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능률적으로 잘하려는 노력보다는 단순히 열심히만 하면 나중에 잘하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래도 기자라는 직업 안에 남몰래 애정하고 있는 글이라는 요소가 짙게 깔려 있으니 나답지 않게 잘하고 싶은 욕심까지 생기고 말았다. 나름대로 만족할만한 내 기사를 다음날 신문으로 볼 때면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뿌듯함이 내 피의 색을 더 진하게 하는 것 같았다.
오랜 세월을 살지도 않았지만 그간의 세월을 돌아보면 내게 열심히라는 기준은 남들보다 부지런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또 그 부지런하다는 대표적인 기준은 잠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내 지능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몸으로 때우는 작전이다. 이제는 그리 어렵지도 않을 일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취사병으로 군 복무를 하던 시절부터 이미 잠과의 인연은 없었고 일본에서는 신문배달을 위해 새벽 2시 언저리에 기상하는 패턴까지. 어느 순간부터는 잠에 대한 내 가치관이 확고해지기도 했다. 인생에서 가장 쓸모없는 시간은 은행에서 내 순번을 기다리는 것과 잠을 자는 시간이라며.
그러다 보니 어느새 매일 회사에 가장 먼저 출근해 사무실 불을 키는 역할은 내 역할이 되어있었다. 또 취재원을 만나기 위해서도 시간과 장소를 아랑곳하지 않았고 현장감 있는 기사를 위해 새벽에 응급실이나 경찰서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는 게 회사와 조직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지만 하찮은 선배들 중 누군가는 아주 낯 뜨거운 질투를 하기도 한다.
“막내들, 그렇게 열심히 해서 선배들 지면 뺏는 거 아니니? 우리도 긴장해야겠어?”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되지만 이미 내가 마음속으로 싫어하고 있는 선배 기자가 비꼬듯 툴툴거린다. 학생티를 벗어내지도 못한 사회초년생을 견제하다니 1초도 보기 싫은 꼴불견이었지만 모든 사람을 포함해 현상까지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게 우리 일이기도 하다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말았다. 이렇게 보면 내가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사회인의 모습으로 비칠 수 있지만 그건 아닐 것이다. 동기들과 모여 있을 때는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험담을 즐기니까.
그래도 이 직업이 맘에 드는 점 중 하나가 있다면 경쟁이라는 구도를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침마다 다른 언론사와 비교해 낙종 기사에 대한 경쟁의식 있는 기자들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나는 기사의 본질적인 역할에 대해서 더 고민했다. 물론 서로 간 의식하는 경쟁을 통해 기자들이 서로 물먹지 않도록 사전 예방 차원의 조치로서는 긍정적인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 미디어를 통해 나오는 기사들이 결국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의 사회를 위함에 존재하고 생산됨에 따라 다른 신문사여도 어떤 기자가 단독 기사를 썼다면 어두운 마음 없이 무조건 칭찬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사회를 조금이나마 위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으면 본인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그 과정에서 굳이 쓸데없는 경쟁보다는 내 갈 길만 걸어가면 되니까. 보다 더 이상적인 생각을 덧붙이자면 세상의 모든 기자들이 매일 끝내주는 단독 기사를 생산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지기도 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보니 같은 조직 내에서도 햇병아리들을 견제하는 선배들을 그토록 꼴 보기 싫어했겠지.
그런 와중에 내가 있는 곳은 아침마다 너는 이런 것도 안 쓰고 뭐하냐, 다른 데는 뭐 썼냐고 물으며 온갖 핀잔은 주지 않으니 다행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멀지 않은 옆 동네만 하더라도 동기들끼리 경쟁을 시킨다거나 매일 위치 보고까지 해야 하는 까다로운 조직들도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
입사 전 내가 상상했던 기자는 단순히 글만 쓰는 사람으로 생각했지만 너무 철부지 같은 생각이었다. 사회적 현안부터 시작해 지역 추진사업과 그 사업들의 문제점, 최종 아이템 선정까지 매일 공부를 해야 했거나 고민이 필요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도 사실 의무적인 일이었다. 여기까지는 크게 어려운 건 없었지만 조금 괴로운 점이 있다면 바로 술이었다. 살면서 언젠가는 술 때문에 사고 칠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 문제와는 별도로 내 몸이 술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동안 술을 못 마신다고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기자 인턴 생활 3개월 차에 돌입할 무렵에는 거의 알쓰(알코올 쓰레기)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사회에는 무시무시한 상대들이 가득했으니까. 한 번은 이 난제를 심각하게 궁금해하기도 했다.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인간들이 대부분 술을 잘 마시는 건지 아니면 내가 있는 모집단의 인원들만 우연히 술을 다 잘 마시는 건지.
여기서 내가 해결하기 가장 어려워하는 문제는 크게 2가지였다. 먼저 첫 번째는 매일 저녁마다 선배들로부터, 출입처로부터 만찬 자리의 초대장이 날라 오는데 온갖 이유를 들먹여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거절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다. 사실 거절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도 아니지. 대부분의 저녁 자리에 대한 제안은 권유가 아닌 통보였으니까.
“막내. 오늘 저녁 6시 00식당. 10분 전에 도착해 있어라.”
“막내. 오늘 저녁 장소 예약해둬라”
어떤 경우에는 내 의사를 묻지 않았는데도 내가 참석인원에 포함돼 있는 걸 보면 아무리 조직생활에 묻어가려는 막내의 발악일지라도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현타 때문에 멍해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주일에 최대 5번, 최소 2번은 과음을 하는 패턴이 이어졌고(낮술의 횟수까지 합하면 더 많겠지만) 이로 인해 두 번째 문제는 그 형용하기도 거북한 괴물들과 자리를 같이 하면서 내 가랑이가 찢어지고 있다는 것이었지. 나와 자리한 사람들은 다음날 아무렇지 않은데 나는 그다음 날 하루 종일 변기만 붙잡고 있거나 기사를 하나도 못 쓰는 지경까지 이르고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는 일도 다반사였다.
“부장님. 저 잠깐 병원 좀 다녀오겠습니다.”
“야 임마. 또 그러냐? 남자가 그것도 못 견디냐?” 이 정도는 착한 답변 쪽에 속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원래 숙취가 좀 심해요.”
당신이 먹였잖아. 주지를 말든가. 난 니들처럼 술 못 먹는다고. 턱밑까지 차오른 말들은 많지만 매번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잘 참아내고 있었다. 이와는 별개로 또 나를 불편하게 하는 문제가 있다면 기자들도 연차별로 선배, 후배가 나뉘는데 보수적인 집단인 만큼 위계질서가 명확하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는 새롭게 등장하는 젊은 꼰대들이 많다는 것인데 우리 회사에도 곳곳에 숨어있었다. 우리 회사가 진심으로 역겹다는 생각을 처음하기도 했는데 그날도 선배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무슨 회사에서 단합 저녁 회식을 2주마다 한 번씩 하냐고.” 오죽하면 매번 얌전히 있던 여자 동기가 한 마디 보탰다. 특히 여자 동기들에게는 남자들만 가득한 저녁 회식자리를 꺼리는 건 당연할 것이다.
그리 길지도 않은 인생을 살고 있지만 살아오면서 확신을 가지게 된 부분이 있다. 술이 좀 들어가면 정상적인 사람은 없다는 것. 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말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큼지막한 사고는 치지 않았지만 내 인생 최악의 순간들 90%는 술로 인해 탄생했으니까 술과는 평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내 안에 작은 다짐이 되어있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그 다짐이 무너지긴 하지만.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소맥을 따르고 있었다. “야, 소주 많이 따르지 말라고”, “술 좀 더 시켜.”, “고기 좀 제대로 구워라.” 자리가 시작되자마자 나를 포함한 동기 3명은 팔을 걷어붙이고 본격적으로 고기를 굽거나 부족한 술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아무 말 없이 있다간 조용해진 분위기를 막내들에게 덤터기 씌울 테니 적당한 미소는 항상 유지해야 한다. 중간중간 호탕한 웃음소리도 한 번씩 내주면서.
“술 안 따르고 뭐 하냐 진짜.”
고기를 구우면서 소맥 4잔을 수시로 따르는 건 기사 마감 직전과 비슷할 정도로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자칫 술이 떨어지면 술을 또 시켜야 하고 선배의 물 잔이 비어있으면 물을 또 따라줘야 하고 그러다 고기가 타버린다면 어떤 선배들은 장난거리로 내게 말을 걸 테니 잠시라도 빈틈을 보이면 안 된다.
이날 총대는 내가 메기로 했다. 저녁 11시쯤 3차로 이동하기 전 취한 동기들을 먼저 집에 보내주고 내가 끝까지 자리에 남아있기로 했다. 무언의 약속 같은 것들인데 그래도 남자들이 여자 동기들 먼저 보내주는 게 매너라고 생각했으니까.
어느새 자정이 넘어가고 막내는 나 혼자뿐인 상태에서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저도 이제 슬슬 들어가 보겠습니다. 선배님.”
잠깐 5초 동안의 정적이었지만 술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야. 선배들 다 있는데 혼자 가려고?” 항상 딴지는 특정 인원 2, 3명의 몫이었다. 더군다나 술이 된 상태에서 까마득한 막내가 어찌 보면 시비를 건 셈이다.
“그래도 선배. 막내 중 가장 오래 남은 거예요.”
“그게 뭔 상관이야. 지금 분위기 다 망쳤잖아. 와. 나 진짜 옛날에는 이런 말 꺼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집에 간다고 이렇게 당당하게 얘기하지?”
그때부터는 내 편이 된 세력 3명, 그 세력을 견제하는 2명, 괜히 더러운 꼴 보기 싫은 세력 3명이 나뉘어 15분 동안 메스꺼운 토론이 이어졌다.
“아니, 내가 지금 오버하는 거야? 아니 상황 봐서 몰래 살짝 빠지면 되지. 분위기 왜 다 망치냐고.” 나는 중간에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그 정도로 실수를 한 건지 다시 시간을 되돌려보기도 하면서. 슬슬 선배들끼리 언성이 높아지며 감정싸움으로 변할 시점에는 내가 다시 최종 변론을 얘기해야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됐어! 넌 그냥 가만히 있어!”
다시 잠깐의 정적이 흐르자 내 편이 되어주던 세력들이 내 택시를 잡아주겠다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그 자리에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들은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한 이놈의 거지 같은 사회를 내게 다시 각인시켜주었다.
“어쩌겠냐. 그래도 선배인데.”
그래도 어느 정도는 업무에 대한 만족감도 쌓이며 회사에 대한 작은 애정도 담고 있었지만 이날 처음으로 입사 전부터 걱정해왔던 사회생활을 직접 마주해버리자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고 말았다.
“아. 진짜 더러워서 못해먹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