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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

by 김경애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피아노를 연주하는 자매들>

볼이 발그레한 앳된 소녀 둘이서 악보를 보며 피아노를 치고 있다. 한 소녀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노란 금발을 파란 리본으로 반묶음하였다. 다른 소녀는 하얀 레이스가 달린 핑크빛 드레스에 핑크리본으로 반묶음 머리를 했다. 핑크빛 침실과 골드 품은 그린톤 커튼, 피아노 위의 화병과 꽃, 르누아르의 그림답게 전체적인 색감이 따스하고 부드럽다.

나도 어릴 적 피아노를 배웠었다. 초등 고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친한 친구가 다니던 피아노학원에 같이 다녔다. 긴 웨이브 머리를 한 피아노학원 선생님도 예쁘고 친절했다. 그리고 유치원을 겸하는 곳이라 놀거리도 풍부했다. 내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에 주로 한 게임은 기억력게임이었다. 카드를 전부 뒤집에 놓고 두장씩 뒤집어 똑같은 카드 두장을 찾아내는 게임이었다. 내가 이기는 날이 많았고 기다리는 시간도 피아노를 치는 시간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장래희망의 꿈을 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왼쪽 새끼손가락이 다 펴지지 않았다. -생후 8개월 무렵에 나를 재워놓고 어머니가 마당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잠에서 깬 내가 기어 나오다가 방앞에 놓아둔 화로에 빠졌다. 놀란 어머니가 달려가서 내 발목을 붙잡아 빼냈는데 삼발이가 내 손에 붙어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왼팔만 빠져서 왼팔과 손목의 화상, 새끼손가락이 굽는 흉터가 생겼다.- 왼쪽새끼손가락이 다 펴지지 않으니 왼손반주를 할 때 한 음계이상을 한 번에 누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장벽이 있었으니 어머니가 보내주질 않는 것이었다. 중학교에 가면 공부를 해야 한다면서 피아노를 그만두라고 하셨다. 어머니의 의사를 전달하니 친절한 피아노선생님은 '원비 안내도 괜찮으니까 와. 선생님이 가르쳐줄게'라며 피아노를 치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셨다. 르누아르의 따뜻한 그림처럼. 어렸지만 원비를 안 내고 다닐 수는 없었기에 그냥 가지는 못했다. 못내 아쉬웠지만 내 마음을 알아주신 것만으로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책놀이 강사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 따뜻한 마음으로 즐겁게 아이들과 책놀이하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 내 마음을 다독여준 피아노 선생님처럼. 르누아르의 그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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