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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피력 체험담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떠오르는 기억

by 김승하

올해가 2024년이니 벌써 41년 전 일이다. 내가 군에 입대한 해는 1983년 7월이다. 당시에는 전두환 정권의 시절이어서 군대의 급식이나 기타 병참 보급은 훌륭한 편이었다. 내가 입대한 80년대 전에는 군에 많은 부조리가 심해서 배고품을 호소하던 선배들이 많았다고 한다. 내가 복무하던 시절엔 배고픔은 없었지만, 구타나 가혹행위는 여전히 심한 편이었다.

군에서 83년 무렵부터 군내 가혹 행위나 구타 사건을 없애기 위해 정부나 군내에서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상급부대에서 수시로 감찰을 나오고 교육을 하여도 여전히 말단 대대 급 이하 부대에서는 구타가 흔하였다. 아마 계급사회인 군내에서는 현재에도 구타가 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군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가혹행위가 있었다.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전후로 하루에 3번 정도 개처럼 맞았다, 아니 요즘엔 개들도 때리지 않지만...

부처님 오신 날 생각하면 벌써 41년이 지난 군 복무 시절이 생각난다. 나는 논산에서 훈련을 마친 후 경기도 포천의 어느 말단 공병 부대까지 흘러갔다. 행정 주특기를 받았지만... 101보충대를 거쳐... 군단 사령부를 거쳐 공병 여단을 거쳐 포천의 말단 공병 대대까지 흘러갔다.

군대 갔다 온 사람은 아시겠지만 상급부대에서 먼저 필요 신병을 수급하고 남는 병력이 하급부대에 배치되는 구조다. 눈치가 없던 나는 상급부대를 거칠 때마다 특별한 주특기가 없어 머뭇거리다가 말단 공병대까지 흘러갔다. 약삭빠른 어떤 친구는 타자기를 칠 수 없으면서도 거짓말을 하고 군단 사령부에 차출 되었다. 군대라는 데가 일단 배치되면 되돌릴 수가 없고 그냥 적응하면 된다.

말단 야전 전투 공병대까지 흘러온 나는 매일 하루 종일 삽질하고 질통 지며 일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야전 전투 공병대는 혹한기인 겨울에 전투 훈련을 하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군 막사 등 군부대 관련 공사를 한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힘들어한 것은 당시 하급부대에서 용인되던 심한 구타를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 입대를 하였기에 특히 나보다 나이 어린 고참으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할 때마다 견디기 힘들었다. 인격적 모독뿐 아니라 슬리퍼 짝으로 뺨을 맞기도 했다. 그땐 군대가 그런 곳이라 생각하며 견뎠다. 통상 군조직의 내무반은 이등병 일병 상병 병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 이상하게도 우리 중대는 절반이 병장이고 절반이 일병이었다.

더욱이 고참의 기수별로 전라도와 경상도 출신이 교차하여 고참이 바뀔 때마다 심한 내홍을 견뎌야 했다. 그 당시 심한 지역감정 문제로 인해 출신지별로 부대를 편성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하여튼 강원도 출신인 나는 경상도와 전라도 고참들 틈에서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그러다 군 생활 9개월쯤 보낸 일병 계급을 달고 있던 1984년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서 내 군 생활이 일대 전환을 맞게 되었다. 당시 군부대 내에서의 종교 활동은 보장되어 있었지만, (당시 군내 종교 활동은 보장되었지만 말단 대대까지 교회는 있어도 법당은 군단 사령부나 사단 정도 규모의 부대에만 있었다.)

이미지:네이버

그날, 부처님 오신 날 아침 점호시간에 중대 인사계가 상급부대 요청으로 불교 신자들의 법당 참여를 독려하는 공문이 왔다며 군단 법당에 갈 사람은 손들라고 했다. 사실 나는 집안에서는 불교를 믿고 있었지만, 엄밀히 말해 불교신자는 아니었다. 더욱이 고참 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졸병들은 자유롭게 종교 활동을 할 수가 없던 까닭에 가고 싶은 몇몇 동기들도 망설일 뿐 선뜻 손을 들지 못했으나, 나는 과감히 손을 들었다.

나는 처음으로 법당에 갔다. 졸병들은 고참 눈치 때문에 잘 가지 않는 까닭에 나와 함께 각 중대에서 몇 명씩 차출 한 사역병 10여 명이 공병대 덤프차를 타고 군단 법당의 부처님 오신 날 행사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나는 부처님 오신 날 처음으로 부처님께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내 친구들이 근무하는 군단 사령부 같은 깨끗한 곳에 근무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군 입대 9개월 만에 처음으로 군단의 절에 갔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기도가 통했는지 그날 법당에 다녀오니 갑자기 따블 백을 싸고 휴가 갈 준비하라고 하였다. 그 당시 사회는 어수선하여 빈번히 휴가가 연기되어 휴가를 기대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법당에 다녀온 다음 날 예정에 없던 첫 휴가를 15일간 다녀오게 되고 더욱이 휴가 복귀 날 군단으로 전출가라는 전출 명령까지 받았다. 군대에서 한번 배치되면 아무리 빽이 좋아도 부대를 빠꿀수 없다는 사실을 군복무자들은 알것이다.

더욱 신기한 것은 내가 기도하였던 그 법당 뒤에 있는 급수 저장탱크를 관리하는 군단 영선 소대에 근무하게 되어 새벽마다 급수 라인을 점검하며 법당에서 감사 기도를 올릴 수 있었다. 당시 군종 병으로 있었던 법주사 지륜 스님을 군단의 호국 금강사에서 만나게 되었다. 당시 군단 사령부의 군 시설물의 관리를 위해 갑자기 군단 내 시설물(각 공관 보일러, 급수 라인 물탱크, 영내 군 간부 아파트 관리 등)을 관리하는 영선 소대가 갑자기 새로 편성되어 내가 차출 되었고 제대 3개월을 남기고 대대로 복귀하였다.



군복무시절 호국금강사앞에서

간절히 기도하면 통하는 것일까?... 부처님의 손길은 어느 곳이든 존재해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인가? ...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온누리에 부처님의 자비가 가득하길 바랍니다. 2024.05.12/김승하/kimseon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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