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면 내 정신과 현실 상태를 최대한 빠르게 분간해야 한다. 지금이 몇 시인지, 지금 울리는 알람은 아침 출근을 위한 알람인 건지, 새벽 취재를 나가기 위한 알람인 건지, 아니면 출입처와의 약속에 나가야 하는 알람인 건지. 선배들은 출, 퇴근 구분이 없다는 아주 곱디고운 말들로 포장했지만 정작 현실은 퇴근이 없다는 말이 더 이해하기 좋을 것이다.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불편한 정장을 입고 매일 출근 준비를 나선다. 여전히 명함 속에 새긴 기자라는 활자가 어색하지만 이미 인간의 기계 부속화 과정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래도 일을 시작하기 전에 가장 열악한 환경의 회사 생활을 내 머릿속에 그려놓아서 그런지 일을 적응하는 건 크게 어려운 게 없었다. 점심때마다 낮술을 들이부으면서 매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쯤은 사회생활의 개념을 조금씩 받아들이기도 했다. 내가 조심스러워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내가 사람을 대할 때 어떤 사람으로 비쳐야 하는 건지 여전히 나를 돌아보기도 하면서. 생각해보니 이런 고민들은 입사 직전 내가 다룬 고민들이기도 했지만 상상만으로 다룬 고민들과 직접 부딪히며 맞이하는 현실과는 나름대로 거대하지도 않고 미세하지도 않은 차이점을 보였다.
처음 합격한 동기들은 전부 6명이었지만 술이 지긋지긋하다는 이유, 생각해보니 이 회사는 별로라는 이유로 2명은 벌써 짐을 쌌고 결국 여자 2명, 남자 2명 총 4명의 정예 멤버만 사회부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그럴듯해 보이는 기자 생활 인턴이지만 처음 몇 주가 지난 시점까지는 뭐 어려운 것도 대단한 것도 없다는 생각만 가지고 버티기보다는 눈치 보기 생활만 이어갔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간들도 없었고 그렇다고 이 일이 내 적성에 딱 맞다 느낄 정도로 벅찬 감정의 시간들도 없었다. 딱 하루를 정상적으로 보내주기에 미련은 생기지 않는 정도의 일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오늘 신입들, 환영회 있는 거 알지?”
평소 말투와 인상을 좋아하지 않던 다른 부서 선배가 대뜸 말을 걸어왔다. 바쁘던 찰나에 의미 없는 대화를 이어가기 싫어 건성 대답하고 말았다. 참 사람 보는 눈 다 똑같다고. 알고 보니 이미 회사 안에서는 소문이 익히 퍼진 선배였다.
“그때는 테이블마다 돌아가면서 인사도 드리고, 건배사도 준비하고, 알겠지?”
마감을 하고 나서 여유를 조금 찾았을 때는 신입 환영회의 장면들을 미리 그려보기도 했다. 아무리 그럴싸한 건배사를 준비하더라도 5초 이하의 짧은 건배사가 최적일 것이고 테이블마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서로의 영혼 없는 대화들이 오고 갈 것이다. 이미 동기들과의 단톡방에서는 환영회를 증오하는 온갖 욕설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물론 나도 아주 격하게 참여했다.
“건배사 준비했어?” 우리 기수 기장 역할을 맡은 남자 동기가 한 숨을 푹 내쉬며 말을 걸었다.
“그냥 짧게 하지 뭐.”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나도 속은 계속 타들어가고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건배사냐. 진짜. 그것도 직원들 전부 모아놓은 앞에서.”
지옥 같은 순간이겠지만 최대한 술을 빨리 마셔서 그 순간들을 전부 잊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동기들의 걱정보다는 나 자신이 술 먹고 실수하는 걱정이 앞섰고 그래도 다행인 건 아직까지는 큰 실수 따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도 큰 실수가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생기지만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인생의 모든 실수는 술에서 나왔기 때문에.
얼추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동기들의 표정은 더 어두워져 갔다. 내 얼굴과 표정은 어떤지 궁금할 때는 동기들의 표정을 대입시키면 됐다. 환영회가 열리는 식당으로 4명이 걸어갈 때는 명절 때 성묘 가는 것처럼 발걸음이 무거웠고 우리는 가는 동안 많은 대화 없이 술 많이 마시지 말고 각자 살아서 보자는 끝맺음과 함께 전우애를 다졌다.
“자. 시간도 됐고, 다들 모인 것 같으니 시작합시다. 오늘 우리 귀중한 막내들 환영 축하 자리니 다들 따듯한 말 많이 해주고, 술 많이 먹이지 말고. 알겠지요?”
국장의 선인사로 자리의 시작을 알렸고 막내들은 구석에 앉아서 가끔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하거나 박수를 치면서 시침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럼 음식 식기 전에 얼른 한 명씩 인사하고 자리 이어 갑시다.”
나는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약간의 거짓말과 함께 잘 지켜봐 달라는 큰 거짓말도 덧붙였고 건배사는 영화 불한당에서 본 ‘우리가(선창) 남이가(후창)’를 따라했다. 건배사 채택 이유는 가장 짧았기 때문인데 자리로 돌아가는 시간까지 0.1초의 시간이라도 줄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다른 동기들도 준비된 건배사를 하나씩 내뱉었고 건배사가 끝났을 때부터는 이제 각자의 시간들로 돌입했다. 사회부, 경제부, 행정부, 사진·영상부, 편집부까지 테이블을 돌아가면서 선배들에게 술을 달라고 애걸복걸만 했을 뿐 억지로 살가운 대화를 걸지 않았다. 그런 인간으로 살아오지도 않았고 사실 잘 못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선배들이 하나씩 질문을 이어가곤 했다.
“여자친구는 있어?”, “술은 얼마나 마셔?”, “원래 여기 사람이야?”, “여기가 첫 직장이야?” 뻔하디 뻔한 질문들뿐이었고 매번 처음 듣는 질문처럼 답해야 하는 게 이날의 가장 큰 고역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몇 년 전부터 억지로 술을 먹이는 건 조심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다들 눈치를 살살 살피는 게 보였다. 옛날처럼 그냥 죽어라 먹여볼까 하는 하이에나 같은 눈빛의 선배들도 곳곳에 숨어있었지만 결국 뭔 일이 터지면 부장들 책임으로도 이어지기 때문에 겁이 많은 윗라인들이 몸 사리고 있었다.
매운 거를 잘 못 먹는 다고 이미 수십 번은 말한 것 같은데 안주는 닭볶음탕과 청양고추가 잔뜩 들어간 칼국수로 나를 기분 좋게 무시해줬고 그래도 이 날은 긴장의 감정이 나를 가득 채웠기 때문에 불만과 짜증의 감정이 생길 자리는 그리 넓지 않았다. 이제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그러려니 하는 것도 나조차 모르게 익숙해지고 말았지. 그래도 젓가락을 일정 시간 들지 않고 있으면 왜 먹지 않느냐고 대화의 건더기가 생길 수도 있으니 밑반찬인 콩나물무침과 버섯볶음을 몇 번씩 뒤적뒤적거렸다.
“이런 자리 진짜 완전 싫지?” 입사 이후 잘 챙겨주던 선배가 조용히 오더니 내게 속삭였다.
“그래도 걱정 많이 했는데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아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 지으며 나도 선배에게 몰래 말을 건넸다.
“많이 안 마셔도 돼. 요즘에는 강제로 먹이는 분위기가 아니니까.”
다른 언론사보다 좋은 점이 있다면 그래도 회사 분위기와 선배들 인성이 꽤나 평판이 괜찮다는 점이었다. 새롭게 인사를 돌리는 곳마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고 그 얘기를 듣고 다른 언론사들을 힐끗 보니 인성이 엉망인 선배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기사를 이따위로 쓰냐?”, “아이씨. 취재를 어떻게 한 거냐.”, “이게 기사 될 거라고 생각하냐?” 기본적으로 싸가지가 결여된 말투에서 시작된 시비가 대표적인 예다. 우리 회사에서도 몇몇의 그런 인간도 있지만 다행히 그 몇몇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사람 냄새나는 기자들도 많이 모여 있었다. 상황을 더 지켜보긴 해야겠지만.
술을 많이 마시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선배들이 주는 술을 하나하나 전부 받아먹으니 두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동기들은 전사 직전의 모습이었다. 물론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 심장에서 가장 멀리 있는 손 끝과 발 끝부터 조금씩 감각이 무뎌지는 듯했고 눈에는 식곤증이 올라탄 것처럼 슬며시 가라앉고 있었다. 얼굴은 더 빨개지는 것 같아 또 주목받을 것 같은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고 이대로의 추세라면 한 시간 뒤쯤 아마 화장실에서 첫 번째 오바이트를 하고 있을 것이다.
애초에 술을 잘 못한다고 하면 될 것을 쓸데없는 좋은 사람 콤플렉스 때문인지 하나도 거절하지 못했다. 사실 고질병이기도 하지.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상대방이 나를 싫어해도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란 나만의 가치관을 믿고 있지만 거절을 두려워하는 건 상대방이 보이는 실망의 눈초리를 마주하기 싫다는 것인데. 가끔은 나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할 때가 있다. 가끔은 사회에게 인간적 교화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기도 한다. 사회가 나를 아주 똑부러지고 성숙한 어른으로 만들어 줄 것 같은 기대감. 옳고 그름에 대해 명확히 구분하고 수용과 거절의 구분을 바로 알 수 있으며 거절의 방법도 아주 매끄럽게 표현하고 가끔 본인에게 닥친 안 좋은 일들마저 아무렇지 않게 이겨낼 수 있는 그런 여유 넘치는 어른. 이제 곧 서른의 경계라는 명분으로 정상적인 어른이 되고 싶은 건지 철없는 내 자아가 걱정되어서 그런 건지는 앞으로 더 두고 봐야 알겠지. 언젠가부터 가장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어른이 가장 멋진 어른이라는 생각도 가지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바람직한 어른이 되는 건 어떠한 도움도 없이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 그저 당연한 것으로만 깨닫고 있었는데.
취기 때문인지 속마음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하면서 심지어 솔직하기까지라도 할 기세였다. 평소에는 얌전히 있는 내 안의 성격 나쁜 자아가 꼭 술이 잔뜩 들어갈 때면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한다. 잘 달래 주면 솔직한 정도로만 끝나는 녀석이지만 가끔씩은 본인이 답답하다고 느끼면 급발진할 때가 있어서 나조차도 그 자아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이러니 남자들이 술을 먹으면 허구한 날 정말 유치한 대화주제로 다투거나 똑같은 문제로 반복해서 싸우는 그런 어리석은 짓들을 하는 걸지도. 가끔씩은, 혹은 매우 자주, 술에 취한 남자의 정신연령은 영유아기와 비슷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조금은 난폭한 내 안의 친구를 달래주기 위해 가만히 혼자 속삭이는 말들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진짜 재미없네. 어떻게 사람이 말을 저렇게 재미없게 할 수 있을까. 여기 와서도 일 얘기하고 싶어? 당신은 술 안 마시면서 나한테는 왜 계속 주는 거야? 당신들도 이 자리 재미없잖아. 집에 가서 가족들 얼굴 한 번 더 보는 게 더 뜻깊은 시간들이지 않겠어? 등등.
그동안 꾹 눌러왔는지 솔직함 담긴 아주 건방진 말들이 입 안에서만 계속 반복해 맴돌고 있었고 순간 이 말들을 발음 실수 하나 없이 한 호흡으로 내뱉는 모습들을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또 다음날 호되게 혼날 각오까지 하면서 만취의 연기를 토대로 진상의 인증을 해버릴까도 했지만 그러기엔 너무 이른 시점이다. 인턴 딱지도 떼지 못했으니까.
정신력도 한계에 다다를 때쯤 다행히도 귓가에 일렁이는 소리들로 해산의 소식들이 조금씩 들리고 있었다. 순간 하느님이 속삭이신 줄 알았지. 구원의 손길이었으니까. 그 와중에 겨우 살아남은 동기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아. 이런 회식, 진짜 다신 없었으면.”
“그러게. 여기 모든 인간들이 나한테 관심 좀 꺼줬으면.”
혹시라도 선배들이 들을 수도 있다는 눈치에 서로 소곤대며 그날 자리의 감상평을 밝히는데 그나마 동기들과의 공감과 농담으로 인해 그날의 스트레스를 쉽게 날릴 수 있었다. 술에 잔뜩 취해 혼자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는 괜스레 씁쓸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처음 1, 2년 동안은 무조건 참고 얌전히 있어야 된다며. 그게 버티는 연습 아니겠냐며. 굳이 버텨야 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게 위안되는 것도 충분히 있었다. 기사 쓰는 일이 생각보다 재밌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