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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세이] 르누아르

르누아르<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녀들>

by 유승희
르누아르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녀들>


피아노


대학원생 피아노 선생님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있는 르누아르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녀들>이 한국에 전시를 시작했다. 기존에 내가 좋아하던 르누아르의 피아노 연주하는 소녀들 시리즈 중 오랑주리에 전시된 그림이다. 피아노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생각나고 색감이 너무 아름다워 글로 남기게 돼서 반갑다. 나는 몇 해 전 부산 해운대에서 전시회 보며 사둔 르누아르 피아노 연주하는 소녀들 움직이는 엽서가 냉장고에 붙어있다. 매일 바라봐도 기분 좋은 그림이다.


세 번째로 만난 피아노 선생님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던 대학원생이었다. 단발머리에 키는 170센티미터 정도 되는 큰 키, 뭔가 오페라 가수 같은 모습이었다. 선생님 부모님도 모두 큰 키였다. 14층이었는데 저층에 줄곧 살았던 나는 엘리베이터가 늘 무서웠다. 용기를 갖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면 선생님이 온화하게 반겨주셨다. 선생님 집에서 교습한 것이 왜일까 싶지만, 우리 집엔 아이도 둘 더 있고 시끄러워서였을까.


선생님은 피아노를 칠 때 정말 행복해 보였다. 지금까지도 생각나는 장면이 많다. 통통하고 긴 손가락으로 달걀을 잡은 듯한 모습으로 손을 만들곤 건반 위를 신나게 두드렸다. “물방울 소리 같지? 들어봐. 어때?” 선생님은 요즘 시대로 말하면 파워E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거침없이 건반을 두드리면서 “손으로 두드려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내가 만들다니 너무 좋아. 너무 즐겁지 않아?” 하시며 두 눈을 감고 연주하셨다.


트라우마


건반을 틀릴 때마다 무표정한 얼굴로 손가락을 볼펜으로 때리던 동네 피아노 학원과 달랐다. 두번째로 다닌 아파트 피아노 선생님 집. 피아노 연습을 시켜두고 둘째 아들보다 유독 말랐던 첫째 아들을 늘 방에서 때렸다.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첫째 아들인 그 오빠는 소리 지르며 울었다. 벽마다 걸려있던 이단 종교를 상징하는 팻말을 기억한다. 어쩌면 아동학대 현장에 있었다. 왜 부모님께 알리지 안았을까 싶다. 지금 보면 아빠도 엄마도 닮지 않은 첫째 아들 그 오빠는 그 집에 입양아였을까. 온갖 의심이 들었다. 마음에 늘 남아있다. 아이는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힘이 약하다. 지나고 나니 그것이 아동학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의 빚으로 남아서일까? 그 모습이 가끔 생각나 괴롭다. 이렇게 글로 남기며 그 오빠의 안녕을 빈다.


짜증과 화, 냉소적이었던 피아노 선생님을 만나고 세 번째로 만난 분은 화내지 않았다. 건반을 틀려도 연습 더하게 했다. 혼내거나 가뜩이나 싫었던 피아노를 더 혐오하지 않게 해주셨다. 두 선생님보다 젊기도 해서였을까. 결혼생활과 초등학생을 키우며 일을 해서 버거운 상황도 아니었다. 선생님이 매우 활발하시다 보니 당시 내성적이던 나는 자주 당황했다. 하지만 피아노를 들려주실 때 눈을 감고 행복해하시던 미소를 볼 때 눈이 반짝였다. 좋은 성품의 선생님께 배우는 피아노가 더 좋아졌다.

선생님


선생님이 학생에게 애착을 갖고 대하면 학생은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한다. 가르치는 분야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학생도 그 과목을 좋아하게 된다. 객관적으로 틀린 질문을 하더라도 화가 나지 않는 이유는 ‘아! 그렇게도 볼 수 있구나.’ 한다. 수십 명의 선생님을 만났음에도 그 과목을 진심으로 애정을 갖고 느껴지는 선생님이 손에 꼽는 걸 보면 그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동물적 감각을 누구나 갖고 있다. 이 사람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가만히 눈을 들여다보면 느껴진다. 돈이 우선순위가 돼버린 직업인 건지, 적게 벌어도 이 일이 값지고 신나는 일인지.


그 일을 좋아하고 말고를 나눌 필요도 없다. 얼마나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 알려주는가가 더 중요하기도 하다. 이미 흥미가 있는 사람이 모여 듣는 강의야 상관이 없지만, 흥미가 없고 두려운 과목은 그 과목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선생님께 듣는 것이 좋다. 좋은 선생님의 기준은 다르지만, 평소 흥미가 없는 과목은 선생님의 인품과 서두르지 않는 온화함, 그 과목을 줄곧 좋아하며 재밌지 않냐는 선생님을 추천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흥미 없던 과목이 어느새 따듯하게 다가와 쉬는 시간에도 알아보고는 취미로 나아가 특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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