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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혼란스러움을 시적유머로 전환한 상상력

- 이슬안 시인의 <입덧>

by 김승하

일상의 혼란스러움을 시적유머(poetic humor)로 전환한 상상력

- 이슬안 시인의 <입덧>


지난 1월경 이슬안 시인이 보내온 시집- 달아실시선 88번째 시선, <달의 기억이 뒤척일 때>를 받은 적 있었다. 이 시집 중 <입덧>이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이 시는 임신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보편적인 상징과 구체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입덧의 혼란스러움과 초현실 감을 매우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독자에게 감각적이고 철학적인 사유를 동시에 제공하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원의 공식 가르치는데

고구마가 걸어와 원 속으로 들어간다


명일동 주공아파트 정류장에 내리면

찬바람 뚫고 달려드는 냄새

뱃속 아기가 툭툭 보채는데

동그랗게 웅크린 아기 배꼽에서

군고구마 통까지 지름이 얼마나 될까

책상머리 설익은 답안지들 튀어나오고

군고구마가 해답처럼 들어선다


과외 끝내고 정류장 가는 길

불 꺼진 어둠 속

내 몸은

싸늘한 군고구마 통

시:이슬안시인/<입덧>전문


시인은 <입덧>이라는 신체적 증상을 중심에 놓고, ‘원의 공식’이라는 Pi, 지름, 원주 등 수학 교과서의 언어와 ‘고구마’라는 생생한 식욕의 이미지로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고구마가 걸어와 원 속으로 들어간다"라는 표현은, 입덧으로 인한 감각이 환상처럼 느껴지며, 평면적인 원 속으로 고구마가 들어가는 모습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적 유머(poetic humor)로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주며, 일상의 괴로움 속에서도 웃음을 전해주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슬안시집4.png

‘고구마’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임신과 관련된 원초적 욕구, 위안, 그리고 존재감의 상징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단순한 유머를 넘어, 삶에 대한 깊은 직관을 담고 있으며 육체(임신)와 지식(원의 지름)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적 긴장감을 읽어내고 있습니다. “동그랗게 웅크린 아기 배꼽에서 군고구마 통까지 지름이 얼마나 될까”라는 이 시의 구절은, 수학의 도형(원), 임신한 배의 형태, 군고구마 통이라는 현실 사물, 이 세 가지를 하나의 이미지로 중첩하여, ‘배’‘공식’이 되어버린 순간이자, 임신한 몸이 삶의 중심 공식으로 등장한 상징적 장면입니다.


또한 학생들의 ‘설익은 답안지’는 성숙하지 못한 지식이나 불안정한 교육 현실처럼, 미완성된 생각과 지식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으며, ‘군고구마’는 모든 이론을 무색게 하는 육체의 본능, 뜨겁고 확실한 현실의 존재로서의 인식입니다. 즉 정신적인 해답이 아닌 감각적 만족, 생존과 욕망이야말로 더 중요한 진실이라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


시인은 ‘내 몸’‘싸늘한 군고구마 통’이라는 은유를 통해 , 하루의 일과를 마친 피곤한 육체, 공허한 감정, 혹은 일과 육아, 여성의 소외된 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뜨겁던 통이 식고, 누구의 위안도 되지 않는 순간, 임신한 여성의 외로움과 육체적 피로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현실의 피로와 임신의 감각적 충동, 지식의 무력함과 아기의 생명이 소중함, 등을 느낄 수 있는, 짧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작품으로서 <입덧>이라는 생생한 생명의 증표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2025.04.14/김승하시인/kimseon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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