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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가 된 시인 3 -칼을 갈다

오늘의 시낭송

by 김승하


https://youtube.com/shorts/KYakS-D-IuM?si=8W-jrluR2oBdI6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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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이란 칼 모두 꺼내 칼을 간다

쓱, 쓱, 단단한 숫돌에 기대어 칼을 간다


한때 서슬 푸른 날 번뜩이며 호기롭던 칼들,

모든 것 자를 듯한 기세로

여린 푸성귀를 자르던 야채 칼,

쇠고집으로 버티던 힘줄 단칼에 잘라내던 육류용 칼,

날카로운 가시를 품고 있던 생선을 토막 내던 칼,

그늘에서 싹을 키워오던 감자들

독한 마음조차 쉽게 도려내던 쪽칼,


칼자루를 쥔 자의 마음보다 늘 앞서던 칼끝

반드시 베어내야 할 것과 잘라내야 할 것들,

급소를 모른 채 함부로 휘두르면

칼은 쉽게 이빨만 드러낼 뿐이다


칼은 날이 무딜수록, 칼자루를 잡은 사람에게

종종 깊은 상처를 주는 법이라서

날카롭고 단단한 의지로 날 다스리지 않으면

낭패를 볼 뿐이다. 칼은 기억하고 있을까

대장장이의 망치질과 풀무질을

뜨거운 불과 차가운 물의 담금질을 기억하고 있을까


칼이란 칼 모두 꺼내 칼을 간다

모래알이나 흙으로 다져진, 단단하지만

제 살 깎아내며 칼을 받아내는,

부드러운 마음 지닌 숫돌에 기대어 날을 세운다

무감각해진 날 다스리며 쓱, 쓱, 칼을 간다


시작노트:「「요리사가 된 시인 3-칼을 갈다」


나는 한때 요리사였고, 지금은 시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둘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칼날을 가는 일은 요리사의 삶을 준비하고 다듬는 일이자, 시를 쓰는 일은 번뇌를 벼려내는 과정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결국 삶을 다듬는 일이란 점에서 이 둘은 하나입니다.


칼을 간다는 것은, 육류나 채소를 자르던 날이 아니라, 내 안의 거짓된 ‘나’를 벨 칼을 들기 위함입니다. ‘나’라고 여겨온 무수한 집착과 관성을 벼리기 위해, 숫돌에 칼을 갈듯, 나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다시 세우는 것입니다.


숫돌은 수많은 모래알로 다져진 금강석. 불가의 언어로 말하자면, 그것은 곧 ‘지혜’입니다. 삶이라는 연기(緣起)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지혜는 날마다 무뎌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칼날을 갈아야 합니다. 베어야 할 대상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 안에서 번져가는 무지와 탐욕, 그리고 아상입니다.


『육조단경』을 다시 펼쳐 봅니다. 문자를 모르는 목수였던 혜능이 어찌하여 선종의 제6조가 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합니다. 깨달음은 결코 경전의 문자 속에도, 선방의 규칙 속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삶 속에서, “바로 지금 여기”에서 깨어 있는 자만이 마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깨달음은 더 이상 종교인이나 수행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칼날은 지혜를 상징하지만, 동시에 권력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여, 지혜의 검을 들기 바랍니다. 오늘날 정치의 이름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이여, 당신의 칼날은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권력자에게 있어 숫돌이란, 수많은 모래알과도 같은 국민들의 목소리입니다. 권력의 날은 국민의 숫돌 위에서만 벼려져야 합니다. 생존을 위한 절규를, 정의와 평등을 요구하는 외침을 베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무뎌진 칼은 쥔 자의 손을 먼저 다치게 하며, 결국 타인도 상처 입히게 마련입니다. 자신을 벼리지 않은 자는 반드시 타인을 다치게 합니다.


새로운 정부의 출발과 함께 권력을 쥔 이들이여, 지금 당장 숫돌 앞에 서십시오. 자신의 칼을 벼리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무뎌진 정의를 다시 날 세우고, 부패한 의지를 다시 살릴 유일한 길입니다.

칼은 결코 뽐내기 위한 장식이 아닙니다. 칼은 자신을 다듬고, 삶을 세우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가장 예리한 지혜는 번뇌를 가르되, 타인을 다치게 하지 않는 “침묵의 칼날”이어야 합니다.


칼은 침묵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미세한 번뇌조차 허용하지 않는 파릉취모(巴陵吹毛)의 가장 예리한 경고가 되어야 합니다. 칼은 분별을 가르는 지혜이며, 가장 미세한 아집조차 꿰뚫는 ‘반야의 검’이 되어야 합니다. 2025.06.04. 김승하 kimseon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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