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란 무엇인가? 시를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돌아보게 되는 물음이다. 오늘 불현듯 다시 한번 되뇌이게 된다. 시란 무엇일까?...오랫동안 시를 써온 사람들도 시가 무엇인지, 시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명확하게 정의 하기 어려울 테지만 ... 굳이 정의를 내린다면 시는 감동이라고 정의 한다.
나는 조심스럽게 시란 감동이 없으면 시가 아니라고 생각 한다. 심금의 현을 울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리 현란한 미사여구와 은유로 장식되었다 할지라도... 객관적 상관물이 어쩌구,시의 함축이 ....이미지가 어쩌구...그러한 모든 기교는 시의 감동을 증폭시키기 위한 기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시의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가? 삶의 진솔한 경험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과장되고 허세가 가득찬 목소리가 아닌 ,진솔한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다.그 경험은 삶을 진지하게 대하는 자세에서 나오며,자신의 직 갑접적인 체험치를 늘리기 위해 많은 독서를 하고 고민하고 마음 공부해야 한다.
극과 극은 상통한다고 했던가? 사랑이든 슬픔이든 문학이든 인생의 정점에 서 본 사람들만이 알수 있을테지만, 어쩌면 시 또한 도를 깨우치듯 스스로 깨달음을 통해 얻는 것인지도 모른다. 채근담을 쓴 홍자성의 말이던가.. 얇은 살얼음판을 건너보지 안은 사람이나 어두운 골방에서 골똘히 죽음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세상을 나아갈수 없다고 했던가? 시 또한 이처럼 풀뿌리를 씹듯 인생의 쓴맛 단맛을 본 사람에게서 좋은 글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시인은 누구보다 쉽게 상처 받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시인의 길은 평탄하지 않은지 모른다. 아니, 스스로 선택한 고통의 길일지 모른다. 그러나 시를위한 길을 선택한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종종 과장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시인은 또한 이점을 경계 해야 한다. 과장된 목소리는 좋은 시를 쓰려는 욕심에서 생길지 모른다. 욕심에서 벗어나야 만 시의 깨달음에 이를수 있는지 모른다. 좋은 시상은 도처에 널려 있다. 다만 좋은 심안을 갇고 있지 않으면 볼 수 없을 뿐이라 생각 한다.
시의 감동은 겨자씨처럼 아주 작은 감동에서 시작한다. 상처받기 쉬운 시인의 예민한 가슴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현과 같은 것이어서 누구보다 깨끗한 심성을 지녀야 한다. 시의 감동은 겨자씨처럼 아주 작은 감동으로 시작하지만 겨자씨 속에는 태산이 들어가고도 남을 넉넉한 감동의 깊이가 있지만.... 울림의 깊이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그렇다면...좋은 시를 쓰려면 시인은 먼저 맑은 심성을 다스리는 마음공부 부터 해야한다.2010.07.06/김승하/kimseon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