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진 Jul 16. 2024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은새 작가, 눈 비비는 사람 2017,  작품 감상 에세이

이은새 작가, 눈 비비는 사람 2017



아프니까 청춘이다      

거침없는 붓질과 날이 선 선들 사이로 작가의 예민하고 불안한 감정이 여과없이 묻어난다.

빨갛게 충혈된 눈과 코, 입이 불만과 불안을 동시에 안고 있는 듯하다.

젊은 작가는 자신에 대한 불안정한 감정과 세상을 향한 피로감을 마음껏 표현하면서 성장통을 겪어나가는 중으로 보인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2010년 말 출간되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난도 교수의 이 책이 불현 듯 생각이 났다. 다독이면서 격려하는 필체가 20대를 향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비난과 동시에 불안한 미래와 외로운 청춘을 보내고 있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수많은 이들을 울리기도 했다.

2003년 내가 대학교 4학년 때 4월로 기억한다. 교수님이 강의장에 들어오시더니 모대학 도서관에 갔더니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공부하고 책을 보는 학생들로 넘친다고 하셨다. 빈자리에 대해 나무라시고, 늦게 오는 학생들을 혼내시는 유일한 교수님이셨다. 대학생 때 어떤 교수가 학생들을 향해 꾸짖으시고, 잔소리를 하겠냐만은 애정이 없으면 하지도 않을, 안타까움조차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매우 감사하게 들었다. 지금은 자기 미래에 대해 고민하느라 잠이 오지 않아야 하고, 앞으로의 나를 위해 잠을 자서도 안된다는 말을 했다. 자유의지에 의해 대학생활을 하니 그런 자극이 나에게 희망같은 한마디였다.

자기 안에 불덩이가 꺼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말을 거듭하면서 그 당시 내 마음 속 불덩이가 지펴지고 뜨거워졌었다. 세상을 향한 불만도, 불안도, 불신도 모두 20-30대에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다. 애 낳고 40을 찍으니 불만도 불안도, 불신도 사그라들더라. 더 많이 고민할 수 있고, 미래가 안보여 울고 싶고, 세상을 향해 비뚤어진 불만을 품을 수 있는 것도 모두 이때 실컷 쏟아낼 수 있는 것이랴.   

   

아프니까 사랑이다.      

내 친구의 남편은 동기부여강사다 !청소년들과 기업 내 사원들을 향해 긍정 에너지를 전하는 일을 한다. 이 남편은 내 친구에게 육아우울증에 힘들어하니 “긍정적인 말과 긍정적인 생각”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면서 자신에게 훈계를 했다고 했다. 너무 열받아서 밥숫가락을 식탁앞에 탁! 하고 치고 처음으로 반항 아닌 반항을 했다고 했다.

“많이 참았네! 나라면 진작에 입닫으라고 했을거야”

겉은 번지르르한 말이다. 꼭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하나? 안하고 싶을 때도 있는 거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어야 건강한거지! 그건 모두 가식이고 포장이라고 생각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야 정상인거다.      

40에 진입하면서 10년 이상을 먼저가는 주변 언니들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40부터 마음이 뒤숭숭하고, 삶에 없던 권태가 찾아온다고 했다. 50을 찍으면 갱년기가 와서 그것과는 다른 감정변화와 몸의 변화를 겪는다 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놀랍게도 마음이 뒤숭숭하고 삶에 없던 권태가 왔다. 두 아이를 맡기고도 나의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니 집에 들어가기 싫어지고 안절부절하는 마음 100%가 50%로 줄면서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마음이 뒤숭숭해지고 외로움이 찾아왔다.

알 수 없는 외로움이다. 부부사이가 안 좋은 것도 아니고,  육아가 미치도록 힘들어서 오는 감정도 아니다. 아주 묘하고 뒤숭숭한 사춘기 같은 은근하며 진한 감정이다. 그 또한 시간이 가니  지나가긴 했다. 이런 감정이 올 때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십년동안 나를 버린 채 헝클어진 머리로 뛰어 다녔던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아이들은 13번 입원을 했고, 절반 미친 여자가 되어 병원에서 울면서 보낸 세월이 30대였다. 잠시 돌아서면 아이들은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고 등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누구는 애를 발가락을 키웠다는데 당췌 나의 발가락은 쓸모가 없는 모양이였다. 온몸이 움직여야 했다.

그때마다 힘들다고 발버둥쳤다. 나답지 못한 삶이라고 아파했다.      

이제는 수습하는 방법을 남들보다 더 배웠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건사고는 소소해졌다. 조금 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는 안보였던 것들이 모두 사랑스럽다. 매일 매일 치열하게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못 느꼈던 것들이 보인다. 가족을 사랑해서 아파했다. 나를 사랑해서 슬퍼하고 아파했다.

이렇게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지나온 삶의 폭풍우 속을 한 걸음 떨어져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지옥의 문, 감옥의 문, 위로의 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