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짓
밤에 눈을 감고나면 5분후에 아침을 만나는 듯 한 느낌이다. 밤에 나만의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하루를 뻬앗긴 기분이다. 아이들과 누워서 같이 자는 척을 하지만 깜깜한 어둠사이로 나는 두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복근운동으로 잠이 들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신나는 야행성 부엉이의 활동시간으로 쓴다. 잠시 피곤했지만 어느덧 하고 싶었던 일에 몰두하면 이밤의 적막감도 어느새 뜨거운 즐거움으로. 엄마로 살면서는 내 시간을 확보한 다는 것은 매우 귀한 시간내기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의 하루는 3부로 진행된다. 아침- 살림과 업무, 오후 퇴근-육아와 살림 밤- 다시 나만의 시간.
누적된 이런 삶이 끝내는 병을 가지고 왔지만 한동안 몸을 사리느라 일찍 자면서 회복을 기다렸다. 몸이 괜찮아지니 또 난 밤시간이 아까웠다.
우향 박래현(1920-1976)_ 부엉새, 1950년대 초 종이에 채색 | 81x57cm |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당신도 시동을 걸었군
오늘 나는 7년간 육아만 하다가 40이 되면서 세상에 나왔다는 한 아이 엄마를 만났다. 그녀는 일을 안해도 될것 같아서 임신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었고 7년간 전업주부로 살았다. 어느날 아이가 다 크고 나면 난 어디로 가지? 라는 두려움이 밀려 왔다고 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한 것이 색조화장품을 풀 세트로 샀다는 것. 이 후 무얼 할지 알아보다가 환경교육사 자격증을 따기로 했단다. 그녀는 소비자학과를 나왔지만 아이를 키우는 동안 써먹지 못한 전공을 다시 살리기엔 자신이 없어 새로운 것을 배우기로 했단다. 그녀의 도전은 긴 터널을 지나듯 7년간의 독박육아(주말부부)에서 벗어나는 활력을 주었지만 갑자기 바빠지니 아이가 유치원에서 오기전에 후다닥 들어와야 하는 쫓김의 연속에 힘들다고 했다. 내 주변의 워킹맘들을 만나면 11시에 모여서 2시반에서 3시면 쫓기는 자리를 뜰 수 밖에 없어 늘 아쉬운 대화를 뒤로 하고 안녕~인 일이 대부분이다. 이른 점심먹고 이야기 나누다보면 사실 긴 시간도 아니다. 나 역시 매일 누군가 쫓아오듯 집으로 향하는 압박감과 속도감은 꽤나 미션임파서블의 톰크루즈 못지않다.
그 옛날 부엉이
운보 김기창의 아내라는 타이틀로 살았던 1920년생 박래현 화가는 부잣집 딸로 어릴 때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김기창의 아내이자 네 자녀의 어머니로 살면서도 자신의 그림을 그렸다. 그녀가 결혼할 때에는 작업을 계속 한다는 것을 조건이 있었지만 출산, 육아, 가사때문에 작가로서의 생활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수필에 "하루일과가 기저귀 빨기, 밥 짓기, 청소하기, 아침식사가 끝나면 이것저것 치우고...다시 아기보기"로 이어진다며 본업인 그림은 언제그리나라는 푸념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고 도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1940년대 초기작 '단장'을 비롯하여 그녀의 작품들은 시간을 거듭할 수록 깊이 있고 감각적이며 표현의 독특하고 풍부했다. 그녀는 청각장애인 남편을 위해 사는 삶과 육아의 시간이 모두 끝난 후에야 붓을 들 수 있었던 어려움을 뚫고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꽃 피웠던 것 같다.
당시 남성중심으로만 조명했던 미술계에서 여성화가로서 육아와 살림까지 해가며 자신의 영역을 놓치 않았던 그녀의 수많은 갈등과 열정사이를 넘나드는 고민과 고뇌는 지금의 나와 워킹맘으로 살고 있는 모든 이들과 한치도 다를 게 없다. 김기창이 아내 박래현을 부엉이라 부른 것처럼.
1960년대 초 달밤
스텔스 비행
조금만 일에 치우쳐도 집안이 엉망이 되고, 집안을 더 챙기다보면 도태되는 상황과의 줄다리기 속에서 나는 오늘도 부엉이 날개짓으로 밤 비행에 나선다.
나아가라.
밤하늘의 그림자처럼 조용히, 부드럽게 ,그리고 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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