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감자떡

오늘의 시낭송

by 김승하


https://youtube.com/shorts/w494KBQs1_Y?si=dIMJV5hZlGLSMqFJ


감자떡4.png

할머니 밭에서 캐온 감자들 중 못생기고 상처 난 놈만 골라 항아리 가득 재워 두었는데요. 조금씩 상처 지닌 채 침묵하던 감자들, 여름 땡볕과 장맛비 아래 부글부글 거품 게워내며 독기 뿜어냈는데요. 허물 모두 벗고 몸뚱이마저 녹아내려 하얀 녹말로 가라앉을 때까지 푹, 푹, 썩어가던 감자들, 여름 내내 코 막고 다닌 기억밖에 없는데요. 다시 겨울방학 때 찾은 할머니 댁, 할머니가 한 소쿠리 내어주시던 감자떡에는 아린 사랑의 맛 담겨 있었는데요. 할머니 세상 떠나신 뒤, 멍 빛의 쌉쓰름한 감자떡 더 이상 맛볼 수 없는데요. 홀로 빈 집 지키는 항아리 볼 때마다 크고 둥근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 감자처럼 푹, 푹, 썩고 싶은데요. 썩어서 하얀 앙금 가라앉은, 속 깊은 침묵으로 빚은 쫀득쫀득한 감자떡 같은 시를 쓰고 싶은데요.

시:달아실 출판사, 2018,김승하,『저문 바다에 길을 물어』



항아리 속 깊은 앙금으로 가라앉은, 침묵의 언어로 빚은 『감자떡』

어릴 적 겨울방학이면 강원도 강릉의 사천면 사천진리에 있는 외갓집에 자주 가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옆 개천 한편의 커다란 항아리 속 감자들이 썩어가던 풍경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못생기고 상처 난 감자들만 따로 모아 항아리에 넣어두셨던 외할머니, 여름 내내 그 항아리 주변엔 코를 찌르는 냄새가 맴돌았지요.


그러나 겨울이 되면, 그 썩어가던 감자들은 할머니의 손길을 거쳐 쫀득쫀득한 감자떡이 되어 우리 입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약간의 쓴맛과 함께 아린 듯한 그 감자떡의 맛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상처마저 품어 사랑으로 빚어내던 존재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그 감자떡도 더 이상 맛볼 수 없게 되었지만, 그 기억은 제 안에서 오래도록 발효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나 역시 그렇게 썩고 가라앉고 나서야 비로소 ‘쫀득한 시’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는 그런 저의 회한과 소망이 섞인 고백입니다. 감자떡처럼 아릿하고도 질긴 삶의 맛이 이 시를 읽는 분들께도 스며들기를 바랍니다.2025.07.13/김승하/kimseonbi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요하지만 침묵하지 않는 협주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