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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ramram Feb 07. 2022

“요즘 유행에 안 맞게 무슨 결혼이냐?”

만나고 싶어 하는 어떤 마음도 없이 20년이 넘어가는 친구들과의 만남은 이제 이런 식으로 갑작스러운 번개로부터 시작된다. 20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남자들의 우정이 영원히 찐할 줄 알았지만, 서른이 넘어가면 어느새 친구들의 안부도 신경 쓰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렇다고 서로의 정신없는 생활패턴에 ‘서운하다’는 투정을 부린다면 더 유치한 행색이 되어버리니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그들을 응원해주면 된다고 결론지었다. 30년 가까이 몸을 담근 서울을 떠나 타지에서 지낸지도 벌써 3년 차가 되어가고 있는데, 내가 술을 마시고 싶다면 2시간 거리여도 바로 달려오는 친구들이 있다. 매번 올 때마다 그들에게 할 일 없는 한량꾼들이라고 놀려대지만,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런 인복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비싼 술을 사주기 때문에 곧장 달려오는 것 일수도 있겠지만.

 서른 안팎 남자들의 대화 주제는 20대 초반 때의 대화 주제와 크게 다를 것 없다. 뻔한 농담들과 매번 똑같은 장난들, 저질스러운 얘기까지 여전하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삶이 팍팍하다는 현실적 증언이 한 사람씩 많아지기 시작한다. 태어나서 한 번도 좋은 얘기가 없던 정치 얘기나 거추장스러운 경제 얘기보다는 ‘직장 상사를 없애고 싶다’, ‘4년째 월급이 그대로다’, ‘내가 기사 노릇 하려면 대리 운전하지. 뭐 하러 취업했나’등 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분노와 불만을 내뱉기도 한다. 

 가끔은 사회가 미쳐가고 있는 건지 내 친구들만 미쳐가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총기 소유가 합법화된다면 인구는 얼마 만에 절반이 될 것인지, 살인이 하루 동안 허용된다면 누구를 가장 먼저 죽이고 싶은지 등 남들이 듣기엔 섬뜩할만한 대화 주제지만, 어느새 나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앞에 두 가지의 질문에서 가장 보편적인 대답으로는 ‘한 달’과 ‘직장상사’가 가장 많았다.

 석 달 만에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친구들의 안부를 묻고 아무 이유 없이 떠들면 2차까지는 거뜬하다. 3차까지 가면 나는 이다음날 아무것도 못하고 오후 7시까지 오바이트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이럴수록 나란 사람도 인간이라는 사실에 만족한다. 똑같은 실수를 평생 동안 반복하고 있으니. 그리고 3차에서는 서로의 진지한 얘기들을  늘어놓게 되는데, 이날의 포문은 내가 열었다. 

 “나 결혼하려고” 

 순간, 내 앞에 있는 2명의 남자들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5초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예상하지 못한 대화 주제였을 것이고, 무리 친구들 10명 중에 내가 첫 번째이니 당황하기도 했을 것이다. 

 “뭐야. 내가 방금 사람 죽였다고 했냐?” 분위기를 어색하게 하는 건 나도 싫었다.

 “지금 만나는 친구랑? 얘기 끝난겨?” 결혼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첫 질문은 이렇게 비슷하다. 

 “응. 얘기는 잘 되고 있고, 어쩌다 예식장도 예약해뒀다” 술에 취한 와중에도 여기에서 ‘어쩌다’란 단어는 어색했다.  

 “진짜?” 두 사람의 반응도 부모님과 비슷하게 열렬히 놀란 반응이었지만, 약간의 온도차는 보였다. 부모님은 순도 100%의 환영 입장이었다면, 내 친구들은 어떤 위기의식을 느낀 사람들처럼 보였는데, 아마 앞으로 나와 자유롭게 놀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아. 이제 하나, 둘 가는 건가. 하긴, 이제 어느 정도 시기는 됐지. 근데 너 비혼주의자 아니었어?”

“그러게.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결혼이냐?”

 언젠가 나는 결혼과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란 것을 깨닫고선 친구들에게 ‘비혼주의’를 선언한 적이 있다. 그 성향 중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꼭 해야만 하는, 현실과 타협을 잘하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점이 결혼생활에 있어서 내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만 마음 아프고 속 쓰린 건 문제가 아니었지만, 상대의 삶까지 지치게 한다면 그 마음속 짐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일종의 겁이 섞인 사전적 예방조치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랬었지, 근데, 어느 순간부터 결혼에 대한 기대감도 생기는 것 같아. 내가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진짜 좋아하는가 보구나”

 “이 xx, 철들었네?” 이 정도의 비아냥은 거의 칭찬 수준이다. 그리고 이때쯤이면 꼭 나오는 안건(?)이 있다. 

 “비용은? 만만치 않잖아.”

 “그러게. 지난주에 통장 보니까 10만 원도 없더라. 그래서 마이너스 통장 뚫었지.”

 “인생 참 고달프다. 그렇지?” 

 “아.... 결혼... 나도 생각하니까 진짜 막막하다. 그래도 축하할 일이다. 아직 좀 남았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 그때부터, 이곳에서는 ‘결혼’을 한다는 게 최신 유행을 따라가지 않는 촌스런 행위로 취급받고 있다. 아니다. 촌스런 행위보다는, ‘왜 스스로 불구덩이에 들어가?’와 같이 어리석은 짓의 취급이 가깝겠다. 그 이유에는 먹기 살기 각박한 세상에서 나 하나도 먹여 살리기 벅찬 상황이고, 특히 우리 세대에서 ‘결혼’에 대한 로망이 있다고 말하기에는 낯부끄러운 것도 사실이다. 나를 포함한 젊은 세대들이 부모의 결혼 생활을 직접 보면서 ‘결혼하면 진짜 행복하겠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행복으로의 도달이 아닌 그저 아침에 눈이 떠지니 살아가는 그런 일상을 살게 되는데, 이런 생활을 위해 결혼을 하는 건 아무래도 리스크가 크다는 게 지금 MZ세대의 대표 발언일 것이라는 내 추측이다. 젊은 세대들이 단순히 돈이 없고  귀찮아서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 개인의 행복에 대한 기준치가 엄격해지고 있는 건 아닐지. 지금 청춘들은 행복에 대한 더 강한 욕구를 열망하고 있다.

 술에 취해 혼자서 온갖 생각이 뒤엉켜있을 때쯤 이미 만취가 되어있는 친구가 응원의 메시지를 던져줬다.

“잘됐네. 어차피 너 유행 잘 안타잖아”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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