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존재하는 어떤 관계에 있어서 반포기 상태에 다다르고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을 때쯤 비로소 터질게 터지고야 말았다. 이날도 다른 날처럼 어김없이 퇴근 후 출입처와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부서 단톡방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내 기사가 갑자기 인터넷에서 사라졌는데 행방을 아는 사람이 있냐는 부장의 연락이었다. 난 모른다고 답한 후 바로 홈페이지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에 엠바고 걸어놓았던 내 기사는 보란 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윗선들의 짓인지 홈페이지를 담당하는 미디어부의 짓인지 확인해야 했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윗선의 짓이란 걸 확신했다. 내가 쓰고 있던 기사는 동기들 2명까지 포함한 취재팀을 꾸려 꽤나 떠들썩하고 묵직한 기사를 쓰고 있었는데 해당 부처의 반응들이 생각보다 뜨거웠으니까. 속보기사가 나가기 시작한 날부터는 “너희 회장에게 연락하겠다.”, “너네 국장, 부장 다 알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하면 광고 다 끊어버리겠다.” 등의 흔하디 흔해빠진 협박들을 건네받았고 나는 매번 그랬듯이 할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대응하기 바빴지. 그럴 때마다 기사에 감정 한 스푼씩 넣으면서. 내 첫 스타트 기사를 시작으로 3일 연달아 속보 기사를 보도했고 그날 잘린 내 기사는 속보기사의 마지막 기사였는데 그렇게 이유조차 모르고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어느덧 기자 짬밥 3년 차를 넘기고 있으니 다른 선배들에게도 이런 경우가 있는 사례를 간혹 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선배들에게 왜 그냥 넘어가냐고. 기사 쓴 기자에게 양해 같은 것도 구하지 않고 위에서 그냥 까라면 까야 되는 거냐고. 기사에 대한 자존심이나 자부심 같은 거도 없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또 사고뭉치 인식이 번질까 봐 입을 닫고 있었다. 그러고는 다짐했다. 내게 그런 일이 있다면 내 선에서는 들고일어나겠다고.
그런 일이 그렇게 멀지 않은 시기에 그리고 갑작스럽게 내게 터지고 만 것이다. 술 때문에 예민한 감정이었는지 나는 술자리가 끝나고도 생각에 잠기다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결국 자정이 다된 시간에 윗선에게 전화했다. 처음에는 약간의 떨림과 함께 잔잔한 목소리로 내 기사의 행방을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 잔잔함은 오래가지 못하고 좋게 얘기하면 알아먹지 못하는 상대방의 대처에 나는 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이유를 말해달라는 질문까지는 내 생각에는 정중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다음에 얘기하자는 윗선의 대답에 답답한 나머지 나도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잘랐다는 답을 들었고 나는 그다음에 기사를 왜 잘랐는지 설명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기사가 왜 잘리면 안 되는지 누군가 들었다면 지루했을 연설까지 늘어놓았다. 아마 상대방은 내가 술이 좀 취했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사실 그리 힘든 기사도 아니었지만 며칠 동안 죽어라 취재하고 고민해서 썼다며 생색을 내며 따졌고 어쩌면 나는 그 기사가 왜 잘렸는지 알고 있었지만 사과를 받고 싶었던 것일까. 어차피 이 윗선도 회장이나 대표의 지시를 받고 잘랐을 테니까. 십여 분간 서로의 약간 높은 데시벨을 가지고 나눈 대화의 말미에서는 해당 기자인 내게 사과하라는 당돌하고 버릇없는 말을 내뱉었고 결국 지친 상대방도 까마득한 후배에게 자존심 때문에 말하지 못한 말을 건네며 통화를 끝냈다. 계속 이어지는 노골적인 말싸움에 지쳤는지 사과의 말투에도 맥아리가 없었지만.
“그래. 나도 지시받고 킬 시켰다. 미안하다. 미안해. 됐나?”
마지막에 책임을 지라고 했는지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그랬는지 기억은 불분명하지만 아마 나는 다음날 잘릴 각오도 했던 것 같지. 잘리면 아무 말 없이 그만두기 위해 자기 전 큰 쇼핑백도 미리 챙겨놓았다.
잠들기 전 다시 생각해보았다. 이 사태 자체를 모르고 있단 것에 부장에게도 열불이 난 상태였지만 부장은 내 전화를 계속해서 받지 않았고 결국 나는 누워서 이날의 사태들을 다시 점검했다. 내가 다음날까지 참지 못했던 이유는 어차피 똑같은 대처로 일단락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니까.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윗선 지시니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가 달라는. 대신 윗선에서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는. 2년 전부터 보아왔던 뻔한 대처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때 동안 바뀐 건 하나 없었지.
내가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밤 12시에 전화한 게 문제가 되면 될 것이다. 너무 늦은 시간이긴 했으니까. 하지만 대화 과정에서 반말이나 폭언은 하지 않았고 그 사안에 대해서만 기자가 할 수 있는 얘기를 했다고 판단했다. 모든 행동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본 결과 나는 그 행위에 대해서 정당한 대응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행위들로 인해 앞으로 이런 똑같은 일이 발생할 경우 평기자들 성질이 더러우니 앞으로 좀 조심해야겠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평기자의 무게감이 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하라고 이 조직에서 배우기도 했고. 이런 생각을 다 하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다음날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어색한 감정을 가지고 다음날 눈을 떴을 때는 부서 단톡방에 긴급회의를 하자는 데스크의 연락이 와있었다. 술 때문인지 분노가 차올라서인지 이유는 헷갈렸지만 속은 뒤집힌 상태였고 다행히 깨끗하게 샤워를 한 이후에는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회사가 아닌 외부에서 모이자고 하는 이유는 부장이 특별하게 할 말이 있다는 뜻이었고 그렇게 우리는 누구 하나 괜찮은 기분이 아닌 상태에서 회의를 시작했다. 시작은 기사의 행방에 대한 회사의 짓거리에 대해 논했고 그다음은 내가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 구구절절 얘기하기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그리 길지 않았다.
어제 막내 기사에 관해서는 윗선의 사과를 받았고(예상했던 대로) 근데 막내가 윗선에게 그렇게 늦은 밤 전화한 건 데스크 입장에서 이미 윗선들에게 지고 들어가는 것이라나. 막내는 월요일 아침에 그 부분에 대해서만 사과를 하고 오라는 말까지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얘기를 듣는 와중에도 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분했으면 12시에 전화했겠냐는 간단한 말들로 적어도 부장은 조금이라도 내편을 들어줘야 되는 건 아닌지 나는 왜 직접 사과를 해야 되는지 할 말 다 하는 MZ세대의 본능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부서원들 다 있는 자리에서 괜히 또 시끄러운 분란을 만들기 싫었고 조만간 데스크와 술을 마시면서 조곤조곤 얘기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부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번 일로 위축되거나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건넸고 나는 이 말과 부장의 표정에서 그의 진심을 엿보기도 했다. 마치 나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하소연 같았지.
부서회의를 마치고 동기들끼리만 모인 자리에서는 그래도 동기들의 응원과 격려를 받기도 했다. 대신해줘서 고맙다고. 나는 네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할 말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다행히 나와 같은 생각이었고 굳이 동기들이 그날의 일들에 관해 가만히 있었다고 해서 너희들은 왜 가만히 있느냐는 투정도 부리기 싫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흘렀을까. 회사에서 중간 연차 정도 되는 선배가 술자리를 제안했다. 평소 잘 따르던 선배 인터라 반가운 제안이었지만 그날은 선약이 있어서 자리를 같이 하지 못했다. 내가 저지른 행동들이 다른 부서 선배들의 귀에 들어간 경로는 데스크들 회의에서 내 얘기가 나왔다는 것이겠지. 나중에 알았지만 그 회의 자리에서 한 부장은 얼마나 위계질서가 없으면 그 시간에 평기자가 임원들한테 전화하는 일까지 생기냐며 기강이 빠져도 단단히 빠졌다는 꼰대 같은 얘기도 있었다는데 아마 나대는 내 모습이 꼴 보기 싫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다고 내가 달라졌을까. 오히려 그 말을 들은 날부터는 데스크들을 봐도 인사도 하지 않고 무시해버리는 이전보다 더 사고뭉치가 되어 있었지.
소위 내가 일으킨 행동들 때문에 나를 지지하는 파, 나를 업신여기는 파 이 두 파가 갈라지기도 했다. 먼저 나를 지지하는 파로는 아무래도 평소에 잘 지내던 선배들이 가득 찼고 내게 많이 힘들었겠다며 위로를 해주기도 했다. 그에 반해 내 행동을 불편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은 평소 질투심이 많은 사람들이었고. 무시해버리면 그만이었다.
매번 느끼고 있던 터라 새롭지는 않지만 나는 이때 또 강렬하게 느낀 건 결국 회사라는 곳은 정치질이 곳곳에 숨겨져 있는 장소라는 것이었다. 데스크가 그렇게 내편이 되어주지 못한 건 결국 부국장, 국장 승진까지 결승점이 그리 멀지 않으니 괜히 말썽 피우기 싫었을 테고 윗선들도 결국 회사 사업과 연결돼있는 사람들의 연락을 받아 기사를 잘라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것이다. 그나마 언론사에서는 사람들 간의 이런 정치질이 덜한 곳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언론사도 결국은 어떤 회사의 일부일 뿐임을 실감하게 됐지. 이 과정에서 내가 가장 역겨워하는 건 밖에서는 기자랍시고 떵떵거리며 살라며 고개가 뻣뻣해진 양반들이 본인들의 이기적인 야망에 있어서는 한 마디도 못하는 비열한 인간임을 확인할 때다.
처음에는 언론인의 자부심이라는 이해로 그런 떵떵거림이 사회를 위한 멋진 자존심으로 받아들였지만 결국 언론의 역할과 이해에 대한 존중보다는 단순히 사람이 밖에서 건방져진 것일 뿐이었다. 어디 기자가 인사를 하러 가냐. 지들이 오게 해야지. 어디 기자가 술을 따르냐. 어디 기자가 지갑을 여냐. 밖에서는 임금님 대접받는 사람들이 결국 회사 내부에서는 찍소리도 못하고 위에서 까라면 까라는 식의 수직적 구조에 관해 소신 있는 말조차 하나 꺼내지 못한다는 게 내 눈에는 그저 비겁한 겁쟁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물론 사람들마다 처해있는 입장이 다른 상황에서 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만약 자식 둘을 키우는 상황에서 더 나은 상황을 위한 고지가 멀지 않은데 회사의 말썽들을 최대한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본인이 어디 가서 언론인이라고 하는 사람이라면 사회에 있는 부조리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살아가는 언론인이라고 하는 사람이라면 그까짓 야망 따위보다는 정답에 가까운 맞는 말을 하는 게 사회에서 추구하는 소신이지 않을까. 언젠가 한 번씩 부끄러워지지 않도록. 원래 부끄러운 순간들은 오래 기억에 남으니까.
아니면 내가 참는 게 정답이었을까. 난 평소에는 잘 참고 있으면서 한 번씩 터질 때는 왜 이렇게 감당하지 못할 만큼 터져버리지? 진짜 분노조절장애 비슷한 게 있는 건지. 보통 사람들이라면 참았을 텐데. 다른 선배들처럼. 그래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속한 조직을 어떻게 키워나가면 좋을지 나름대로 성장의 냄새를 조금씩 맡아가긴 했지만 내가 조직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사회는 어떤 부분을 조심스러워하는지 그리고 내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성숙의 그림은 전혀 그리지 못했나 보다. 참아야 하는 건 매번 기억하고 있었지만 언제 어느 순간에 참아야 될지 몰랐거든. 그렇다고 모든 순간에 참을 수는 없잖아. 이런 거 보면 나이만 계란 한 판 가득 채웠지 아직 애라니까. 철학 공부는 뭐하러 했는지.
만약 부장이 그날 부서회의에서 지금 상황에서 자기도 윗선들에게 들이받으면 괜히 미운털 박힐 것 같다며 본인의 상황도 이해해주면 안 되겠냐는 양해를 구했더라면 내가 이 정도까지 회사에 정이 떨어졌을까. 회사에서는 절대 주목받지 말라는 친형의 조언을 결국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내가 믿고 의지하고 있는 부장까지 결국 언론인보다는 남들과 똑같이 야망과 명예에 눈먼 인간이라는 점을 깨닫자마자 나는 조금씩 짐 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나도 내 성질대로만 살 수 없는 순간들이 닥치겠지. 그러면 그때쯤에는 나도 깨달아야겠지. 평생 내 멋대로 사는 건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철딱서니 없는 거라고 판명 짓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