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제가 만약에 결혼을 하게 되면 국내로 신혼여행을 다녀와야 할지도 몰라요. 괜찮으시겠어요?"
한창 바쁘던 시기, 가끔 사막에 비 오듯 찾아온 소개팅에서 내가 상대에게, 그것도 첫날에 물어봤던 질문이다.
자연스럽게, 내가 상대에게 이런 말을 하고 나면 상대의 눈은 왕방울만 해지곤 했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 말을 하고 나면 소개팅 1차 면접에서 탈락을 했다.
소개팅 첫날에 신혼여행은 김칫국을 마셔도 너무나 많이 마신 미래였고, 게다가 국내 신혼여행을 원하는 남자가 있을 리가.
하지만 난 내 스케줄의 빡빡함과 사업에 대한 간절함을 말하긴 해야 했다. 모르고 있다가 사귀고 나서 내 극악스러운 일정을 알게 된다는 건 그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라 믿었다. "괜찮아요 연애 가능한 스케줄입니다!"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랑에 빠지고 알리면 정말 사기같은 일이 될까봐였다.
결혼적령기 여자가 일에 미쳐있다는 건 사실 좋기만 한 점은 아니다. 내가 봐도 지극히 그럴만한 탈락이었다.
"3년 동안 해외여행 안 가도 괜찮니? 주말 없어도 괜찮아? 연애 못해도 괜찮아?"
투잡을 시작하고 나서 내가 나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난 주저 없이 "YES"라고 답했다.
물론, 현실은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최악을 미루어 생각할 수 있을만한 상황도 필요했다. 어찌 됐든 난 만 서른 살에 개인사업을 시작했으니까.
개원 이후, 휴가는 언감생심 주 7일을 하는 일정이 5개월간 이어졌다. 머릿속에서는 가끔 십 년 전 파리에서의 국제기구 인턴십이 왕왕 떠올랐다. 파리의 아침, 아지랑이, 빛나던 햇살 모두가 그리웠다.
스텔라장의 'l'amour les baguettes paris'를 수 없이 듣고, 유튜브로 혼자 프랑스어 회화를 독학했다. 취미가 프랑스어 회화라고 하면 다들 '오'하지만, 나의 경우 여행을 가지 못하는 눈물겨운 현실이 동력이 돼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