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누아르-ENFP-알렉스카츠-마크로스코를 잇는 감정간극
대학교 4학년때 한 강의시간의 일이다. 강의 초반에 교수님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가 나의 뇌와 심장을 흔들어놓았다. 모든 시간이 자유의지에 의해 쓰여지는 대학의 문으로 들어오니 자기자신을 얼마나 당기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교수님이 40여명이 되는 학생들을 한참을 아무말없이 쳐다보신다. 웅성웅성 그때까지도 눈치를 못챈 4학년 학생들은 수다스런 자기 말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출석을 부르는 동안도 결석이 많고 늦게서야 들어오는 학생들도 있다. 시작을 안하니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학생들 사이로 침묵이 돌았다. 입을 여신 교수님
“지금쯤이면 내 미래를 걱정하느라 잠이 오지 않아야합니다”. 안오고 지각하는 해이한 태도들에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었다. 맞다. 근데 어떤 교수님도 이런 말을 해주시지 않았던 걸까? 한편으로 유일한 열정을 가지신 분이라 생각했고, 교단에 있는 자라면 자기 전공지식을 전달하는데 그쳐서는 안되는 막중한 책무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교 4학년때는 내 가슴에 불덩이를 안고 살았어. 너희들도 내가 이렇게 말하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학생이 분명히 있을거야 ”.
“.........................................저요!“
나는 손을 들고 싶었다. 심장의 요동치는 횟수만큼 손을 번쩍번쩍 들면서 외치고 싶었다.
그날 버스에 몸을 맡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뜨거운 눈물이 계속 흘렀다. 가슴에 온기가 있는 불덩이가 하나가 있었는데 그걸 활활 지펴지게 해주셨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고민하다 잠을 못잘 정도가 되는 것이 청춘이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살지 , 새로운 것을 어떻게 찾지? 늘 고민하면서 보냈다.
나눌 사람이 없었고 끌어줄 사람이 없었다. 같이 타오르게 할 동지도 없었다. 혼자 고독히 불덩이 하나만 품고 조용히 나아갔다. 다들 그냥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 미적지근한 삶을 살아내고들 있었다.
ENFP 활동가
성격검사를 몇 번을 해보아도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 고등학교 때 접한 이 MBTI검사때도 같은 것이 나왔는데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 몸과 머리는 풀가동되고 나는 하루 종일 바삐 움직인다. 내 피는 좀처럼 속도가 줄지 않는다.
육아를 할 때도 파이팅이 넘치고 일을 할 때도 고속충전기를 꽂은 모터가 되는 것 같다. 집에만 있으면 기운이 없어지고 마음도 괜히 슬퍼진다.
활동가는 혼자 있을 때보다 외부 세계와 연결될 때 더 활기차다. 마치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 모터처럼. 외부의 자극이 연료가 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낯선 장소를 탐험하고 다양한 일을 경험할 때 내면의 감각이 깨어난다. 그건 단순한 일이 아니라 나를 확장시키는 순간이다.
파스텔보다 진한 오렌지색
모네나 르누아르의 그림들은 빛과 색채의 흐름,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는데 집중한 인상주의 대표들이다. 부드러운 붓질에 경계는 흐릿하며 감정이 이곳저곳 풍부하게 덧대진다.
알렉스카츠는 이것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진다. 나는 명료함과 감정의 절제를 더 좋아한다. 간결하고 선명함, 오렌지색처럼 확실한 존재감을 가지는 인물의 표현이 더 끌린다. 복잡한 감정표현이나 배경이 없이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 스타일이 내 마음을 압도한다. 처음 이 작품을 영접한 순간 가슴이 콩닥콩닥 했었다. 할 수 만 있다면 알렉스카츠를 꼭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데 말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시선이 아닌 가까이 클로즈업에서 대형 캔버스에 직관적으로 그려나간 자기확신과 감각적 명료함이 내가 오렌지색을 좋아하는 것과 잘 맞닿아있다.
색과 감정의 간극
마크로스코의 〈Orange and Yellow>는 세로 캔버스에 오렌지색과 노란색의 사각형이 겹겹이 배치되어 있다. 경계는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우며 번지듯 처리되었다.
색들이 서로 만나 녹아들 듯 하다. 그의 그림은 주제없이 색과 형태만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상이 복잡할수록 표현은 단순 해야한다”고 했던 그의 말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복잡한 감정으로 마음이 어수선했다.
활동가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것을 선호하지만 엄마라는 자리의 헌신과 책임감 속에서 갈등하며 에너지를 다 내놓지 못하고 의식적으로 조절하며 절제의 절제를 겹겹이 쌓아올린다. 때론 좌절도 했다가 다시 다독이고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오렌지색이 빛나기 위해서 어두운 배경이 때론 필요하고 노랑이 와서 침착하고 조용한 책임감으로 지긋이 누르기도 한다. 그래서 복잡했나보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