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행복은 음미하는 것

by 김경애
에드워드 윌리스 레드필드 <the south window>

햇빛이 비쳐드는 창가에 한 여인이 밖을 내다보고 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센 모습이 나이가 지긋해 보인다.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 처음으로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을 했다. 노년이 되어 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하며 국민학교 졸업식을 떠올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빠르게 흘러간 시간들을 되짚어 보며 인생을 정리하지 않을까 하고.

사흘 전 넷째 이모가 돌아가셨다. 위암 2기를 선고받고 수술을 받았으나 4년 만에 재발했다. 이모의 나이 65세였다.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약해진 체력으로 인해 항암치료를 버티지 못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열흘 전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결혼식이었다. 하객을 맞이하는 못하는 이모를 보러 혼주석으로 갔다. 몇 달 전 만났던 모습과는 다르게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이었다. 양가부모님께 인사를 하며 큰절을 하던 사촌동생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 식이 끝나자마자 올케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 이모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 잘했어, 나 정말 잘했어."라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리고 다음날 쓰러졌다. 아들의 결혼식을 볼 마음으로 자신을 다잡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에게는 "행복했어. 나 따라올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남기고. 이모는 넷째 삼촌과 결혼했다. 겹사돈이었다. 축복받지 못한 결혼이었다. 가족들의 허락을 받기 위해 삼촌은 몇 날며칠 비를 맞으며 무릎을 꿇었다. 끝내는 허락을 받지 못하고 둘이서 도망가서 살림을 차렸다. 아들을 하나 낳고 시간이 흐르면서 가족들도 어쩔 수없이 받아들였다. 할머니의 치매발병 후엔 그렇게 결혼을 반대했던 이모가 할머니를 모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엔 사별한 외삼촌의 자녀들을 돌본 것도 이모였다. 평생 남한테 싫은소리 한번 안하고 남의 흉 한 번 보지 않았고 손위 언니가 월급을 달라면 군말 없이 주는 사람이었다. 주식으로 전재산을 날린 남편에게도 잘했다며 다시 함께 열심히 일했다. 삼촌은 그런이모를 평생 사랑했다. 빈소엔 동글동글한 이모의 웃는 얼굴이 나를 맞이했다. 외가와 친가 가족들이 같이 상복을 입고 조문객을 맞았다. 2박 3일, 그렇게 긴 시간을 외가식구와 친가가족들이 함께하기는 처음이었다. 서로 가족을 잃은 슬픔을 나누고 손님을 맞느라 고생한다며 고마워했다. 이모는 마지막까지도 가족들이 서로를 보듬어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도 언제가 내 삶이 끝나는 날이 될는지는 모른다. 이모처럼 서로 사랑으로 보듬는 속에서 이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고 죽는다. 유한한 삶 앞에서 자꾸 그 유한함을 잊는다.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미래를 걱정하며 해야 할 일들에 쫓겨 지금의 행복을 놓친다. 그리고 과거에 놓친 행복을 아쉬워한다. 끝이 있는 내 삶에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은 지금뿐이다. 지금 이 순간, 내 경험 속의 행복을 찾아보자. 2박 3일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아픔을 함께 나누며 서로 위로하는 가족들, 묵묵히 곁에 있어준 남편, 동생네 강아지를 돌보며 기다려준 아이들, 우리를 품어주는 보금자리, 따뜻한 이부자리, '투두둑'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빗소리, 선선한 가을바람, 향긋한 커피, 지금 내 곁에 있는 행복을 찾아서 경험하며 살아가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호박처럼 익어가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