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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ramram Feb 10. 2022

다이어트와의 전쟁

지난 10년간 내 체중 역사를 살펴보면 남들보다 굴곡이 가파른 편이다. 학창 시절에도 뚱뚱한 편이었고, 수능이 끝나자마자 두 달 만에 20kg을 빼고 나서는 ‘살 빼는 게 그리 어렵지 않구나’라는 거만한 자세로 다이어트를 바라보곤 했다. 적어도 20대까지는.

 내 체중은 잠깐 방심할 때마다 급격한 수직 상승으로 대응했고, 바지를 입으면서 ‘아. 진짜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수준에 이르면 다시 극단적인 다이어트에 돌입하는데 이제는 이 행위를 죽을 때까지 해야 된다는 걸 매번 머릿속에 주입시키고 있다. 받아들이기 굉장히 거북하다.

 지금의 내 처지는 바지를 입을 때마다 짜증이 솟구치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극단적인 다이어트에 돌입해야 할 시기라는 뜻이다. 3년 가까운 지난 직장생활을 돌이켜보니 어찌 보면 살이 안 찌는 게 이상하다고 할 수 생활이었다. 낮에는 온갖 음식을 대접받으며 술을 곁들이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였고, 저녁에도 낮 문화에서 한층 진화된 방식으로 과음하는 게 서로 간의 약속이었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살이 찌려고 발악하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어느새 옆구리 살이 한 움큼씩 잡히고 있고, 매일 아침마다 거울로 확인하는 내 배의 옆모습은 어느새 내게 당연한 광경이 되어버렸는지 살이 쪘는지 조차의 인식도 망각해버렸다.

 20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요요현상이 오지 않는 인류에서 희귀한 존재로 생각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광신하고 있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다이어트를 한 인원 중 95%가 5년 안에, 99%가 10년 안에 체중 유지에 실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하니, 나는 그 최소 5% 안에 해당하는 특수 존재였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살이 5, 6kg 정도 찌더라도 한 달만 운동하면 거뜬하게 몸무게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서른 근방이 될 때쯤에는 다이어트를 하고 나서 10년까지의 기간까지 채워 1% 안에 해당하는 특수 존재 여건을 채웠고, 나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역시 나는 예상대로 세상에서 꽤나 스페셜한 존재였어. 히어로의 능력은 없지만’ 등의 생각들을 하며 나 자신을 혼자 쓰다듬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도 살이 찌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직장에 들어갔을 때는 내가 그동안 생각해온 나에 대한 사랑 가득한 확신들이 결국 부질없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세상은 원래 노력한 자의 성의에 보답한다고 했었나. 그렇게 살을 찌우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다 보니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돼지의 완성형에 도달했고, 결국 방법이 없다. 일도 그만뒀으니 살을 먼저 빼야겠다.

 테슬라의 주식처럼 급격한 우상향은 아니어도 내 몸무게는 개미들이 신뢰할 수 있는 꾸준한 우상향의 곡선을 그렸고, 계산을 해보니 지난 3년간 내 몸무게의 수익률은 17% 상승의 대기록까지 세워버렸다. 역대 최고 주가였고, 체중계에 올라가 최종 확인을 했던 날에는 사람을 많이 만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공포와 분노에 휩싸였기 때문에.  

 학창 시절에는 몰랐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깨달은 급격한 체중 증가의 문제점은 나도 남들처럼 대인기피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직접 겪지 못했을 당시에는 ‘사람이 살이 좀 찔 수도 있지 뭐. 무슨 대인기피증까지 생겨?’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지만, 내가 당사자가 되고 나니 어떤 느낌인지 공감하는 중이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 이유 중에는 먼저 상대방을 깊게 배려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문화로 판단했다. 소위 격식만 차려대는 이 동방예의지국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만 예의를 갖추고 오히려 조금씩 안면을 트고 나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사라지는 참 이상한 문화를 지닌 나라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왜 그렇게 살쪘어?”, “인생이 아주 속편하구만?”, “야. 바지랑 볼 터지겠다” 등 당사자에게 어떤 사연이 있어, 어떤 아픔이 있어 체중 변화가 있는지의 여부는 상관하지 않은 채 서로의 외형적 평가가 스스럼없이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나 심한 우울증 걸려서 폭식증 걸렸어”라고 말하면 그때 되어서야 미안하다고 답변이 돌아오지만, 이미 당사자의 마음에는 두 번의 깊은 상처가 새겨졌을 것이다.  

 짧게 있던 미국과 일본에서의 비교 대응이 있어서 왜 우리나라만 다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미국에서 만난 친구는 중학교 때 어떤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살이 쪘다고 놀려 싸움이 붙었었는데, 징계는 살이 쪘다고 놀린 학생에게만 내려졌다고 했다. 미국에서 성인들 사이에서도 아무리 친한 사이의 친구여도 그런 말을 하면 다시는 그 친구를 만나지 않을 정도의 실례이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런 말을 한다면 혼자 몰상식한 인간이 될 정도의 결례에 해당한다고 했다.

 일본에서의 반응도 비슷했다. 누가 봐도 몇 달 전보다 살이 많이 찐 사람을 본 일본인들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는 것 자체에만 집중했으며, 일본에 1년 넘게 있는 동안 서로의 외형적인 부분에 대한 대화는 단 한 번도 나누지 않았다. 나눴다면 ‘한국인들은 키가 크다’라는 대화 정도? 왜 그런지 일본인들에게 물어보니,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그런 말을 상대방에게 왜 하느냐, 그런 말들은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는 게 일본인들의 답변이었다. 

 한편으로는 살이 쪘다는 게 외형적으로 엉망이 되었다는 사회적 낙인을 찍는 만큼 구조적인 문제라고도 생각했지만, 그런 복잡한 구조와 논리를 파헤치기보다는 차라리 혼자 운동을 해서 살을 빼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었다. 

 어느새 다이어트 2주 차 돌입. 서른 넘어가서 처음으로 제대로 하는 다이어트지만, 뭔가 예감이 불길하다. 이 정도면 조금씩 빠지는 느낌이 들어야 되는데, 혹시 이 살들은 사람들이 말하는 ‘직장인들의 술살’이라는 건가. 그 살들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했었는데, 견디기 힘들 것 같은 한 달이 벌써 기다리고 있다. 

 그나저나 집인데 어디서 치킨 냄새가 나는 거야 진짜...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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