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하며 또 하나 깨달은 점이 있다면 나는 두 부류의 인간들을 혐오한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부류는 돈 자랑하는 인간들이었고 두 번째는 추잡한 유흥을 서슴없이 즐기는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항상 정체를 감추고 있다가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야 가면을 벗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그들 앞에서는 그들을 혐오하는 표정을 감추고 있어야 한다. 다음부터 만나지 말아야겠다는 혼자만의 다짐을 하면서. 내 위선 없는 처세를 감추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차피 돈 자랑하는 것들이나 추잡한 유흥을 즐기는 인간들 대부분이 지역 유지들인 게 분명한데 내 생각을 빠짐없이 그들에게 전달했다간 결국 회사의 윗선들 귀에 들어갈 것이고 말 같지도 않은 꾸지람 비슷한 잔소리를 들으면 더 유치해지는 감정싸움으로 될 게 뻔하니까. 아직은 경력도 짧은 기자 나부랭이일 뿐이니 말을 아끼는 게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술이 조금이라도 과하다 싶으면 그 유치한 감정싸움을 즉흥적으로 할 때도 있지만.
한 번은 어느 변호사와의 자리였다.
“에이. 기자님. 무슨 벌써 가려 그래! 택시비 아까워서 그래? 내가 택시비 5만 원 줄게. 됐지?” 평소 얘기는 들었지만 이 양반도 술이 조금 들어가니 선 넘는 멘트가 줄줄이 이어졌다. 회사에도 아는 사람들이 많아 억지로 맞장구 쳐주고 있었지만 이놈의 술이 항상 문제다.
“걸어가도 돼요. 법조계 시장도 어려운데 한 푼이라도 아끼세요. 저 돈 많아요.”
이 한 마디에 부장을 포함해 같이 동행했던 다른 변호사들의 분위기도 싸해졌다. 그들이 눈빛으로 말하는 발언들은 어디 어린놈이 이렇게 건방지냐는 말들로 일색이었고 나도 살면서 처음 내뱉은 말들에 이때만큼은 슬쩍 당황하기도 했다.
“오. 기자님. 돈 많아? 얼마 있는데?” 다행히 내 말을 들은 변호사는 우발적이고 다소 격정적인 분노보다 내가 진짜로 얼마 있는지가 궁금해 보였다.
“글쎄요. 평생 일 안 해도 될 만큼?” 얼토당토않은 발언이었지만 나는 언제부턴가 돈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항상 어설픈 장난을 쳤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선배들과 회식자리를 가졌는데 누군가의 귀에는 벌써 이 에피소드가 들어간 듯했다.
“우리 막내, 부모님 뭐하시냐?” 기밀 얘기라도 하듯 평소 친한 선배가 슬쩍 다가와 내게 속삭였다. 질문을 받자마자 이 바닥에는 소문이 참 빨리도 퍼진다는 약간은 소름 끼치는 생각도 스쳐갔다.
“돈이 좀 많다는 소문이 있던데? 너도 집에 외제차 숨겨놓고 그러는 거 아냐?” 다행히 선배도 내가 아무리 돈이 많다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네? 어디서 그런 소문이. 저 상거지인데요. 그래서 결혼도 못 하잖아요.” 농담 반 진담 반이었지만 사실 진담 쪽에 더 가까웠다. 새 모이만큼의 월급 중에서도 소비벽마저 심해 2, 3일에 한 번씩 잔고 체크하는 건 필수였고 매달마다 월급날이 되기도 전에 돈을 다 써버렸으니까. 모든 돈의 8할 이상은 술로 인한 소비였다. 이런 소비성향을 진즉에 알고 있던 엄마는 항상 당부하기도 했지. 너는 주머니에 구멍이 났으니 결혼하면 모든 경제권은 아내에게 넘기라고.
또 한 번은 한 사업가와의 자리였다. 나이도 젊고 사업가로서 성공한 이미지였지만 3차로 들른 바에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기, 웨이터야. 내가 항상 데리고 있는 애 오늘 출근 안 했어?” 룸으로 들어가자마자 혼내는 듯한 말투로 바 직원을 다그쳤다.
“혹시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여자 매니저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자마자 행패를 부리니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 있잖아. 똘망똘망하니 이쁘장하고, 나 몰라? 나 여기 자주 왔잖아.” 허접한 행위 예술을 눈앞에 보고 있으니 옆에 있던 나조차도 부끄러워 술기운이 올라왔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 과정에서 내 강단 없는 태도에도 잘못이 있다고는 생각했다. 아무 말 없이 따라오라는 대표의 말에 대충 예상은 했지만 바에 들어가고 나서는 거절의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해야 했으니까. 사실 거절하지 않은 이유도 숨겨져 있다. 왜 이렇게 순진하시냐. 이런데 처음 오시냐, 무시하는 상황이 이어짐과 동시에 분위기를 망칠 게 분명하니 최대한 유하게 넘기고 싶었을 뿐이다.
어색한 상황을 어느 정도 매듭지었다고 생각했지만 여성들이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그전까지 대표의 행패가 맛보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살면서 술에 취한 많은 남자들의 추태를 보았지만 본인이 돈을 지출한다는 명분으로 온갖 갑질을 한다거나 눈과 손이 바쁘게 움직이는 추악한 동물에 가까운 모습을 보니 술기운이 극에 달해 대표를 향한 한심한 눈빛들을 숨길 수 없었다.
어쩌면 이들로 인해 스스로 많은 생각을 깨닫게 해 준 계기가 되기도 했을까. 이럴 때면 항상 엄마가 해준 말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아마 대학을 다닐 때 처음 들었을 것이다.
“성숙하지 않은 인간한테 갑자기 많은 재력이 생기면 겸손해지기 힘들지.”
무슨 대화에서 나온 얘기였는지는 기억이 흐릿하지만 부자들의 갑질을 볼 때마다 엄마가 넌지시 던진 그 한 마디가 매번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봐왔던 소위 돈 좀 있다고 하는 인간들의 비정상적인 행동들과 사고들까지 직접 경험하게 되자 어느 순간부터는 모든 인간이 돈이 갑자기 많아지면 저렇게 우습고 철없이 변하는 건지 의심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들을 교화할 수 있는 능력 따윈 내게 없으니 곁에서 그들을 한심하게 바라보고 인격적으로 한참 아래의 인간으로 취급하는 방법밖에 없다. 언젠가 내가 지금보다 나이를 먹고 그들에게 내 모든 의사 전달을 할 수 있을 때쯤에는 한 마디 하지 않을까. 부끄러운 줄 알라고.
사회에 별 관심 없던 것도 숨겨지지 않은 속내였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사회를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내 기준에 정상적인 사회라 함은 기본적인 인간의 윤리와 질서를 지켜주는 것뿐인데. 어렵지 않은 것인데. 이럴 때마다 그저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 씀씀이를 가지라는 조언을 어디선가 예기치 않게 맞닥뜨릴 때면 공격적인 어투로 대응해버리고 만다. 그게 말처럼 되면 나는 이미 석가모니 됐다고. 어디서 성숙한 척이냐고. 이럴 때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감정의 8할 이상은 분노가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내 분노의 정도와 빈도를 생각하며 지수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아마 20대 초반에 가장 낮은 지점에 몰려있고 그때부터 20대 후반까지 쭉 올라갔을 것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테슬라 주가처럼. 40대의 선배들 말로는 정점을 찍은 그 분노지수가 30대 중반부터는 다시 내려온다고 하는데 지금의 시기가 정점을 찍고 있을 시기라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평생 성격파탄자로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
사람의 성격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정론(?)을 믿으면서 살아왔지만 일을 하고 나서는 내가 그동안 남에게서 듣지 못했던 성격에 대해서 많이 듣곤 했다. 내가 직접 귀 기울여 들어왔던 성격의 평가들은 ‘낯가림이 있다.’, ‘내성적이다.’ 처음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판단했는데 그중에서는 이런 성격을 맘에 들어하거나 석연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던 나인 줄 알았지만 서른 언저리의 반격일 수도 있고 사회생활에 물들어 가는 것일 수도 있는 그런 요인으로 인해 조금씩 변화의 과정을 거치기 시작했다.
황선홍 감독의 경기 전 인터뷰 자리였다. 평소 내 성격대로라면 자리나 죽치며 점심메뉴를 고민하고 있었겠지만 남들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들이대다 보니 그날 기자들 질문의 총 10개의 질문 중 8개의 질문을 혼자 쏟아내 버렸다. “본인이 그려놓은 전술에 있어서 현재 몇 프로에 도달한 것 같나.”, “매 경기마다 아쉬운 부분은 무엇이냐.”, “브라질 선수들 영입에 대한 이점들은 무엇으로 생각하나” 등등. 어쩌면 황선홍 감독은 오랜 팬과의 대화로 착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한 번은 지하철 노선 개발로 공무원들과 해당 지역주민들과 회의를 가진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 기자가 혼자였던 나는 담당자의 두리뭉실한 대답에 짜증이 나고 말아 결국 지역주민들이 다 보고 있는 대강당에서 마이크를 잡고 온갖 화를 내버렸다. 계획도 안 세우고 뭐했냐며 질문을 왜 이해하질 못하냐며 어느새 아버지뻘의 어른을 다그치는 게 내겐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어버렸다.
그때쯤부터 “기자님처럼 외향적인.”, “이렇게 적극적이신 분.” 등의 살면서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말들을 들으면서 내가 좋게 바뀌고 있는 건지 어른의 때가 스며들고 있는 건지 정답의 근사치조차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업무에 관련해서는 이점이라고 생각해 너무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일을 즐겼던 순간이 조금씩 늘어나기도 했다.
일에 대한 만족감이 조금씩 올라갈수록 사람이 한순간에 불쾌해지는 순간들은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예상했듯이 이런 모든 재앙은 술자리에서 시작되고 술자리에서 끝나기 마련이다.
이날도 친목이라는 뜻을 잘 모르는 선배들의 기자단합회식에서 일이 벌여졌다. 죽도록 집에 가고 싶은 순간들이 매 분마다 나를 재촉했지만 그럴 때마다 최대한 나대지 않는 게 막내의 순리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자체를 포기하고 말았다. 사형수가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듯.
“어? 막내. 팔에 근육 있네?” 누군가가 내게 팔짱을 끼며 팔뚝을 쓰다듬었다. 정확히 말한다면 어깨부터 손목까지 쓸어내리는 손길이었다. 화들짝 놀라 그 정체를 힐끗 쳐다보니 선배 여기자의 접근이었다.
“네?” 무중력 상태에서 황당한 표정으로 그 사람을 쳐다보았지만 오히려 그 사람은 내 팔에 만질 거리가 있다는 사실로 감격스러워하는 표정을 선보였다. 다행히 옆에 있던 선배가 급하게 말리며 취했다는 명분으로 일단락됐지만 이날 이 자리에서 이 행위만 기억나는 것을 보니 나도 순간 당황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 보았던 강제적 신체접촉의 행위자는 보통 남자로 알고 있었는데 이게 반대가 되어보니 오히려 분노와 수치심보다는 “이게 뭐지?”, “이게 성추행 인가?” 다양한 생각들을 곱씹게 되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너무 불쾌한 감정들이었지. 인간이 많은 사람을 만나면 많은 일들을 묻어두듯 어쩌면 이런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술을 따를 때도 내 손을 감싸며 따르거나 심지어 어떤 선배는 출입처와의 자리가 마무리되자 사람들을 한 번씩 안아드리라는 요청도 거부감 없이 내뱉곤 했으니까. 무슨 업소도 아니고.
“그 정도면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야?” 소중하고 유일한 남자동기의 반응이었지만 오히려 뜨뜻미지근한 반응은 나였다.
“무슨 남자가 성추행 신고를 하냐.” 평생 동안 보수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가끔은 나 자신의 생각들과 행동들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런 문제를 성별 문제로 가늠하는 나 자신의 판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뼛속까지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인간일지도. 그러면서도 나는 조금씩 내가 어떠한 상황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정답에 가까운 대응인지 혼자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겠지. 쉽게 말한다면 앞으로 내가 직접적으로 표현할 거절에 대해 정중히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동안 상대방이 제안하는 모든 것을 거절하지 못하고 싫은 내색조차 하지 못하는 내 성격에 대해 신물이 나기도 했던 것 같다. 내 일부분이자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하는 이런 소심한 성격 때문에 가끔씩은 지금보다 더 늙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나이가 들면 조금은 융통성 있는 표현들을 내비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을 가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