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칼 대신 펜을 들다
당신에게 한 끼 밥을 건넵니다.
어둡고 습한 바닥,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칼날 위를 걷는 누군가에게
환한 등불이거나 따뜻한 손길이었던 적 있나요
당신과 내가 다르지 않듯
부자와 가난한 자, 빛과 어둠이 다르지 않고
칼과 펜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갈아 날을 세우던 칼
어깨를 짓누르던 태산 같은 무거운 짐,
솜털처럼 가볍게 잘라 버리고
옹이 지고 모난 마음, 가슴 깊이 품은
독한 마음조차 도려냅니다.
일상의 믿음과 신념으로 오래 달여 온
번뇌와 망상의 물기를 졸여내고,
메마른 삶의 언어를 볶고 슬픔의 감정을 데워
하얀 김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뜻한 한 끼 밥을 당신에게 건넵니다.
시작 노트:
시는 언어의 조리라고 생각합니다. 적당한 온도와 시간, 잘 다듬어진 감정이 하나의 문장 안에서 익어갈 때, 우리는 비로소 누군가의 마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문장을 갖게 됩니다. 이 시 <시인이 된 요리사>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번뇌와 망상을 잘라내는 반야검의 향기처럼 지혜의 칼날을 전하고자 합니다.
메마른 삶의 언어를 볶고 슬픔의 감정을 데워/하얀 김 모락모락 올라오는/따뜻한 한 끼 밥을 지어 당신께 건넵니다.
지난 2018년 달아실출판에서 첫 시집 <저문 바다에 길을 물어> 출간 이후, 한때 요리사라는 직업을 떠나기도 하였지만, 다시 펜을 잡게 되었으며 그동안 써왔던 시편들을 모아 증보판의 <시인이 된 요리사>라는 제목의 시집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시집 <시인이 된 요리사>는 기존의 시집과 달리 전자 시집으로 출간할 예정으로, 요리사였던 제가 삶의 불 앞에서, 외로움과 사랑, 상실과 치유를 반죽하며 써 내려간 한 편의 밥상입니다
시:2025.04.09/김승하/kimseon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