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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ramram Dec 28. 2021

아직도 그런 회사가 있다고?

 가끔 한 번씩 혼자 맞이하게 되는 오붓한 저녁시간에 갑자기 부장에게 전화가 왔다. 밀린 업무가 없는데. 또 뭘 시키려고 이 시간에 전화를 하냐. 새어 나오는 온갖 불편한 속내들을 통화버튼을 누르기 전 내뱉어버리고 약간의 각오를 두른 채로 부장의 전화를 받았다.

 “술 안 마셨지? 여기 회사 앞 일식집이니까 차 가지고 얼른 와. 10분이면 되지?”

 다짜고짜 웬 날벼락? 그러고 보니 퇴근 직전 데스크들이 회사 임원들이랑 회식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찝찝했던 이유는 복선 때문이었을까. 실수였다. 일이 있다고 했어야 했는데,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고 둘러댔어야 했는데 아직 막내 티를 걷어내지 못하고 데스크가 시키는 건 무조건 다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비슷한 게 여전히 내게 매달려있었으니까. 이제는 자연스럽게 거절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었지만 평소 잘 따르는 부장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순간적으로 해병대 선배의 명령을 따른 건지 곧바로 튀어간다고 했다.  

 통화를 끊고 옷을 입는 시간에는 30초쯤을 투자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차까지 뛰어가는 시간은 1분 정도 투자했을 것이다. 아파트에는 벌써 일자주차 돼있는 차들이 내 차를 가로막고 있었고 줄줄이 이어져 있는 차 4대를 전부 밀어내야 내 차가 빠져나올 공간이 생겼다. 이 시간에 3분 정도 투자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하찮고 보잘것없는 지시에 굳이 성공해내고야 말겠다는 내 투지가 안쓰럽기도 했고 한 편으로는 도대체 뭐 하는 건지 내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다. 

 평소 회사의 출근길은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데 부장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뭐야. 근데 왜 10분 내로 오라고 한 거야? 통화할 때 옆에 누가 있었나 보네. 한국 사람들은 이런 강압적인 권위를 뽐내는 거 좋아하니까. 능숙하지도 않은 끼어들기를 수차례 하고 평소 같았으면 절대 들어가지 않을 먹자골목 사이로 헤집고 들어가 보니 저 멀리서 부장들이 회사 사장의 차 문을 열어주고 90도로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으로 위안 삼기도 했지. 부장들도 똑같구나. 문득 내 미래의 모습인 것 같아 섬뜩했지만. 

 부른 이유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들을 그들의 집으로 편안히 데려다 줄 기사 역할. 이미 다른 남자 동기에게 익히 들었던 터라 언젠가 내게도 생길 상황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다니. 하긴. 태풍 오는 거 미리 안다고 해서 피해 없나 뭐. 

 내 성향과 어울리지 않는 아주 급한 운전까지 해가며 10분을 딱 걸쳐 도착했더니 첫인사는 왜 이렇게 늦었냐는 말이었다. 어이가 없어할 여유도 없이 차 문을 열라며 손짓했고 이제는 짜증이 솟구치기 시작할 때는 뒷좌석에 두 명의 부장이 타고 있는 걸 확인했다. 잠깐만, 저 양반은 다른 지역에 사는 양반 아니야? 가는 데만 1시간 걸리잖아. 얼떨결에 같이 탄 부장은 내게 미안한 연기를 하기도 했지만 그 연기가 어설프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고 잠시 후에는 눈에 보이는 편의점에 잠깐 들렀는데 돌아오는 부장들의 모습을 보니 차에서 마실 맥주를 들고 해맑게 걸어오고 있었지. 경찰들은 게으른 공무원 중에 하나일 뿐이니 걱정 말라며 내게도 한 캔을 건넸지만 잘 참아냈다. 넙죽 받아 꿀꺽 마셔버렸다면 가지고 있던 분노와 짜증이 취기를 끌어올려 자칫 가드레일이라도 박아 버리고 싶은 아주 이상한 행동들을 생각해 버렸을 테니까. 역시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야. “아직도 내비를 보면서 가야 되냐.”, “왜 이렇게 천천히 가냐.”, “노래 좀 틀어봐라.” 뒷자리에서 시작되는 다양한 종류의 핀잔을 듣고 있다 보니 술을 마시지 않았어도 홧김에 꽤나 큰 사고를 치는 상상을 실제로 하기도 했다. 마침 뒷자리에 있는 부장들은 안전벨트도 하지 않았으니까. 이런 거 보면 가끔 나도 내가 참 무서워. 

 그 이후 몇 차례의 기자가 아닌 기사 생활을 이어가고는, 그리고 나만의 기준(남들보다는 폭이 넓다고 생각하는데)에서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는 몇몇의 일들을 6살 터울의 친형에게 전하기도 했다. 우리가 같은 세대긴 해도 좀 더 일찍 달려가고 있는 형 때도 이랬냐고. 일종의 상담 개념으로. 그러자 대기업 딱지를 갖고 있던 형으로부터 돌아오는 답은 내 감정을 미지근한 온도로 만들었다. 

 “언론사라는 것들이. 요즘 그런 회사가 어딨냐?”

 참 이상하지. 언론이 직장 내 괴롭힘 제도, 직장 내 갑질 등의 심각성을 보도하며 직장 내 문화의 선진화를 펜 잉크와 손목관절염까지 끌어 모아 앞장선다고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과거에 머물러있었으니까. 과거를 그리워해서 그런 건지. 딱히 그리워할 이유도 없어 보이는데. 아, 김영란법 시행 이전의 세상을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르겠구나. 

 이유를 모르겠지만 일을 할 때는 겁이 없었다. 단순히 일을 해야 한다는 접근과 생각만 가지고 상대방이 어떤 불량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내게 큰 고려사항이 아니었고 단지 그날마다 내게 주어진 할당량의 일에만 몰두했었다. 그게 정답이라고도 생각했고. 사실 피웠던 농땡이도 수도 없이 많았지만. 

 이 지역에 오자마자 언론과 경찰들에 가장 불만이라고 느꼈던 점은 불법 성매매와 관련된 기사나 단속이 수년간의 기록을 찾아봐도 매번 겉핥기 식뿐이었고 근본적인 해결책에 접근하는 방식조차 서투르다고 느꼈다.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결론은 언론과 경찰이 게으른 겁쟁이라고 분석한 건 확실하다.

 그래서 지역의 풍토(?)를 조금이나마 뒤집기 위해 한동안은 불법 성매매와 관련된 유흥업소를 들락날락거리거나 현장 취재를 나가 속보 기사로도 연달아 지면에 실리기도 했다. 잠입 취재 과정 중에서도 유흥업소와 경찰의 유착 멘트도 직접 듣게 되자 생각했던 것보다 사회가 더 검은 세상이라는 것을 실감하기도 했지. 그러다 보니 어느 날 한 번씩 나를 대상으로 하는 반가운 살인 협박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입사 초반엔 육두문자 가득한 협박성 전화를 받을 때면 가슴이 철렁거리기도 했다. 듣고 있으면 5초 만에 잠들 수 있는 선배들의 ‘나 때는’ 경험담에서는 “악성 민원인들이 직접 회사에 찾아오기도 한다.”, “예전에는 해코지를 당하기도 했다.”, “회사 앞에서 항의성으로 시위를 하기도 한다.”는 다채로운 얘기들도 들어있었으니까. 이러다 진짜 보복성 상해라도 당하는 건 아닌지, 비밀스러운 장소에 끌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건 아닌지 영화 속 인물들에 스스로를 대입해보기도 하면서 나만의 각본을 쓰기도 했었다. 

 하지만 수습 딱지를 떼고 1년이 지나서 무자비한 항의성 협박전화의 빈도가 줄어들면 왜인지 모를 아쉬울 지경에 이르고 만다. 타격 좀 있을 텐데 왜 잠잠한 건지, 내 필력이 약해지고 있는 건지 걱정들을 하면서. 그래도 기자가 가져야 할 쌈닭의 기질은 애착인형처럼 항상 곁에 두고 있었다. 

 한 번은 친한 다른 회사 선배가 따로 할 말이 있다며 연락을 취해왔다. 기사 잘 보고 있다는 첫인사와 함께 커피 한 잔 하자며. 반가운 마음에 외근을 나오자마자 선배가 있는 경찰청 기자실로 향했다. 우리는 커피를 든 채로 산책을 시작했고 어울리지 않게 분위기를 잡는 선배의 모습에서 처음엔 무언가 부탁을 하려는 모습으로 착각했다. 그러자 선배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이제 적응도 끝났을 텐데 위험한 건 적당히 해. 어차피 회사는 너 안 지켜줘.”

 게으르고 인성도 형편없는 다른 선배가 이런 얘기를 했다면 당신 같은 겁쟁이 같은 기자들이 기자 명함 들고 있으니 사회가 안 바뀌는 거라며 거만한 태도를 유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 실력이나 성실성 같은 부분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선배가 이런 얘기를 하니 그 말들의 의미들을 곱씹게 되었다. 나보다 인생 7년 선배이기도 한 선배 조언의 초점은 위험해지면서까지 일할 필요 없다며 내가 다치거나 피해가 생기면 회사는 신경도 안 쓰니 너무 힘주지 말라는 진솔한 걱정의 한 마디였다. 선배가 첫 직장에서 겪은 실제 경험담이기도 했을 것이다.

 간혹 어떤 이들은 회사에 바친 충성과 열정을 명분으로 먼 훗날까지 회사가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것이라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사실 나 또한 입사 초반 때만 하더라도 그랬고. 마치 회사에 인격체를 부여해 내가 정을 줬으니 너도 나를 따듯하게 대해 달라는 그런 류의 느낌이려나. 어떻게 보면 같은 결이겠지. 결국 회사가 아무리 업무만 하는 공간이라 해도 회사 안에 있는 존재들은 인간적으로 존중받는 대우를 원하는 것도 사실이니까. 사실 많은 걸 바라지 않았는데. 정말 그거 하나면 충분했는데. 아니구나. 연봉 인상도 바라고 있었지. 

 난데없이 시말서를 작성하라는 부장의 문자가 와있었다. 기사를 쓰기도 전에 머리가 복잡해지고 말았다. 머리가 복잡한 이유를 겨우 찾아냈다. 내가 뭘 잘못한 건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기사 아이템이 엉망인가? 에이, 그렇다고 시말서를 제출하겠어. 낮술 먹고 농땡이 피우다 국장한테 걸렸나? 글쎄. 그러면 데스크가 커버쳐줬겠지. 이런 자잘한 거 말고 회사에 뭔가 피해를 줬다는 건데. 생각의 끝이 보이지 않은 시점에서 이것들을 정리하기 위한 유일한 해답은 내 감정들을 분노로 메꾸는 것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갑자기 이렇게 시말서를 제출하라고 한다고? 

 부장의 문자를 바로 읽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 이를 눈치챘는지 데스크는 문자로 보내기엔 귀찮았을 내 시말서 제출 사유를 통화로 내뱉기 시작했다. 부장이 말하는 내용을 정리해보자면 농땡이 프로 선배가 담당하고 있는 기업 출입을 그가 퇴사하고선 줄곧 내가 맡고 있었는데 기업 보도자료에 전화번호라든지 주소, 메일 등 해당 회사의 홍보성 요소가 짙을 수 있는 부분이 포함되면 포털사이트로부터 제재 경고가 언론사 측으로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회사가 포털사이트로부터 벌점을 받았다라나 뭐라나. 같은 계열사의 옆 동네 언론사에서도 나와 같은 실수를 한 기자가 있어 해당 직원도 이미 시말서를 제출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시말서 따위에 신경 쓰지 않았지만 시말서 양식도 보지 못했던 터라 당황한 건 사실이었다. 반성문이랑 비슷한 건지 혼자 생각을 하는 와중에 갑자기 억울한 감정이 쏟아졌다. 그러고선 부장에게 짜증 비슷한 대응을 해버렸다. 누구 알려준 사람이라도 있었냐며. 몇 달 동안 똑같이 써왔는데 아무도 말 안 했다고 대들면서. 그러자 부장은 사회의 냉정함을 짧고 굵게 보여주었다.

 “바이라인에 네 이름 달렸잖아. 별 거 아니야. 네가 이번엔 제출해.”

 통화를 더 하다간 시말서를 한 장 더 제출해야 할 상황이 올 것 같아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회사의 같잖은 꼬리 자르기가 이런 건가. 이때부터는 내 분노가 부장을 향했다가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지금 부장한테 실수 한 건 아니지? 내가 지금 억울해하는 건 맞는 거야? 2년 차이긴 해도 여전히 회사 막내인데 너그러이 봐줄 수 있는 아량은 너무 큰 욕심인 거야? 왜 윗선들은 항상 누군가 제물 바치는 걸 좋아해? 정답을 말해줄 대상이 없는데도 혼자만의 한탄 섞인 질문을 연달아하고 나니 그사이 분노가 사그라졌다. 그러곤 얌전히 시말서 양식을 다운로드하고선 한 칸씩 채워나갔다. 

 그래도 잘 참은 거겠지. 마지막 데스킹을 하는 부장에게도 책임이 크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부국장 승진을 앞두고 있어서 이런 사소한 징계가 부담되는 것이냐 묻고 싶었지만. 윗선들 말이면 그냥 넙죽 다 알겠다고 하며 후배들 위한 자존심 같은 건 내다 버리셨느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잘 참은 거겠지. 그래도 사람 냄새나는 회사를 정말 눈곱만큼은 기대했었는데 기대한 내가 바보였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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