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 <구름의 파수병>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詩(시)와는 反逆(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山頂(산정)에 서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우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늦은 거미같이 존재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간과 마루 한간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妻(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詩(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裸體(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詩人(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죽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이든 가야 할 反逆(반역)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시/김수영시인/<구름의 파수병>전문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김수영 시인의 시집 <거대한 뿌리>를 펼쳤습니다. 오늘은 여러 시편 중 <구름의 파수병>을 소개합니다. 이 시는 일상과 시, 현실과 이상, 타협과 반역 사이에서 갈등하는 시인의 내면을 절묘하게 드러낸 시입니다. 이 시는 단지 시인의 고백이나 독백처럼 보이지만, 시인이라는 존재가 시대와 사회 앞에서 어떤 윤리적, 미학적 책임을 지니는지를 통렬하게 묻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시인은 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소시민적 일상 사이의 괴리를 날카롭게 지적하며, ‘나는 내가 시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라고, 선언하며, 자신의 삶을 '시와는 반역된' 것이라 고백하지만, 이는 단지 창작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배반한 안온한 자기 삶에 대한 성찰이자 고통의 고백입니다.
'먼 산정'은 자의식의 자리이자 거리 두기의 시선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삶’을 산 아래서 관찰하는 외부자, 혹은 구름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파수병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물질성과 거기서 오는 무기력함을 ’잡스러운 물건들'이라고 표현하며, 시인은 자신의 존재를 더욱 고립시킵니다.
'구름’은 꿈, 자유, 이상, 또는 시 그 자체를 상징하지만, 그것은 ‘잠자고’ 있고, 시인은 그것을 ‘바라보는 파수병’으로만 존재합니다. 더 이상 직접 구름에 들어가거나 그것과 하나 되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하는 존재 — 그것이 바로 시를 '배반한' 시인의 모습입니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리라’라고 말하지만, 이 파수병은 이상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이상과의 거리, 소외감을 지켜보는 자입니다.
시인은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 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으로 구름처럼 떠돌 뿐입니다. 이러한 ‘반역의 정신’은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 보다’라고 말하며, 시인이 한때 가졌던 상반된 열망 — 현실과 이상을 동시에 품으려 했던 시기의 순수함 — 이 이미 사라졌음을 자조적으로 회고합니다.
<구름의 파수병>은 시 전체를 아우르는 시인의 고독과 자책의 정서를 읽을 수 있습니다. 시인으로서의 양심은 살아 있으나, 더 이상 그 양심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현실. 시인은 시를 배반한 죄인처럼 산정에 고립되어, 자기도 사라져 가는 구름을 멍하니 지켜보는 파수병으로 남아 그러한 반역의 정신은 더 이상 혁명적 외침이 아니라, 존재의 비극적인 부유감으로 남아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김수영 시인은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그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는 예민한 자의식의 성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역’이라는 단어를 통해, 그는 시인과 시가 본래 지녀야 할 시대 비판성과 정신적 저항을 끝까지 붙들고 있으며, 그것을 포기한 자신을 고발하는 일조차 시의 언어로 정직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시인은 단순히 개인의 자기반성에 머무르지 않고, 시인으로서 산업화, 자본화, 제도화되는 사회 속에서 예술가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아이러니인지를 상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2025.04.12/김승하시인/kimseon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