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이열 <느린인간>과 나무이야기 들어보실래요?

by 김경진

회화는 백지에서 시작해 화가의 상상과 생각을 담는다. 사진은 카메라라는 프레임을 통해 실제 존재하는 사물의 일부분을 잘라내어 사진가의 의도와 생각을 담아낸다. 실제 사물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것에서 사진은 회화와 큰 차이가 있다. 사진의 한 분야인 다큐멘터리는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존재하고, 또 다른 한 분야인 파인 아트 사진은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미학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존재하는 것에서 어떤 상징을 찾아내어 작가가 가지고 있는 미학과 철학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더 어려움이 있고, 어쩌면 이로 인해 어쩌면 더 큰 매력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여기, 수안보에서 살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1시간을 걸어다니면서 학교를 오가던 길에 만나는 고목, 서낭당, 누각을 마주하며 경험한 기억들은 풀어내는 이야기꾼이있다. 시골에서 살던 그에게 나무가 친구였고, 놀이터였다. 나무라면 인생을 걸어 이야기할 것이 많은, 작가로서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고 작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무사진가로 살아가는 이가 바로 이열이다.


나무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 나무가 있기에 우리는 숨을 쉬고 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존재에 대해 우리는 소중함을 잊고 산다. 작가 이열이 말하는 나무 이야기는 한낱 개인이 좋아하는 대상을 넘어 그 안에 우리에게 주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공존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번 전시 주제이면서 발간된 포토에세이 <느림 인간>은 그것을 이어가고자 하는 그의 소소한 기록이자 중대한 유산을 남기는 과정이라고 본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전시를 소개한다.

라플란드는 옷가게에 진입해야 들어갈 수 있는 문화공간세계다.

2층에오르면 갤러리 겸 복합문화공간이 펼쳐진다


삼청동길 여성들의 눈을 사로잡는 옷가게는 그곳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아!거기! 라고 하는 곳. 안으로 들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라플란드라고 하는 갤러리이다. 파벽돌, 그랜드 피아노, 클래식한 음향장비, LP판, 나무테이블들이 노랑 조명에 서로 묘하게 어울리는 이곳 분위기는 따뜻했고 호기심레벨 급상승공간이다. 때론 이곳에 ‘연주가 흐르겠고, 강연이 있겠고, 작품을 볼 수 있겠고...’ 이 공간에 문화예술이 한껏 뿜어져 사로잡혀 눈이 빛난 사람들을 상상해보며.

난 공간에 대한 빠른 인지와 함께 벽에 전시된 나무작품을 휘날리는 속도로 가로스캔에 들어갔다. 국내외 곳곳을 돌며 만난 나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프레임 속 주인공은 고흐의 자화상만큼이다 전면을 채우는 압도적인 아우라를 뿜는 나무들이다.



“나무는 느린 인간이고, 인간은 빠른 나무다”



이열 느린인간표지.jpg

이번 전시주제 <느린인간>은 나무을 인간에 빗대고, 인간을 나무에 빗대어 남겨놓은 작가의 한줄 기록이다. 그간의 작가노트가 모이고 모여 소중한 기록이 되니 어느덧 쌓여 마흔 한개의 이야기들로 엮였고, 저마다 갖는 매력을 담은 수식어로 마흔한개의 나무들을 소개하고 있다. 얼마나 전국을 다니고 세계를 누볐는지 작가의 발에 땀이 나도록 다닌 흔적들이 목차에서도 느껴진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 만나는 밤과 마주한 나무, 그리고 고요한 그곳에 쏟아지는 자연의 세계. 그것은 그 시각 작가만이 느낀 신비로운 우주의 세계일 것이다. 그것을 글로 옮기기에, 그것을 카메라에만 담기기엔 아쉬운 영역이 분명 있어보인다. 그리고 전시공간에는 책 속에 펼쳐진 이야기들의 주인공 10점의 나무들이 선보여졌다. 이열작가는 와인을 들고 그 나무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었다. 덩달아 와인을 들고 한 모금씩 해가며 듣는 이야기는 내 영혼의 절반정도가 그 때 그순간으로 날아가보는 것이었다. 다 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 현장에 있지 못했기에.

천년의 올리브 나무 하트를 닮은 푸른 올리브 나무 2018


작가는 이탈리아 바리의 수천년된 올리브나무를 촬영하러 갔다. 꿈꾸던 올리브나무 촬영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무껍질을 만지는 게 아니라 돌을 만지는 듯했다. 밤이 오길 기다리며 아이들과 함께 조명연출을 통해 사진에 담아냈다. 하트모양의 거대 올리브나무에 신비감이 더해져 세월을 이겨낸 우람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트트리 시리즈 / 대청 1, 2019


내 눈에 가장 띄었던 작품이다. 선암시 탑비전 참누무 편에 나오는 대청댐의 참나무이다. 파벽돌에 가장 잘 어울렸고, 조명에 비췬 나무의 컬러와 바탕색의 보색대비가 매우 매력적이다.

애월읍 자리왓 폭낭


제주에서 팽나무를 폭낭이라 부른다. 표지석에는 4.3의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는 글이 새겨져 있다. 4.3사건의 서러운 역사를 휘어 안고 바람을 맞은 폭낭의 휘어짐의 자태가 경이롭다했다. 숫하게 이 자리를 오갔고 가장 슬픈 순간이 왔을 때 조명을 하고 셔터를 눌렀다. 함께 선 비석에는 잊지말자는 아픈 역사를 오롯이 남겨두었다.

눈이 한없이 내리는 나무 주변에 작가는 회화적 요소를 가미했다. 문득 잭슨폴락이 뿌린 하얀 물감같았다

신안신목 시리즈 , 자은도 팽나무 2022

신안신목 시리즈 -> ‘녹색낙원_피지’ 시리즈달과 맹그로브_Tokuo, 2023



윤슬 한가운데 맹그로브나무가 우두커니 서있다. 어둠에 밝혀진 녹색맹그로브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모든 작품을 여기 보이지 않는 것은 직접가서 보고 듣는 즐거움을 남겨두기 위해서다.


<느린인간>으로 만나는 마흔한개의 이야기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며 작가의 마음속 이야기를 한껏 풀어낼 수 있는 가장 편안하게 기대어 나눈 소소한 이야기같은 거였다.


계절의 변화가 나무와 그 주변을 물들이면 다른 모습으로 마주하게 될 이들, 또 그 때마다 무한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법한 나무이야기들을 책으로도 만나보길 바란다. 빠름의 속도에 지친 우리들에게 자연은 우리에게 천천히 가라고 말하는 듯 하다. 나도 일상에 지치면 숲을 찾고, 공기좋은 곳을 찾아 헤맨다. 우린 어쩌면 가장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본능적으로 찾는지도 모른다. 쉬고 싶다면 나무가까이 가보라. 세월을 이겨낸 인고의 주름진 껍질과 휘어진 줄기가 우리 내 인생의 여정과 흔적들을 아련하게 기억하게 해줄테니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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