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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ramram Dec 16. 2021

이게 월급 맞죠?

 여전히 낯선 합격소식을 들고 수개월 만에 본가를 찾았다. 또 엄마는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터질 것 같은 한 상을 준비하고 계시겠지. 집 앞에 도착해 현관 번호키를 누르던 순간에도 이미 안에선 부모님이 마중을 나오려 하는 발걸음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아들. 안아보자!”

 현관문을 열자마자 예상치 못한 엄마의 격한 환영 인사가 나를 먼저 반겼다. 나는 괜히 대단한 회사도 아니라며 멋쩍어했고 그 뒤로는 아버지의 잔잔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고생했다.” 

 한 마디였지만 이 정도면 아버지의 따듯한 격려였다. 누군가에게는 무심하고 아쉬운 말 한마디일 수도 있지만 사실 나도 잘한 게 없지. 아들로서 살갑게 다가가지 못했으니까. 6살 터울의 형은 나보다 더 했고. 그러면서도 우리 형제들만 그런 게 아닌 대한민국 모든 아들의 문제점이라며 조금은 당당하게 나 자신을 합리화했다. 

 서른 언저리의 나이에 도달하고 보니 효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건지 온갖 미디어의 부추김에 귀가 솔깃해버리는 건지 부모에 대한 애틋함이 나도 모르게 요동치고 있다. 무뚝뚝한 아들과 남편 사이에서 외로웠을 엄마의 세월들을 포함해 이제는 아버지가 갖고 있을 쓸쓸함까지 눈치채버렸으니 하마터면 내가 효자가 됐다고 착각할 뻔했지.

 집안에 풍기는 분위기들을 돌이켜보며 내 시절들이 행복했었는지 아니면 행복하지 않았는지 이 두 보기에서 고르라고 한다면 꽤나 어려운 질문에 속한다. 부모님이 바쁘셨기에 (여느 다른 집안도 마찬가지겠지만) 기본적으로 가족과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시간들이 현저히 부족했고 어느새 부모님이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 때는 내가 부모님과의 시간을 어색해했지. 하지만 나와 다른 가정의 비교 대상들을 하나 둘 대입해보면서 우리 집안 정도의 가정환경이 상위 몇 티어에 속하는 무난하고 행복한 가정이라고 깨달았다. 적어도 가족 구성원들 중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는 않았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깨닫는 것들이 있다. 이래서 얼른 나이를 먹고 싶었지. 어른이 되는 것과는 별개로. 

 아버지는 가끔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자식들에게 조금 더 잘해줄 수 있었는데, 더 좋은 가정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었는데, 돌이켜보니 그게 참 후회된다고 했다. 아버지가 우리의 성장과정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그것까지 체감할 수 없었지만 최근에서야 나도 아버지에게 그 말들에 대한 대답을 전하기도 했다. 

 “아부지. 아들 둘이 이렇게 잘 컸는데 이것보다 어떻게 더 잘 키워요. 나는 나중에 내 자식들한테 아부지의 절반도 못할 것 같은데.” 

 아버지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한 위로보다는 진심에 가까웠다. 가난에 쪼들려 살지 않게 해주었고 불같은 성격들이나 감당하기 어려운 태도들로 집안 분위기를 해치지 않았고 자식들에게 어떠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식들을 믿어주었지. 이런 깨달음과 생각들이 스쳐갈수록 부모라는 단어의 무게감이 체감할 수 없는 영역에 도달하고 만다. 나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는 나 자신의 과거를 들춰봐도 청개구리 같은 말썽꾸러기 아들이 집안에서 폴짝폴짝거릴 때마다 얼마나 답답하고 속이 터졌을까. 나조차도 가끔 끔찍한 상상을 해버리고 만다. 언젠가 내 눈앞에 나 자신과 똑같이 행동했던 아들이 방을 뒹굴고 있는 모습들을. 생각만 해도 행복지수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그럴 때마다 나도 아버지를 생각해야겠지. 아버지가 내게 부드럽게 대해준 것처럼. 

 “우리 집안에 이제 기자가 한 명 생겼네?” 

 힐끗 살핀 엄마의 모습엔 상당히 만족하는 감정들로 표정을 가득 매웠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의 눈길도 엿볼 수 있었다. 항상 받아온 눈빛이니 단번에 알아버렸다. 

 “어딜 가나 그렇겠지만 처음엔 엄청 힘들 거야. 그래도 항상 사람들한테 잘하고.”   

 “우리 아들은 걱정이 안 돼. 알아서 잘하니까.”

 어쩌면 부모님은 내가 직업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에 벅차 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새벽마다 이상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질 않나 갑자기 일본으로 가겠다고 하질 않나 막무가내 막내아들이 사회와 어울리지 못한다고도 생각하셨겠지. 취업을 성공했다는 건 사회에서 보는 시선들로부터 일종의 정상인으로 구분 짓는 도장을 받고 온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정작 그들이 보고 판단한 내 모습은 본모습이 아닐 테지만. 

 본가에 다녀오고 나서부터는 출근까지 남은 5일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일에 대한 사전 숙지, 상대방에게 던지는 첫인사말, 미소 준비 등이 생각났지만 전부 쓸데없다고 판단했고 가장 먼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기본적으로 철든 시늉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게 필요했다. 그래야 조직에서 눈에 띄지도 않고 잔잔히 흘러가는 회사생활을 기대해볼 수 있으니까. 처음부터 논란거리의 중심이 되거나 본 성격을 드러내 꼴불견 신입으로 보이면 회사 생활이 더 꼬이겠지. 나도 어느 정도 눈치는 있는 인간이었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 아득바득 열심히 살기 싫다며 본 성격으로 돌아와 버리겠지만. 

  원래 다가오는 시간을 피하고 싶을수록 시계는 빨리 간다고 했었다. 철든 시늉 연습보다는 군 휴가를 나온 사람처럼 화려한 만찬들과 술들로 빈틈없이 일주일의 시간을 채웠다. 첫 출근 당일날 오전 9시까지 일전에 면접을 봤던 대회의실로 오라고 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8시 40분 정도였는데 낯익은 2명이 이미 와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해버렸다. 

 “아. 안녕하세요.” 

 보지 않아도 그 공간의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었을지 짐작이 갔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라도 나왔으면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도 서로에게 들키지 않았겠지만 10초에 한 번씩 서로 눈치를 살피며 정적의 전율을 느끼고 있었겠지. 서로 어리둥절한 표정 속에서도 그 2명은 새로운 누군가가 왔다는 사실만으로 감격해하고 있었다. 오래된 내부를 자랑이라도 하듯 쾌쾌한 냄새는 여전했다.  

 “안녕하세요!” 

 “저기 서류 1장씩 가져가서 보고 있으라고 하셨어요.” 

 앞에 있는 테이블을 손짓하며 내게 알려주었다. 나름 감사하다는 표현을 전하고 싶어 세상에서 가장 건성의 눈웃음을 던지고선 서류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남자의 옆자리가 편했는지 덩치 큰 남자의 옆자리에 의자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히 앉았고 이들은 나를 보지 않은 척했지만 그들이 조심스럽게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아주 불편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자리에 앉고선 어색한 분위기를 외면하고 싶었는지 아무 펜이나 필요했다. 언젠가부터 손에 펜을 들고 있으면 안정감을 느끼는 성향 탓에 주머니에는 작은 펜이라도 항상 넣어두고 다녔다. 그 덕분에 바지 주머니에 구멍이 나거나 잉크가 새어버리기도 하지만. 

 펜을 꺼내고선 서류를 처음부터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서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는데 10초도 걸리지 않았고 아마 서류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가 끝났을 때의 내 표정을 옆에 있는 두 사람도 살피고 싶었을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전달방식이었지만 그 서류에 있는 내용들은 기본적인 연봉체계와 근무형식이었다. 힌트를 얻고선 본능적으로 연봉이라는 두 글자를 뒤지기 시작했다. 초인적인 집중력이 돋보였는지 그 글자들은 곧바로 찾을 수 있었다. 괜히 씁쓸한 예감은 복선이었을 것이다. 

 ‘진짜로? 연봉이 이거야? 그래도 다른 데보다 많이 주는 곳이라며.’

 돈 보고 일하지 않을 거라는 젊은 나이에 어울리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취업문을 두드렸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다. 터무니없는 연봉을 보자마자 내 안에서는 아쉬운 말들을 넘어 혼자 있을 때나 내뱉을 수 있는 비속어들을 쏟아내 버렸다. 누구를 탓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내가 본 연봉의 숫자들과 0의 개수가 확실한지 찰나의 시간 동안 스무 번은 넘게 확인하고 나서야 현실을 깨달았다. 이때부터는 옆에 있던 사람들도 내 표정을 읽었겠지. 서로 약속하지 않은 연봉이라는 정보에 문득 배신감이라도 느꼈는지 어느새 내 주위에는 2명이 아닌 새로운 얼굴 2명이 더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들과 인사할 타이밍을 놓쳤지만 그들의 표정도 보니 마치 우울감에 대한 거울 치료라도 하는 것 같았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생의 월급과 비슷한 금액으로 직장생활을 이어간다면 이 둘의 궁극적인 차이점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려다가 이런 딴생각도 하지 못하도록 느끼남이 일주일 만에 재등장했다. 

 “다 오셨네요. 다들 여기 앞에 서류 가져가셨죠? 저는 여기 경영팀 부장이고요. 오늘은 일단 임원분들에게 인사 돌리고 그 후에 점심 같이하고 편집국장님 지도하에 근무체계나 그런 거 알려주실 겁니다.”

 괜한 반가움에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경영팀 부장이라는 느끼남은 우리를 이제 잡은 고기라고 생각하는지 뭔가 말투부터가 건방져졌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내 동기들이 4명이나 된다는 점에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가지고 아무 생각 없이 회장, 대표, 사장, 전무에게 차례대로 인사를 돌리기 시작했다. 이날 회장은 외부 출장이 있어서 대표, 사장, 전무의 순으로 공식적인 첫인사를 나누었다. 

 면접 당시 첫인상이 맘에 들지 않았던 대표는 회장의 아들이겠거니 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액면가와는 어울리지 않은 직함이었고 금수저에 대한 괜한 질투심이 폭발했는지 입고 있던 비싼 정장도 어깨가 좁아 어울리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신입이라 여러분들한테 기대가 커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이따가 봐요.”

 대표와 잠깐 나누는 대화에서 내 집중력과 시선은 대표의 얼굴 곳곳을 보기 위해 정신없었다. 고귀한 철학과 출신답게 관상을 살펴야 하니까. 자. 봅시다. 미간 사이가 좁으시고 눈썹의 방향은 위로, 이마 주름도 많으시군요. 입가는 길게 펼쳐져 있고 두상에 비해 귀의 크기는 작은 편이시고 가장 중요한 눈망울은 믿으면 안 될 눈을 가지셨네요. 그러므로 죄송하지만 저는 대표님과의 인연을 그리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2분 안에 나는 앞으로 대표와의 관계를 뒤끝 없이 아주 깔끔한 인연으로 결론지었다. 아마 대표도 나와 선이 굵은 인연을 기대하지 않았겠지만.

 대표의 관상 파악이 끝나고선 곧바로 사장실에 투입됐다. 서둘러 사장의 관상도 파악해야 했지만 이날 내 집중력은 연봉에 대한 수많은 생각들로 인해 오전부터 소진되어버렸다. 더군다나 치아가 보이는 억지 미소까지 윗선들 앞에서 선보여야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입술 근처에는 경련이 오기도 했다. 이것도 마그네슘 섭취가 부족한 건지 헷갈려하면서. 

 “여러분들이 장차 우리 회사를 이끌 대목이 되어주세요. 그렇게 되기 위해 저 포함 모든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임원들의 감사한 조언(?)을 들을 때마다 동기들의 눈치를 살짝 살펴보니 역시 연기 실력들이 상당한 인재들이다. 감동받은 것처럼 앞으로 목숨 바쳐 일할 사람처럼 눈에 강렬한 의지를 싣기도 했다. 하마터면 임원들 앞에서 눈치 없이 헛웃음이 터질 뻔했다.

 기계처럼 고개만 끄덕이며 생각보다 에너지 소모가 심한 인사를 돌리다 보니 그나마 한숨 돌릴 것 같은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계속 붙어있던 동기들과는 살짝 얘기를 나누며 사람 간의 어색한 것들은 쉽게 풀었지만 점심식사도 임원들과 다 같이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 쉬고 말았다. 그렇게 어디 끌려가는 사람처럼 회사 앞에 있는 생선구이집으로 향했고 오전에 인사를 마쳤던 임원들도 한꺼번에 식당으로 들어왔다. 

 “자. 점심이지만 한잔씩 하셔야지요?”

 식당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예상도 못했지만 자리를 보자마자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이미 대표가 제안을 하기 전에 테이블에는 수십 병의 맥주와 소주로 가득했으니까. 집에 나오기 전 냉장고에 있는 숙취 해소제를 보며 첫날부터 필요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내 판단은 미련했던 것으로 판명됐다. 요즘은 세상이 많이 변해 술 같은 거 안 먹는다고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었던 것도 같은데 그 말을 전한 범인을 생각해낼 수 없었다. 얼른 오프너를 찾아야 했으니까. 

 ‘낮부터 생선구이에 소맥이라니.’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뱉으며 이 상황을 설명해달라는 눈빛으로 대표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술 따르는 것 외에는 여념이 없어 보였다. 순식간에 한 잔씩 돌리기 시작하면서 동기들의 상태도 슬쩍 살폈지만 곧바로 얼굴이 빨개지는 여 동기 1명 빼고는 다들 웬만큼 술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체감으로는 5분이었다. 그 시간 안에 소주가 많이 섞인 소맥 4잔을 비워버렸고 그때 되어서야 생선구이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본 게임을 시작한다는 듯이 안주를 곁들이며 술판이 반복되었고 어느새 술맛이 괜찮다고 느껴질 때는 내가 취하고 있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회사의 작전이었을까. 머리 위에 있는 전등이 원심력을 이용해 조금씩 돌아가고 있을 때는 내 정신 상태가 긍정적인 요소들로 서로 부둥켜있었고 이대로라면 애사심이라는 게 생길 수도 있다는 환상의 영역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술을 마시면 한순간에 행복해지는 이놈의 술버릇이 문제였다. 감정선을 절제할 수 있도록 연봉을 서둘러 떠올려보기도 했지만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정도 연봉이면 먹고살 수는 있는 정도라며. 

 한 시간이 지났을 때부터는 이미 몇몇은 전사한 상태로 도달했고 사실 나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그때부터는 끄나풀처럼 잡고 있는 정신력을 아예 놓아버리기도 했지. 귀한 술 마시는 데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면서. 뒷감당은 뒤로한 채.

 “에이. 나도 모르겠다. 그냥 취해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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