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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세이>_피아노 치던 우리들

_미완의 선율 #오랑주리미술관 #르느아르

by 김상래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피아노 치는 소녀들, 1892년경 캔버스에유채 | 116x81cm 오랑주리 미술관 소장


르누아르는 가정의 온기와 일상을 화폭에 담아낸 화가다. 오랑주리의 스케치는 서곡처럼 미완의 여백을 남기고, 오르세의 완성작은 커튼·소파·화병 같은 구체적 디테일을 더해 본격적인 ‘연주’로 변모한다. 일부 판본의 차이는 주문자(수집가·박물관)의 요구에서 비롯되기도 했고, 동시에 르누아르는 같은 장면을 여러 번 그리며 구도와 색채를 실험했다. 그의 반복은 관람자에게 그림마다 미묘하게 다른 기억과 감정을 읽게 하려는 의도와도 만나, 각각의 판본이 저마다 다른 울림을 준다.

〈피아노 치는 소녀들〉의 이본느와 크리스틴은 손끝과 눈빛으로 서로의 호흡을 맞추며, 가족간의 친밀성과 음악적 리듬을 동시에 보여준다. 말년의 관절염에도 붓을 놓지 않았던 르누아르는, 평범한 순간을 특별한 예술로 바꿔 우리에게 다정한 시간의 풍경을 건넨다.



한참을 서 있었다.

르누아르의 연한 파스텔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조용히 끌어왔다. 오랑주리의 공간들은 마치 다 채워지지 않은 악보 같았다. 완성되지 않은 선과 벽 사이의 여백이 나를 초등학교 때 우리 집 거실로 데려갔다. 우리 집은 오르세처럼 크지 않았다. 오랑주리처럼 작고 아담해서, 작은 것들이 오히려 더 잘 보였다. 그래서 동생과 나는 서로에게 더 밀착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동생의 왼손과 내 오른손이 건반 위를 오갔고, 나는 악보를 정확히 읽지 못해도 노란빛으로 바랜 팝송 악보의 음절들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우리만의 합주를 만들어 냈다.


우리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를 쳤다. 그때는 가사의 의미조차 알지 못했다. 지금 가사를 보면 그렇게 신나게 칠 노래는 아니지만, 그 시절의 우리는 박자가 어긋날 때마다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떨어지는 낙엽 하나에도 웃음이 터지던 소녀 시절이었다. 명랑만화를 옆에 끼고 자란 탓에, 세상의 많은 웃음이 내게 입혀져 있던 시절이었다. 그 웃음은 곧 피아노 소리의 한 부분이 되었다. 건반이 눌릴 때마다 올라오던 잔향, 동생과 꼭 붙어 앉아 있던 딱딱한 나무 의자, 그 모든 것이 한 덩어리의 시간으로 굳어 지금도 내 안에서 울린다.


피아노가 우리 집에 들어온 건 막내동생이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서부터였다. 동네마다 서점이 있던 시절, 우리는 몇 블록을 걸어 큰 서점의 가판대에서 노란색 팝송 악보를 골라왔다. 그 악보들은 피아노 뚜껑 안에 한가득 쌓였다. 나는 주로 막내가 치는 「캐논」이나 유키 구라모토의 「Sonnet of the Woods」를 좋아했다. 그 음색이 좋아 카세트테이프가 나오면 레코드점으로 달려가 사곤 했고, CD가 나오면 또 CD를 샀다. 그렇게 좋아했던 곡을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연주했다. 나는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고, 동생 어깨너머로, 옆에 앉아 오른손을 덧대며 익혔다.


피아노 학원 풍경은 가끔 잔혹했다. 친구를 기다리던 나는 레슨실 유리창 너머의 광경을 보고 무서웠다. 손가락을 세우고 손목을 바로 잡으라며 30센티 자로 손등을 사정없이 때리던 선생님, 공주같이 예쁜 드레스를 입고 콩쿠르에 나가 1등 상을 받던 친구는 피아노 치는 게 지긋지긋하다며 울곤 했다. 그 광경은 ‘음악’과 ‘예술’이 다른 얼굴을 가질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어떤 이는 위플래쉬처럼 휘몰아치는 열정으로, 어떤 이는 잔잔한 일상으로 예술을 품는다. 둘 다 필요하고, 둘 다 위로가 될 수 있다.


내게 미술과 음악은 닮았지만 다른 감각이었다. 그림을 배울 때 선생님은 자세를 꾸짖기보다 형태와 명암을 이야기했다. 빛이 어디서 떨어져 어느 곳을 타고 어떻게 내려오는지, 가장 밝은 곳과 가장 어두운 곳의 흐름을 찾으라고 했다. 그림자를 지우고 다시 채워 넣고, 형태가 틀려 지워도 누구도 신체에 자를 대며 때리진 않았다. 반면 피아노 레슨에서는 눈물과 분노가 때때로 연습실을 채우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나만의 신념을 조금씩 만들었다. 경쟁과 강압이 아닌, 위로와 기쁨으로 예술을 대하고 싶다고.


오랑주리의 미완성화는 그래서 나에게 다정하다. 오르세의 완성작이 지금의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오랑주리의 미완성은 돌아갈 수 있는 좁은 길목 같다. 빈 여백은 부끄러운 자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상상과 재해석의 영역을 남겨 두고, 그 안에서 나는 동생과 함께 울고 웃었던 순간들을 다시 꺼내 본다. 우리는 그때 완성된 연주를 하지는 못했지만, 엇박의 소란 속에서 우리만의 추억을 쌓아 지금까지도 함께 그 시절을 기억한다.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어긋남이 주는 스윙은 어쩌면 완성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준다.


말하자면, 인생은 즉흥 연주와 닮아있다. 흥이 겹치면 악보에 없는 장식음이 들어가고, 의도치 않게 박자가 바뀐다. 그때가 가장 진실한 순간이다. 우리는 완성된 곡보다도, 그렇게 어긋나는 순간을 오래 기억한다. 완벽하지 못한 연주가 실패인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 시간에 충분히 함께 웃었다. 피아노를 완벽하게 친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서툰 미완성의 시간들만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을 보며 나는 피아노 앞에서 동생과 흥얼거리던 우리를 떠올렸다. 오랑주리의 빈칸을 향해 손을 뻗듯, 우리는 미완의 시간을 껴안는다. 비록 그 연주가 콘서트홀의 박수로 마무리되지 않았어도, 우리만의 거실에서 울려 퍼진 소리는 우리를 완성시켰다. 완성작이 아니어도 좋다. 재즈처럼, 엇박과 속도 조절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스윙을 찾는다.

르누아르의 붓끝과 내 손끝 사이에는 시간의 다리 하나가 놓여 있다. 그 다리를 건너면 어린 우리가 만들던 소리들이 다시 들려온다. 다리는 완성으로 향하기도 하고, 미완의 집으로 꺾이기도 한다. 중요한 건 어느 쪽에 섰느냐가 아니라, 그 다리를 건너며 우리가 무엇을 들었느냐이다. 우리의 시간들이 모여 내 안의 악보를 이루고, 그 악보는 오늘도 조금씩 덧입혀진다.


미완성은 언제든 완성으로 바뀔 수 있다. 혹은 끝내 완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제 나는 완성과 미완성의 경계에 집착하지 않는다. 우리 집에서의 작고 덜 정돈된 연주처럼, 인생의 선율은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생과의 그 시절을 추억하며>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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