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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옥 Sep 04. 2024

서른이지만 서른 살이 아닙니다.

결여된 시간

2년 전 내 마음과 머리의 불안증세가 심해져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 전문의에게 상담과 검사를 받고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라는 병명을 진단받았다.


그 이후로 약을 받기 위해 4~5주 간격으로 병원을 방문해 진료와 상담을 받는데 평소 부모님에게도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고 감정을 밖으로 잘 비추지 않다가 정신의학과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 선생님 앞에 앉으면 내가 놓인 상황과 속마음을 털어놓는데 이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자체로도 큰 힘이 되더라.


진료를 받기 전 지금 내 마음이나 생각들을 글로 한번 정리하고 들어가는데 글을 쓰다 보니 요즘 내가 받은 사람에 대한 상처와 회의감에 뿌리에까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전날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예약일에 방문한 정신건강의학과는 언제나 같은 모습이었다. 문을 열면 병원 특유의 향이 아니라 달짝지근하면서도 상쾌한 향이 났고 심리와 관련된 도서들이 나열된 테이블을 지나면 두 분의 직원이 이름을 물어본 뒤 진료 전 필요한 검사지를 핸드폰으로 보내주었다. 10분가량 설문사항들을 체크한 뒤 앉아 병원에 놓인 모빌을 별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내 차례가 되었다며 직원분께서 내 이름을 불러주신다.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 노크를 하고 '네'라는 대답에 문을 열고 자리에 앉으면 언제나처럼 '잘 지내셨어요 송수영 씨'라는 따뜻한 음성으로 의사 선생님께서 인사를 건네어 준다.


지난 진료를 보고 4주 동안 일어난 나의 일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하고 내가 느낀 감정과 생각들을 나는 선생님께 이야기한다. 딱히 선생님은 내게 먼저 묻지도 않지만 나는 내 이야기를 한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사람과의 관계에서 제가 느낀 감정들이 생각보다 깊더라고요. 저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제 마음과 행동을 돈으로 나타내 말씀드리자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100만원을 주고 그 사람이 내게 감사나 100만원에 훨씬 못하는 마음을 제게 보인다면 저는 요즘말로 바로 손절을 치면서 나는 저 사람에게 100만원을 줘서 아깝다가 아니라 100만원으로 사람을 볼 수 있어 오히려 좋아 라는 시니컬한 자세를 취하고 살았는데 이게 지나고 보니깐 다 상처였더라고요.

앞으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더 이상 마음이 가지 않고 모든 인간관계가 허물일 뿐 제가 생각했던 만큼의 깊은 관계는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이 이야기를 하려다가도 내가 어떤 말을 꺼내려하면 본인의 이야기는 다문채 조용히 듣고 내 이야기가 끝이 난 뒤에 본인의 이야기를 건네주는 선생님의 다정함을 오늘도 느끼면서 내 이야기를 마쳤다.


-송수영씨는 원래부터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셨나요?


-제가 선생님께 진료를 받기 전 제 생각을 글로 좀 써보고 왔는데, 그때 생각이 든 게 저는 17살에 학교가 아닌 병원에서 3년이란 시간 동안 항암치료를 받았고 그 이후로 3년이란 시간 동안 수술과 재활을 하면서 사회로부터 결여된 시간의 보상심리에서인지  사람을 만나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거에 깊은 유대감과 기쁨을 느끼면서 상대방에게 마음을 꽤나 주었던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선생님은 내 생각의 물꼬를 틔어 줄 뿐 대부분의 시간은 내가 나불거리다 오는데 이날은 웬일인지 선생님께서 길게 답변을 주셨다.


- 송수영씨는 보면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선한 분인 거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6년의 시간 동안 학교나 사회에서 보냈어야 할 시간들을 보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6년이란 시간이 늦춰진 거 같은데 이 시간이 6년이 흐른다 해서 쉽게 채워지지는 않을 겁니다. 병원에 있으면서 책을 통해 많은 것들을 경험했을 테지만 책이란 건 책이 나왔을 당시의 시대적 반영이 크고 대부분의 책은 아름다운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있어 책과 현실 사이에 괴리감이나 위화감이 생길 거고요.

송수영씨의 나이는 서른 살이지만 아이처럼 사람이 좋아 다가갔지만 이미 학교와 직장에서 사회경험을 한 사람들은 송수영씨보다 머리 위에 있어 그 부분을 이용했을 수도 있고요. 그렇다 해서 송수영씨가 말한 100만원을 주고 사람을 보는 게 잘못된 건 아닙니다. 다만 살아가면서 만 명의 사람을 만난다면 그 만 명 모두에게 100만 원을 준다면 그 금액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기에 100만 원이 아닌 10만 원으로 낮추는 게 좋을 거예요.


어린이수영강습을 하면서 보는 아이들의 모습 중에서 처음 보는 아이들끼리 금방 친해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아이들끼리 재잘거리는 모습에 '너희 수영장 오기 전부터 원래 알던 사이니?'라고 물으면 '아니요 수영장에서 처음 봤는데요.'라는 답이 대부분이다. '나랑 친구 할래?'라는 말이 아이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고 이상할 게 없지만 어른들 사이에서 나랑 친구 하자는 말은 생각을 하지도 밖으로 꺼내지도 않는다는 게 떠올랐다.


내가 결코 선하고 순수하다는 걸 전달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지난날의 나를 돌이켜 보면 상대방에게 사랑, 호기심, 끌림, 재미, 돈, 매력, 연민, 동질감, 욕망, 이타심과 같이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게 아니라면 모두와 친해지고 싶어 했다. 순수하게 그 사람이 좋아서 다가간 게 아니라 내게 이득이 될 부분을 보고 다가갔을지라도 나는 그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단 거에 슬퍼졌다. 그 사람은 나보다 앞서 사회라는 구성원 속에서 상처를 받아가며 그렇게 변한 거겠지..


그렇다 해서 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걸 알기에 내가 받은 이 상처도 또는 내가 누군가에게 준 상처도 결국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고 나 또한 다른 이에게 사랑을 줄 테니깐 사람이라는 존재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람에게 다가가기가 힘들어졌을 뿐.


사람을 만나고 어색해지는 게 슬프다. 친구 하자 손을 건네면 상대방이 잡아주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손조차 잡아주지 않았다는 거에 눈물이 난다.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더라도 친구가 되어준 사람도 있겠지 나와 진심으로 함께해 준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두 손 잡고 있었을 거라 생각했던 나만의 착각에 나는 우울감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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