 조그마한 당신의 숨결조차 계절의 첫 이야기를 이제 막 시작하려 움트는데, 자신에게로 향하는 길 위에서 지금껏 묵묵히 걸어온 당신이란 외면당한 존재는 도대체 어디에 머물러야 하는가.
고집스러운 신념이자 읽히지 않는 낡은 도서관 속, 구석진 작은 세계일지라도 두근대는 마음으로 사랑해 줄 수 없는 일인가!
읽히기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두근대는 마음으로 시공간을 너머, 서로의 에너지가 맞닿을 날에 또 다른 존재로써 당신을 만날 날이 올 수 있겠지만, 그건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미처 나누지 못한 한 인간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가 될지도 모를 일이지…
다각적인 필자의 글이 위로가 되었다가도 호통치는 벼락같은 감정처럼 필자 스스로의 애타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누군가를 향한 비판이 아니다. 필자의 애타는 마음과 감정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으며, 사랑받아 마땅한 누군가의 애처로움이 미쳐 전해지지 못한 채, 불안정하고 서툰 대화의 끝 그 공허함 속 스스로에게 외치던 무언의 사랑표현이자 외부로 흐르는 서툰 사랑표현의 일부일 뿐이다.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 감정 속에서 격해지는 에너지, 마치 번개처럼 필자 내면과 외면에서 일어나는 작용들이 당신에게 상처를 줄 수 없는 그저 자연스러운 한 인간의 표현이자, 울림일 뿐.
“모두는 내면을 사랑할 권리가 있다. 자신과의 대화는 스승과도 같아서 그 누구의 어설픈 위로나 조언 보다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세상을 통해 외치던 물음을 자신에게로 향하는 날카로운 창이 되지 않도록, 그렇게 애처로움과 사랑을 담은 시선으로 상처 입을 수 없는 존재로써 당신 스스로의 힘을 깨닫기를 바란다. 그 누구도 당신을 아프게 할 수 없으며, 당신이 될 수 없다. 온전한 나 다움은 하나의 작품으로 진동하는 당신의 세계가 이미 여기 존재함을 이야기한다. 그곳에는 타인의 것을 원하는 비루함도, 그들의 사상을 내 것이라 착각하는 연약함도, 침략당하는 자들의 노고와 피와 땀을 외면하는 무지함도, 자신의 고유함을 적이라 착각하는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는 이미 그렇게 만들어진 온전한 존재이다.
동료들에게… 그대가 웃는 날이 더 많아진다면, 그것은 자신을 바라볼 때이기를 바랍니다. 그대가 행복한 날이 더 많아진다면, 그건 그대가 자신과의 시간을 기쁨으로 채우는 시간이길 바라봅니다. 그대의 희생은 날 웃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의 기쁨과 행복이 날 더 웃게 했을 것입니다. 어딘가는 희생을 강요하지만, 누군가는 당신의 행복을 바랍니다. 그래서 그렇게도 복잡했나 봅니다. 위대한 나의 동료들에게… 닿았습니까? 거기 계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