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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여운 속에서/김수영 시인

오늘의 시낭송

by 김승하


https://youtube.com/shorts/htQtVjezjBg?si=ziHwnSIBr2s7k-zv

거짓말의여운3.png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는다

시평의 칭찬까지도 시집의 서문을 받은 사람까지도 내가 말한 정치 의견을 믿지 않는다


봄은 오고 쥐새끼들이 총알만 한 구멍의 조직을 만들고

풀이, 이름도 없는 낯익은 풀들이 풀 새끼들이 허들어진 담 밑에서 사과 껍질보다도 얇은


시멘트 가죽을 뚫고 일어나며 내 집과 나의 정신이 순간적으로 들렸다 놓인다

요는 정치의견이 맞지 않는 나라에는 못 산다.


그러나 쥐구멍을 잠시 거짓말의 구멍이라고

바꾸어 생각해 보자 내가 써준 시집의 서문을

믿지 않는 사람 얼굴의 사마귀나 여드름을-


그 사람도 거짓말의 총알의 까맣고 빨간 흔적을 가진 사람이라고 - 그래서 우리의 혼란

을 승화시켜 보자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일본말보다 더 빨리 영어를 읽을 수 있게 된,

몇 차례의 언어의 이민을 한 내가

우리말을 너무 잘해서 곤란하게 된 내가


지금 불란서 소설을 읽으면서 아직도 말하지 못한 한 가지 말 - 정치 의견의 우리말이 생각이 안 난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의 부피가 하늘을 덮는다. 나는 눈을 가리고 변소에 갔다 온다.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고 내가 내 말을 안 믿는다.


나는 아무것도 안 속였는데 모든 것을 속였다 이 죄에는 사과의 길이 없다 봄이 오고 쥐가 나돌고 풀이 솟는다 소리없이 소리 없이


나는 한가지를 안 속이려고 모든 것을 속였다 이 죄의 여운에는 사과의 길이 없다 블란서에 가더라도 금방 자유가 온다고 해도.

민음사/김수영시선/[거대한 뿌리]중에서



영원한 자유의 시인 김수영 시인의 「거짓말의 여운 속에서」

김수영 시인의 언어는 직설적 화법과 서술적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격식 없는 진술 속에 시대의 진실을 또렷하게 드러냅니다. 그의 말은 비유와 수사를 최소화한 채, 삶의 실체를 밀어 넣은 언어로 독자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합니다.

「거짓말의 여운 속에서」는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시인의 내적 갈등, 사회에 대한 불신, 그리고 언어의 무력함을 날카롭게 드러낸 작품입니다.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는다”는 선언으로 시작되는 이 시는, 단순한 자기 고백을 넘어, 신뢰를 잃어버린 사회, 검열과 침묵에 길들여진 언어, 진심이 의심받는 시대의 초상을 그립니다.

시인은 정치적 의견조차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말이 점점 무의미해지는 세계를 경험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안 속였는데 모든 것을 속였다”는 고백은, 단 하나의 진실을 지키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침묵해야 했던 양심의 고통이자, 시대에 대한 자기반성으로 읽힙니다.

이 시는 특히 대통령 재선거가 다가온 요즘 더욱 깊은 울림을 줍니다. 넘쳐나는 말과 약속, 반복되는 구호와 이미지 속에서 우리는 진짜 목소리를 구별해 낼 수 있을까요? 진실을 말하는 이조차 믿지 않는 풍경 속에서, 김수영의 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거짓말의 부피가 하늘을 덮는다”라고 말한 시인의 눈앞에는, 거짓으로 구축된 체제와 그 안에서 진실을 말하지 못한 분열된 자아가 함께 서 있습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봄이 오고, 풀이 솟고, 쥐가 나도는 이 시절. 우리는 ‘한 가지를 안 속이려고 모든 것을 속였다’는 시인의 고백을 되새기며, 잊고 있던 진실은 무엇이었는지, 다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2025.05.22/김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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