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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망 Jun 21. 2024

청바지 입고 대출받기

쓰리잡도 할 만합니다.

'열정은 누구나 알아 봐주기 마련이야.'


조오금 민망했지만 풀려있는 스니커즈 끈을 묶기 시작했다. 상가 보증금을 대출받기 위해 송파에 있는 신용보증재단을 찾아갔다. 이곳은 나와 같은 자영업자들을 위해 소액 대출을 해주는 곳이다.

청바지에 빨간색 체크무늬 난방을 입은 내 나이 또래는 아무도 없었다. 대기 인원은 보통 남자분들이었고 보통 40대는 넘어 보였다.


개원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매출을 증빙하기 위해 화장품 파우치에 첫 달 카드기로 결제한 영수증을 들고 갔다. 화장품 파우치에 수북하게 들어가 있는 영수증이라니, 담당하시는 선생님들의 눈이 커졌다. 혹시 잘 안되면 어떡하지?


괜히 더 쾌활한 척하면서 학원 운영 애플리케이션을 내밀었다. 아이들 공부하는 모습과 한 개에 1500자를 적은 알림장도 보여드렸다. 기자 하면서 한다고. 최근에 전세 때문에 목돈이 없고 아직 지방에서 올라왔는데 도움 없이 일단 해보려고 한다고(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님 조차 학원 여시는 걸 몰랐다.). 열심히 해볼 거라고. 거대한 꿈이나 수사는 없었다. 그냥 내 처지랑 상황을 방글방글 웃으면서 최대한 담담하게 얘기했다.


"박소망 씨 잘 부탁드려요."


담당자님께서는 은행 관계자분께 정말 성심껏 인도해 주셨다. 딸을 보는 눈빛이라고 하면 과장일지도 모르지만, 젊은 애 혹은 어린애가 고생하고 있다는 그분의 눈빛은 느낄 수 있었다. 은행 관계자 분께서는 더하셨다. 개원하고 정신없는 일정으로 서류가 늦었는데 나보고 빨리 대출 서류 넣어야 나온다고 전화가 두 번이나 오실 정도였다. 대출은 일사천리진행됐고.


청바지 입고 머리를 질끈 묶고 대출받으러 간 날, 스스로가 조금은 창피하고 작아 보였지만 나는 그날 느꼈다. 아무도 안 알아주는 거 같아도 누군가는 내 진심이나 열정을 알아준다는 것. 그게 또 힘이 된다는 것. 별 거 없는 이 오글거리는 메시지가 아직 내 마음에 남아있다. 신파라고 해도 나는 나중에라도 이 날을 돌아보며 힘을 낼 거다.

#쓰리잡도할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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