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잡도 할만합니다
"옷 갈아입는 기분이야"
주위에서 직업이 두 개인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면 난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말하곤 했다. 과장되거나 젠체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그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말투는 그랬지만 담긴 언어를 보니 잘난 척 같기도 하다. 그런 뜻은 정말 아니었는데.)
병원에 가면 의사나 간호사 선생님들은 근무복을 입고 있었다. 은행을 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분들을 보면서 '저 분들은 옷을 벗을 때 퇴근하는 느낌 들겠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근무 시간이나 여건 상 오전에는 기자 일을 하고, 오후에는 학원장으로 근무했다. 업을 바꿀 때마다 나는 그분들처럼 옷을 갈아입는 느낌이 들었다.
업에 맞게, 페르소나는 두 개였다. 굳이 색으로 이를 나타내보면 쨍한 네이비색과 부드러운 크림색이라고 해야 할까. 기자랑 국어논술학원 원장은 참으로 달랐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래프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아무도 뭐라고 안 해도 혼자 끙끙대는 오전을 보냈다면, 오후에는 할 수 있는 한 최고 다정한 목소리로 "어서 오렴"이라며 학원을 방문하는 아이들을 맞았다. 오전에는 한 번도 웃지 않다가, 오후 내내 큰 목소리로 웃는 내가 있었다.
이만큼 두 직업이 다르다 보니 잠깐의 로딩의 시간도 있었다. 정신없이 취재하다 빈 속으로 학원에 들어와 바나나 하나를 까서 입에 물고 있으면, 잠깐 멍하니 허공을 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잠시 벌거벗은 채로 허공에 둥둥 떠다녔다가, 동네 국어논술학원 원장선생님의 실크빛 크림색 페르소나를 입곤 했다.
이젠 옷이 세 벌이다. 그동안 두 개였던 나의 페르소나는, 하나 더 쪼개졌다. 기자와 원장만 할 때만 해도 옷을 하나 갈아입는 느낌이었는데, 세 벌이 됐다.
이번에는 어떤 색을 가진 옷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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