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낭송
https://youtube.com/shorts/Govk5r1QTFE?si=hlqeBaCnu0tQ9Jkm
수족관 바닥에 나란히 엎드린 광어와
도다리 사진을 인터넷의 바다에 풀어 놓았더니
보수주의자의 풍요로운 삶을 동경하는
한 친구는 도다리를 좋아한다 하고
자신이 지독한 진보주의라고 실토한 친구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광어를 좋아한다고,
불신의 가시를 숨긴 채 서로를 비난하거나
댓글만 모래처럼 쌓인다.
광어는 어째서 왼쪽으로 눈이 몰린 것일까.
새로운 것은 늘 낯설고 불안한 것이어서
비수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것일까
옹그린 작은 새우나 조개를 먹고 사는
모랫바닥에 몸을 숨긴 옹졸한 도다리는
오른쪽으로 눈이 몰린 것이 신기하다.
세상의 중심에서 비켜선 그들은
바닥을 전전하며 외곬의 삶 살아 온 자들이다.
주변을 서성이며 의심만 키울 뿐이다.
광어인지 도다리인지 그놈이 그놈 같은 가자미들
바닥에 엎드려 곁눈질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좌광우도를 되뇌며 고르는 가자미들
어안렌즈의 사시를 굴리며 나를 보고 있다.
수족관엔 서로를 물어뜯은 상처들 가득하다.
시:달아실시선09,<저문 바다에 길을 물어>
어느 날, 인터넷에서 광어와 도다리를 비교해 놓은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수족관 바닥에 나란히 엎드린 생선 둘. 왼쪽으로 눈이 몰린 광어, 오른쪽으로 몰린 도다리. 그 단순한 생물학적 차이가 문득, 이념으로 갈라선 사람들의 얼굴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좌광우도’라 하며 그 생선을 구분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또 어떤 위치에서 누구를 향해 곁눈질하고 있는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누구는 보수라서 도다리를 좋아하고, 누구는 진보라서 광어가 좋다고 합니다. 자신의 입맛을 이념으로 포장한 채, 수조 안에서도 서로를 경계하고 물어뜯습니다. 그들의 이빨, 그들의 몸짓은 곧 사람들의 말과 표정입니다.
서로를 향해 예리하게 날을 세운 이빨이거나, 몸을 모래 속에 파묻은 채 의심으로 굳은 눈동자입니다. 결국, 광어도 도다리도 다 같은 가자미과 생선이듯이, 우리가 서로를 구분 짓고 편 가르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는 그런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왜 우리는 항상 좌와 우, 옳고 그름, 중심과 주변으로 나누고 갈라서려 할까?’ 그 이념의 균열 속에 선 우리는 과연 어느 쪽인가? 혹시 어안렌즈 너머 사시처럼 흐릿한 시선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상처만 남기는 건 아닐까?
「가자미 구분 하는 법」은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존재들,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바닥에 엎드려 사는 이들의 초상을 담고자 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거울일지 모릅니다. 비뚤어진 눈으로 서로를 의심하지만, 그렇게 바라보는 나 또한 누군가의 곁눈질 속에 있다는 자각, 그 모순과 씁쓸함이 이 시의 출발점입니다.2025.07.17/김승하/kimseon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