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호박처럼 익어가는 시간

평범한 어느 날의 오후, 완숙함, 블루치즈 크럼블을 얹은 늙은 호박 수프

by cantata
에드워드 윌리스 레드필드_ The South Window_ 1941

평범한 어느 날의 오후

에드워드 윌리스 레드필드의 <남쪽 창>이라는 그림은 평범한 보통의 하루를 편안하게 보여준다. 해가 짧은 겨울의 한낮 햇볕은 남쪽으로 난 커다란 창을 넘어 거실을 환하게 비춘다.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창가에 서 있는 노인은 겨울 세상을 관조하고 있다. 햇볕을 그득 담고 여문 늙은 호박처럼, 그의 얼굴에도 세월의 색을 그득 담고 익어 있다.


햇볕이 호박을 단단히 여물게 했듯, 세월은 사람의 마음을 여물게 한다. 호박처럼 노인도 많은 일을 겪으며 단단해졌으리라. 그런 의미일까, 창문에 비친 노인의 표정에서 웃음과 눈물이 교차한다. 살아온 인생이 희극과 비극의 컬래버레이션인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평범한 온기로 녹아든 희극과 비극의 공존이다.

그림 안의 요소들이 다정함으로 다가온다. 하얀 눈이 얕게 덮인 지붕, 노인의 머리에 내려앉은 은빛 세월의 흔적, 푸른색 스웨터의 냉기까지도 먼 훗날 ‘평범한 어느 날의 오후’로 기억될 풍경이다. 이 소소한 것들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날이 감사하고 소중할 하루의 기억에 기록될 일이라는 예감이 든다.

완숙함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코미디언 전유성 씨에 관한 기사들을 보며 나의 몇십 년 후를 상상해 보았다. 많은 미담을 남긴 그의 이야기들을 보며 나도 이 세상을 떠나고 저렇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사람이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주위 사람들까지 기억을 해 주면 더더욱 좋겠지만 나의 아이들에게만이라도 완숙한 어른, 마음속에 두고두고 기억될 엄마이길 바란다.

그가 보여 준 모습에서 내가 꿈꾸는 완숙함을 보았다. 어른으로의 완숙함이 단지 나이만 먹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완숙한 어른이란 냉기와 빛이 공존하는 세상 속에서도 따뜻함과 애정을 잃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시간이 흐르며 나도 그렇게 익어가는 사람이길 소망한다. 적어도 나를 과시하지 않는 겸손과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따뜻함을 가진 사람으로 말이다. 내가 떠난 후 우리 아이들이 “냉랭한 말투지만 우리 엄마는 마음만은 따뜻한 사람이었어.”라고 기억해 준다면 좋겠다. 그렇게 기억된다면 더한 완숙함은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담아 요리 재료로 늙은 호박을 떠 올린다. 서양 요리법에 맞게 수프를 만들었다. 단호박이 가진 과한 달콤함과는 다른 달큼한 호박의 맛이 느껴진다. 그 위에 시간이 빚어낸 짭조름한 치즈가 녹아내린다. 두 조합은 겨울 햇살의 따뜻함이 온기가 되어 완숙함으로 입안에 피어난다.


블루치즈 크럼블을 얹은 늙은 호박 수프

늦가을의 햇살을 머금은 늙은 호박, 천천히 호박을 익히듯 오늘도 나는 내 하루를 익혀 간다. 시간이 빚어낸 치즈의 풍미가 달달한 호박과 만나 인생을 대변한다. 콤콤하며 짭조름한 블루치즈를 부수어 올린 호박 수프는 단맛과 짠맛이 어우러진 한 그릇에 담긴 인생이다. 오랜 후의 내 삶도 그렇게 익고 섞이며 깊어지길 바라본다.

블루치즈 크럼블을 얹은 늙은 호박 수프

재료

늙은 호박 400g

양파 ½개

버터 1큰술

우유 1과 ½컵

생크림 ½컵

소금, 후추, 설탕 약간

블루치즈 30g

호두나 피칸(고명용)

만드는 법

1. 늙은 호박은 껍질을 벗기고 작게 썬 뒤 찜기에 쪄서 부드럽게 익힌다.

2. 냄비에 버터를 녹이고 양파를 투명해질 때까지 볶는다.

3. 쪄 둔 호박을 넣고 으깨며 함께 볶은 후, 우유와 생크림을 넣어 약불에서 끓인다.

4. 핸드 믹서로 곱게 간 후 소금, 후추, 설탕으로 간을 맞춘다.

5. 따뜻하게 덜어내 블루치즈를 손으로 부숴 올린다.

6. 호두나 피칸을 다져 곁들여 풍미를 더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시, 그래도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