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도저히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가치관의 모습을 볼 때면 최대한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 노력한다. 어설프게나마 성숙한 척을 하려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수년이 흐르다 보니 어느새 내 자연스러운 행동양식처럼 자리매김했는지 말을 건네기조차 싫은 교양 없는 사람들을 볼 때면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다, 저 사람에게 예민한 부분이었구나 혼자 생각해버리면 그만이었다. 이럴 때마다 가끔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내 내면이 상당히 정적인 사람인 줄 알기도 했다. 설마 내 성격 중에서도 사회에서 그토록 우러러보는 신사적인 요소가 숨겨져 있는 건 아닌지 기대했지만 사회에 숨 쉬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반강제적으로 몸에 베긴 희생과 암묵적인 인내로 버텨왔을 것이다. 다들 참 대단해. 사회에는 짜증나는 일이 투성인데 잘들 살아가고 있는 거 보면.
직장에서의 생활도 나를 대입해 보며 깨달은 점은 길어도 3개월 정도면 업무에 대한 적응이 마무리되고 그다음부터는 익숙한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가 한 번씩 있을지 몰라도 적응이 끝났다는 건 내가 피울 수 있는 요령도 점차 늘게 된다는 것이다. 일찌감치 일에 대한 적응을 마치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 하루가 시작도 전에 선명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오전 중으로 취재 마무리, 필요하다면 취재원까지 만났다가 그 후에 점심, 마감 직전에 기사 쓰고 다음날 아이템 공부. 이 정도의 하루가 내가 보낸 많은 날들의 하루 일과가 되었다. 일이 어렵지 않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내 인생이 편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을 했고 그때만큼은 편하고 마음고생 없다는 것이 내 안에 어떤 쾌락적인 요소와 엮여 날마다 게을러지는 나 자신이 거울에 비치기도 했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부담 없이, 그렇지만 재미도 없이 이어가던 찰나였지만 감정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내가 이해할 수 없고 가장 싫어하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 깨닫기도 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말투부터 쌀쌀맞은 모든 인간들에 대해서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말투 또한 한 사람의 인성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는데 만남의 시작부터 상호 간의 존중과 매너가 결여돼있는 말투를 건넨다면 이 사람의 대체적인 인격을 알 수 있다는 아주 단편적이지만 나만의 관념이었다. 어쩌면 편견일 수도 있지만. 천천히 알아가면 모든 인간이 좋은 인간이라는 인간의 성선설에 누군가는 힘을 보태기도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에서 굳이 감정노동까지 하며 그런 사람들의 깊은 내면까지 알아갈 여유가 없어. 첫 만남부터 대화가 재밌고 인격이 훌륭한 사람들을 알아가기도 벅차거든. 첫인상이 좋지 않다고 말했지만 이건 그나마 정중한 표현이고 그런 인간들과는 상종도 안 한다는 게 내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해가 바뀔 때쯤 대규모 인사이동이 있었는데 회사에서 제일 유명한 선배가 내 사수로 들어왔다. 여기서 유명하다는 뜻은 긍정적 의미가 전혀 담겨 있지 않는 그런. 인사가 발표되자마자 정확히 8명의 선배들에게 연락이 왔다. 모두 같은 연락이었다. 힘내라. 그리고 버티라는.
새로운 내 사수의 평판에 대해 선배들의 얘기를 종합해보기도 했다. 실력은 형편없는데 본인은 잘하는 줄 안다, 이번 인사에서 모든 데스크들이 기피하는 부서원이었는데 이유는 성격이 빵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성깔 때문에 회사 사람들과도 다퉈 일부 직원들과 사이가 안 좋다는 얘기까지 종류별로 다양했다. 가장 걱정되는 건 단연 실력적인 부분이었다. 나머지는 극도의 스트레스 없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유독 싫어하는 사람들만의 주요 특성들이 이 정도로 크게 작용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면 내 사수가 가지고 있는 성격들이 이 정도로 강력할 줄 몰랐을 수도 있겠고. 가장 기본적인 말과 행동을 예로 든다면 아침에 해맑게 인사를 건네도 받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 “어디 가는지도 보고하라고.”, “8시 30분까지 아이템 내라고 했잖아.”(얘기한 적 없지만), “점심자리에 너도 참석해.” 건네는 대부분의 말들과 문자가 기본적으로 매너가 사라진 말투로 중무장해 툭툭 내뱉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그의 태도에 대해서 처음부터 불편해하면서 특별히 날 싫어하는지도 의심했지만 줄곧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니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알게 모르게 내가 해탈해버린 걸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에게서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할 무렵, 같은 부서에 있던 선배가 갑작스럽게 퇴사했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퇴사 사유는 뭐만 하면 쥐 잡듯이 잡는 선배의 주접이 더 이상 꼴 보기 싫다는 것이었고 여기서 그 선배는 당연히 내 사수다. 나이도 같은데 1, 2분만 늦어도 막내기자 대하듯 쪼아대는 행위를 사무실 전체에 내비치기도 했다.
사실 그 선배의 퇴사에는 내 책임도 있을 것이다. 3년 차를 앞두고 있는 시점부터는 내 안에 감춰왔던 본모습들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니까. 드러난 본성 중에는 솔직함과 분노와 예민함 등이 선발대였다. 선배들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과감하고 서슴없이 들이박았고 그 선배도 내가 평소에 잘 들이박던 선배 중 한 사람이었다. 동양철학수업에 배운대로라면 각자의 사상이 다르니 내 입장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넓은 포용력으로 이해해주면 된다고 했지만 수련이 덜 됐는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내 기준에서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앞뒤 할 것 없이 당사자에게 모든 불만을 털어냈다. 대표적으로는 매일 지각하는 것이라든지 기사 마감 시간도 못 지킨다든지 출입처와의 약속 자리에 1시간 늦게 온다든지. 이렇게 보니 시간 약속에 있어서 내가 좀 예민한 인간일지도. 부장은 내가 그 선배를 선배 취급 안 한다고 판단했는지 나를 혼내려 밤늦게 전화한 날도 있었다. 그런 부장에게까지도 내가 틀린 말 했냐며 소리를 질러댔으니 나도 참 온순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지.
선배가 짐을 싸고 나서는 내 사수의 뒷바라지 몫은 오롯이 내 몫이 됐다. 원래 대부분의 지분이 내 몫이었지만. 이제야 위기라고 실감했는지 부장은 갑자기 나를 따로 불러들여 특단의 조치를 내리듯 앞으로 사수 케어를 잘해달라며 부탁했고(보통 선배가 후배를 케어하지 않나?) 최대한 내 성질도 죽여달라는 말도 함께. 나는 사이코패스 같아서 한 번 사고 치면 큰 사고를 칠 것 같다고도 했다. 농담인 줄 알고 활짝 웃어버렸는데 부장 표정을 보니 농담이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부장의 말이라면 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내 역할이었으니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적당히만 열심히 해보려고 했다.
그 이후 그 사람과 지내는 점에 있어서는 내게 큰 문제가 없었다. 툭툭 쏘아대면 죄송하다고 하면 됐고 간혹 기분이 좋은 탓에 내게 농담이라도 몇 개 내뱉으면 자연스럽게 웃어주면 됐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다고 사수에 대한 반감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계속해서 들리는 그 사람의 행실 때문에 내 귀를 간지럽게 했으니까. 출입처에서마저 그 인간은 기본적인 예의가 없다고. 애들은 쥐 잡듯이 잡으면서 본인이 다른 선배들한테 하는 꼴 좀 보시라고. 대부분의 내용들이 그 사람의 험담이었다. 그렇다 보니 부장이 내게 그렇게 당부했던 부분은 희미해지며 나도 어느새 귀가 얇아지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극심하게 우려했던 부분은 따로 있었다.
기자라는 직업의 기본적인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 기준은 글 솜씨도 있겠지만 쓰려는 기사가 우리 사회에 왜 필요한지, 시의가 맞는지, 다른 언론사에서 나온 적은 없는지, 리드(첫 문장)로 어떻게 독자들을 사로잡을지, 기사 중간 이후부터의 몰입도는 어떻게 끌고 갈지, 이 기사로 인해 제삼자의 피해가 발생하는 건 아닌지 등의 많은 고려사항이 될 수 있다. 그동안 기사 쓰는 거에만 몰두해온 탓인지 크게 어려운 부분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부서가 바뀌고 나서는 다시 적응이 필요했고 몸집이 커진 부서에 오다 보니 알아두거나 공부해야 할 것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아졌다.
내 사수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겠지만 그래도 10년이 넘은 경력에서 나오기 힘든 처세를 볼 때마다 내 안타까움과 한숨은 날로 깊어지고 있었다. 여전히 내게 안 좋은 인식이 심어져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사 자체를 잘 쓰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네 사수는 그 짬밥에 아직도 무슨 소설을 쓰고 있냐며 매일 아침마다 내 사수에 대한 다른 언론사 기자들의 비아냥거림은 내가 담당해야 했다. 내가 다 창피했지.
수개월 째 반복되는 기사 지적에 부장도 지쳤는지 어느 날 술에 취하고 내게 힘든 점을 토로하기도 했다. 처음 한 두 달은 각오했지만 몇 달째 이렇게 매일 전화해서 기사 바꾸라고 하는 건 자기도 지겨워 죽겠다며. 그래도 연차가 있고 팀장의 자리인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평소에 싫은 소리 잘하지 않는 부장이 이런 소리까지 내뱉는 걸 보니 평소 아쉬움이 얼마나 가득한 지 알 수 있었다.
부장이 답답해하는 이유도 분명했다. 우리 부서는 매일 1면을 차지하는 게 당연할 만큼 담당 출입처가 주요 부처였고 다른 언론사도 마찬가지로 이런 부서의 팀장 자리에는 실력이 출중한 장수를 내세우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서 내보낸 장수의 실력이 하찮으니 결국 그 언론사 전체의 역량이 무시되고 있는 상황이고 한 마디로 그 사람으로 인해 망신살이 조직, 회사 전부 다 같이 뻗치는 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부분은 그 사람에게 개선 의지가 없다는 점이었고 게으름과 요령까지 피우고 있는 꼴을 보고 있으면 내 미래의 모습이 될까 봐 온 몸이 오싹해지기도 했다. 이미 일부는 닮아있겠지만.
가끔 사회초년생들이 1~2년 안에 퇴사해버리거나 이직해버리는 기사가 뜰 때마다 열려있는 귀로는 요즘 어린 친구들의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종합 기사평이 들리지만 나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한다. 자기들 회사에 본인의 미래를 맡길 상상하니까 끔찍했겠지 뭐. 나도 그러니까. 매해를 보낼수록 직장 내에서 성장한 본인의 모습을 그리는 것도 직장생활을 버티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데 눈앞에 있는 선배들이 막내가 보기에도 형편없는 모습으로만 보인다면 그 조직의 미래는 더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만약 10년 뒤에 지금 내 사수를 바라보듯 내 후배가 성장하지 않은 내 모습을 바라본다면 그것보다 비참한 인생은 없겠지.
그렇게 수개월이 지나자 부서 내 분위기는 내가 그동안 봐왔던 회사 분위기 중 가장 최악의 분위기를 걷고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부장과 내 사수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말다툼을 이어갔고 그럴수록 부장이 매번 화해의 손을 건네지만 그마저도 반복 양상을 보이자 어느 순간부터는 부장도 지쳐버렸지.
내게도 큰 문제가 있다면 그 사수와 진심 어린 대화를 해보려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지. 매번 시도는 했지만 초입에서 물러났다. 대화의 과정과 결말이 그려졌으니까.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왜 내 얘기를 듣지도 않고 본인 입장만 얘기하는 거지? 계속 이렇게 반복되다가 결국엔 다음 인사 때까지만 버티자며 속으로 마무리 짓고 말겠지. 나도 맘이 더 고왔어야 했고 성숙했어야 했다.
그리고 이때만큼은 부서 내 직원들끼리의 관계와 분위기가 어느 정도 중요하다는 점도 깨달았다. 조직 구성원들 간의 불화가 개인 업무에까지 지장을 줄지는 꿈에도 몰랐으니까. 아무리 기사 생산에 있어서 독립적인 구조라 할지라도 단톡방부터 부서회의까지 결국 눈치 보는 건 아랫사람들이고 그런 모습을 계속 보고 있으면 나와 상관없는 일일지라도 지치는 건 매한가지였다. 마치 부모들의 부부싸움을 매일 보는 자식들이 방에서 혼자 엄청난 감정노동을 하는 것처럼.
정말이지 세상에는 나를 피곤하게 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