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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ramram Dec 27. 2021

사회에서 호구되지 않게 조심!

 양보와 희생이 익숙한 삶이나 져주는 삶을 살아가다 보면 가끔 한 번씩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너는 참 착하구나.” 

 언제부터였을까. 참 착하다는 말이 곧 “너는 무시해도 되겠구나”라는 말로 들렸을 때가. 굳이 착해 보이기 위한 위선적인 내 노력이라기보다는 그까짓 거 내가 양보하고 말지, 내가 참고 말지라는 대응방식이 익숙하다. 이런 것도 선천적 요소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학창 시절을 돌아봤을 때도 서로의 눈치를 보기 전에 남들이 귀찮아하는 일들은 오히려 내가 해버리는 게 속 시원했다. 일본에 있던 시절에도 15명이 사용하는 기숙사의 청소, 분리수거까지 대부분 혼자 해버렸는데 그래야 내 맘이 편했으니까. 어쩌면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감정들이 예민해질 것 같은 걱정에 애초에 싹을 잘라놓는 것일 수도 있겠지. 그때까지는 조금 희생하더라도 다수에게 이로운 점이 있다면 그걸로 명분은 충분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사회에 있는 모든 존재들로부터 쏟아지는 매너와 격식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의 구분선을 명확히 할 순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앞서 깨달았듯이 일의 능률이 높아질수록 성격은 까탈스러워지는 과정이었던 만큼 단순히 나란 인간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제 잘 들어가셨어?” 출입처 인사들과 술자리를 거하게 한 뒤 다음날 그중 한 명이었던 임원급 간부 한 명에게 안부 연락이 왔다.

 “네. 덕분에 어제 자리도 감사했습니다. 오늘은 숙취 때문에 죽겠네요. 근데 어쩐 일이세요?” 

 이때만 하더라도 이 양반이 또 뭘 부탁하려고 그러는지 의심의 촉각만 곤두세웠다. 단순히 안부인사차 전화를 걸진 않았을 테니까. 퇴직을 코앞에 두고 있는 양반이라 술자리를 잡더라도 예약이나 연락 돌리는 건 어른에 대한 예우로 간주하고 내가 총대를 멨었다. 차라리 질질 끌지 않아서 시원했다.  

 “우리 내일 나갈 진짜 중요한 보도자료가 하나 있는데 우리 직원들이 이거 하나 정리요약을 못하네. 기자들은 이런 거 깔끔하게 잘하지 않나? 이거 좀 제대로 편집해줄 수 있나 해서.”

 보도자료 배포를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보도자료의 내용 편집을 요구하는 어이없는 부탁이었다. 마감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를 둘러댔고 내가 판단하기에 가장 정중한 거절이었다고 생각했다. 순간적으로는 “적당히 하세요. 진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세요.” 욱한 감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런 소리를 성질대로 내뱉었다간 서로 안 좋은 감정만 남아 간혹 소문만 무성해지기 때문이다. 그쪽에서는 어린놈이 버릇없다는 입장이 대표적 변론이 될 것이고 내 입장에서는 사리분별 똑바로 하라는 입장을 내세울 것이다. 30대 이상 남성들의 대화 주제로는 조금 유치한 내용이다. 

  이날 해프닝을 포함해 이런저런 일들을 겪을수록 왜 기자들은 경력이 쌓일수록 거만해지고 목이 뻣뻣해져야 되는지 일정 부분 공감했던 것 같다. 기자라는 직업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닐지 모르겠지만. 입사 초반만 해도 기자가 뒤에서 펜으로만 승부하면 되는 거지 뭐 성격까지 그리 까탈스러워져야 되는 건지 몰랐지만 간혹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한 예의와 매너가 누군가에게는 나를 무시해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덧붙인다면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나이에 맞지 않은 대우를 받다 보니 누군가에게 무시받는다는 느낌이 들면 감히 네가 나를 무시하냐는 감정으로 들이박기도 했다. 나도 더 성숙해져야 하는 건 분명하다.

 감정의 딜레마 속에서 지금처럼 예의와 긴장의 선을 유지하는 인간이 나을지 완전히 나쁜 놈으로의 변신이 나을지를 고민하면서 어떤 행동방향이 내 삶을 편하게 해줄지를 마지막 결정기준으로 삼았다. 결국 매번 그랬듯이 내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답을 찾았고 그 답은 당연하게도 나쁜 놈이 되는 것이었다. 큰 노력이 필요치 않겠지. 내 성격을 숨기지만 않으면 되니까. 그래도 마지막 심의 통과가 필요했다. 내가 매일 아침마다 장난을 거는 데스크의 최종 허락이다. 

 “부장. 저 밖에서 이제 착한 척 안 해도 돼요?” 술이 어느 정도 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부장 옆구리에 훅을 날렸다. 눈이 살짝 풀린 부장은 이미 수 십 가지의 그럴싸한 문장들을 멋진 조언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야 임마. 기자가 누구 눈치 볼 필요가 있냐? 네 맘대로 하고 다녀 이제. 뒷말 나오는 거 신경 안 써도 되니까.”

 최종 승인을 받고 나서는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고 기대하라는 눈빛으로 부장에게 화답했다. 그다음부터는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거나 내가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생기면 참지 않았다. 대표적으로는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하나로 아랫사람 취급을 하거나 반말을 하면 나도 똑같이 대응했고 신사적으로 해결하지 않았다는 점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내 얘기를 좀 들어보라고.”, “에이, 무슨 그런 핑계를 대고 그래요?”, “내가 그쪽 입장까지 헤아릴 필요는 없지요.” 발언의 수위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무례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전처럼 정중하게 사람들을 대했고 내 공격의 대상은 나를 불편하게 하거나 상대방에 대한 존중 없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예의와 건방 사이에서 그 경계선을 섬세하게 구분 짓지 못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인내와 희생으로 인해 생기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이전보다 덜 한 느낌을 받았다. 사회에서는 하루에도 참아야 하는 상황들이 수두룩하니까. 혼자 곱씹으며 생각하는 시간들이 되레 사라졌으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내가 조금씩 현명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성격만 형편없는 예민남이 되어가는 것일까. 언제쯤 정답을 알 수 있을지.

 어느새 동기들이 하나 둘 나가고 최정예 멤버 3명만 살아남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은 3명은 밖에서도 친한 사이가 되었고 회사에서 무슨 일이 생기거나 선배 욕할 안주가 있으면 저녁마다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이 날도 그날 중 하루였다. 술을 마시다 갑자기 월급에 대한 각자의 기준선이 궁금해서 동기들에게 물어봤다. 

 “그래도 출퇴근이나 이런 게 자유롭고, 아직까진 광고 압박도 그리 심하지 않으니까. 글쎄? 그래도 지금보다는 오십 이상은 더 받아야 되지 않을까요? 오빠는요?” 

 “나는 한 팔십은 더 받아야 된다고 생각.” 옆에 있던 유일한 남자동기가 거들었다. 

 일의 적응이 완벽히 끝났다고 생각할 때쯤에는 나름대로의 여유가 생겼는지 딴생각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한마디로 초심을 잃었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회사 내 다른 선배들만 보더라도 근무시간 동안 자리만 지키며 월급만 받아가는 사람들과 환경을 보니 괜히 억울하다는 생각도 하고 말았다. 그런 질 나쁜 선배들 중에서도 마치 그런 게 자랑인 듯이 떠들어대던 사람도 몇몇 있었지. 우리 회사는 일 열심히 안 해도 절대 잘리지 않는다며. 대충 시늉만 하면서 버티기만 하면 된다고. 

 문제는 내가 최고 경영자의 입장이 아니고 저런 선배의 행동과 가치관이 아무래도 속 편할 것이라 생각하는 건지 어느새 나도 그 깨끗하지 않은 길을 조금씩 터놓기 시작했다. 초심의 시기만 돌아보더라도 업무가 끝났다는 개념 없이 매일 어떤 사회 문제에 대해 고민했지만 겨우 2년 차밖에 되지 않은 기자가 그날의 기사를 마감하면 커피숍에서 아는 사람과 수다를 떨거나 개인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어차피 열심히 해봤자 말 그대로 월급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다고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프로답지 않은 행동이기 때문에 일말의 죄책감 비슷한 감정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순간들이 반복되면 결국 사람은 게을러지고 일을 더 하기 싫어지는 병에 걸리는 것 같았고 그러던 찰나에 회사는 나와 더 멀어지기 위해 발악하는 건지 연봉협상에서 마음을 굳히게 만들었다. 

 매년 한 번씩 진행하는 연봉협상자리에서 임원의 똑같은 얘기가 공기 중에 흩날렸다. 

 “내년에는 꼭 올려줄게.”

 작년에도 올려주신다 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떼쓴다고 올려줄 거였다면 지들이 알아서 올려줬겠지. 월급 따라 일의 적극성이 달라졌다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은 결국 익숙함에 무뎌지고 편한 것을 찾게 되는 요소가 가장 크게 작용하고 말았다. 매일 지역을 조금씩 바꾸겠다는 거창한 초심 따위는 1년 이상 가지 않았다. 취재도 전화로 대충 하거나 기사도 어렵지 않은 기사로 아이템을 채우고 결국 나도 다른 선배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특히 내가 위기의식이라고 느끼지 않은 이유는 내 행동들이 다른 선배들을 보고 배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겁한 핑계이기도 하지만. 

 “야. 생각해봐. 지금 우리가 아파트 청약 당첨되면 프리미엄 최소 2, 3억 붙고 많으면 4,5억까지 붙는다? 우리 월급 가지고 3억 모으려면 얼마 동안 일해야 되는지 알아? 밥 한 끼씩만 먹어도 최소 15년 아니겠어?” 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동기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내가 일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현타 올 때가 많다.

 “이럴 바엔 그냥 얼른 결혼하고 아이 갖고 청약 당첨되는 게 더 현명할지도 모르겠어요.”

 몇 가지의 일들을 해보면서 그때마다 월급이 내 일의 대표 기준선이 되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가장 대표에 가까운 기준선이 됐다고 느꼈다. 나도 남들과는 다르지 않게 금전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었고 곁에 있는 많은 동료들도 결국에는 돈 따라 이직하는 상황을 수시로 지켜보자 어쩔 수 없는 개인과 사회의 순리인 건지 고심에 빠지기도 했다. 적대감이 생길 정도로 그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들 각자만의 상황과 가치관이 다른 거니까 존중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스스로 느끼기에 떳떳하다고 생각할지에 대해 의심하기도 했다. 어쩌면 돈 앞에 일말의 자존심은 버린 거니까. 돈 때문에 가지 않았다면 뭐 할 말이 없겠지만. 근데 그게 과연 거짓 하나 없는 진심일까. 

 이때쯤에는 내가 살아온 환경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일단 부모에게 감사한 건 감사한 것이지만 나름대로 부족하지 않은 환경에 자라 돈에 대한 중요성을 아직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태생적으로 돈에 미련이 없는 것일까. 인생에서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말해 한심해 보였다. 저 사람은 낭만의 피가 없는 인간이라며. 

 그랬던 내가, 돈 때문에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결국 나조차도 그럴듯해 보이는 가면만 쓰고 있었지 남들과 똑같은 생각을 가진 나 자신을 보자 절망과 실망에 뒤덮여버렸다. 그럼 그렇지. 성숙한 척도 이젠 지겹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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