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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ramram Jan 17. 2022

나 이제 진짜 '백수'구나?

퇴사 후 어느새 한 달, 불규칙적인 그리고 조금은 규칙적이기도 한 일과에 어느새 적응되기도 했다. 2주까지만 하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자고 있다가 혹시 다음날 해야 할 일들을 안 해놓은 건 아닌지 화들짝 놀라 깨지만 ‘아, 나 백수지?’ 깨닫고 다시 고요하게 잠들어버린다. 

 퇴사를 하던 날도 여전히 생생하다. 짐을 싸고 나오는 과정까지 나 하나만으로 회사 전체에 어색한 공기를 흐르게 했고, 겉치레 잔뜩 들어있는 위로도 누군가가 속삭였지만, 당장 들었던 생각은 어서 그 숨 막히는 곳에서 나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당당하지만 대책 없는 내 미래와 마찬가지로 사직서도 어떤 맥락 없이 대충 써서 데스크의 빈자리에 놓았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성숙한 척을 하기 위해 다른 직원들에게도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인사를 전부 돌렸고, 그렇게 나는 그때부터 초라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퇴사자의 길을 걷고 있다. 

 퇴사 후 일주일까지는 실제로 일을 그만뒀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아 머리와 동공이 멍한 상태에서 천장만 바라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러다가 오후 마감 시간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자신을 보며 실감이 조금씩 드리워질 때 누워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지개를 시원하게 켰고,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그 자체가 사람의 행복 수치를 무한대로 끌어올렸다. 

 그렇다고 지겹도록 반복해온 습관이 1, 2주 만에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틈만 나면 휴대폰으로 마감 시간을 확인하고, 전화 온건 없는지, 잊어버린 일정은 없는지 달력을 수시로 체크했고, 심지어 다음날은 무슨 업무를 하면 되는 요일인지 생각하는 습관마저 내 머리와 행동은 여전했다. 그럴 때마다 집에서 혼자 미친 사람처럼 “이제 시계랑 달력 좀 보지 말라고! 얼른 자유를 만끽해라 좀” 나 자신을 타일렀지만, 그때까지는 듣는 시늉만 하는 나 자신이었다. 

 퇴사 3주 차가 되어서는 ‘낮에도 집안이 이렇게 조용했었나?’라는 생각들을 하며 낮의 고요함을 만끽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는 휴대폰을 안 들고 다녀고 불안하지 않았다. 주머니에 아무것도 없이 산책한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나. 이래서 지율스님은 진정한 채움의 비결이 비움이 있다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일을 하면서 알고 지낸 사람들에게 그만두고 나서도 많은 연락이 왔지만, 거의 받지 않았다. 그중에는 내가 받을 때까지 3, 4번씩 연락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연락들은 경쟁사였던 다른 언론사 선배들의 일자리 제안 연락이었다. 그러면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거기 간다고 뭐 달라지나요. 이제 재미없는 글 안 써요”

 어떤 언론사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게 해 준다고 약속했지만, 믿지 않았다. 그 사람을 믿지 않았다기보다는 그 언론사 조직을 믿지 않은 것뿐이다. 

 일을 하면서 꾸준히 다니지 못한 헬스도 다시 다니고 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2, 3번밖에 다녀오지 않았지만, 이제는 매일 새벽, 오후, 하루에만 2번씩 다녀오고 있으니, 몸이 한결 건강해진 느낌이다. 가벼워진 느낌은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술을 끊어야 하는데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  

 퇴사 후 지난 한 달간 내 머릿속을 가장 많이 채운 생각들을 돌이켜본다면, ‘올해는 어떤 방식과 어떤 마음가짐으로 후회 없이 놀아볼까’라는 생각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은 내 미래에 대한 고민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도 글과 관련된 일을 해야 하는데, 죽기 전까지 꾸준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긴 하지만, 먹고사는 데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소소한 걱정들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꾸준히 하는 사람이 이긴다’, ‘너의 열정을 믿어라’ 등 낭만적인 얘기들에 귀 좀 기울일 걸 그랬나 보다. 

 작년을 다시 생각해본다면 하루 온종일 쉬었던 날은 하루도 없었던 것 같다. 내가 기억 못 하는 날도 있을 수 있겠지만, 토요일이나 일요일 등 쉬는 날에도 기사 준비를 하느라 바빴고, 또 현장 기사도 많아 쉬는 날 몰래 다녀오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일을 질려했던 이유도 피로도가 극에 달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고,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더 익숙해질수록 그만두길 잘했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됐다. 

 본능적인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재테크 관련 책을 어느새 10권 넘게 읽었다. 그런 책을 읽고 있으면 나도 이미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 때문인지 꽤나 흥미가 생겨 습관적으로 책을 집게 된다. 머릿속에 남는 건 별로 없지만.

 하루 중 가장 아끼는 시간이 있다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시간일 것이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3번, 한 번 산책할 때마다 30분에서 1시간씩 하는데, 일 할 때만 하더라도 강아지가 용변만 보면 급히 산책을 마쳤지만, 이제는 설렁설렁 뒷짐을 진 채로 강아지가 어떤 냄새를 맡든 전부 기다려준다. 뭐 급할 게 없으니. 매일 아침마다 아파트를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를 만나는데, 이제는 나보다 강아지한테의 안부인사가 더 익숙하다. 

 “이놈아. 너는 산책도 많이 하고 좋겠다야”

 그럴 때마다 우리 강아지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끼를 부리지만, 할 일이 먼저인 아주머니는 매정하게 떠나버리곤 한다. 

 아, 그리고 새해가 되자마자 결심한 게 하나 있었는데, 이미 지난 10년 동안 이어져온 새해 결심일 수도 있다. ‘금주’라는 녀석인데, 1일에 시작해 2일에 무너졌다. 일을 안 하면 오히려 금주가 수월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오히려 내게 자유가 부여되자 더 편하게 술을 마시는 고주망태가 되어있다. 이제는 인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술에 환장하는 인간이라고.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내게 뻔한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갑자기 끊으려 하면 더 안될 걸? 조금씩 줄여나가는 걸로 해봐”

그 이후 나는 격주로 음주 1회 허용이라는 목표를 가졌지만, 3일 만에 실패하고 주 1회도 3일 만에 실패, 지금은 주 2회로 목표가 다시 수정됐는데, 그나마 아직까지는 지켜지고 있다. 사실 지금은 내가 목표로 하고 있는 금주가 진행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평균적으로 계산해보니 이전과 다를 바가 없다.  

 하. 내가 술 하나도 못 끊는 허접한 인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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