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씨에 수영강습하기는 좋습니다.
어린이 수영
어머니, 당장 다음 주가 추석인데 날씨는 아직도 한여름 마냥 온도가 30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높아진 하늘과 일찍 저무는 태양을 보고 이 더위도 끝나겠구나 싶었는데 오늘은 유독 더운 것 같네요.
사무실의 정수기를 점검하러 다니다 보면 대부분은 에어컨이 없는 탕비실에 정수기가 놓여 있어 정수기를 점검하는 30분 동안은 복장 안으로 땀이 줄줄 흐르는 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무더운 날이면 어디 쉴만한 장소도 마땅히 없어 에어컨이 나오는 엘리베이터에서 잠시 땀을 식히고 다시 정수기 점검을 하러 다니는데 평소보다 더 진이 빠지곤 합니다.
그렇다고 이 더위가 저를 마냥 힘들 게만은 하지 않습니다. 물속에 들어가 수영강습을 하다 보면 슈트를 입어도 추위에 몸이 움츠러드는데 이런 날씨면 오히려 물속이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고객의 정수기 점검을 하는데 작동이 잘 되지 않아 한 곳에서 1시간가량을 땀에 절으며 점검을 해서인지 얼마 일을 하지도 못했는데 지쳐서 오늘 해야 할 양을 다 마치지 못한 채 일을 마무리하고 수영복을 챙겨 수영장으로 향하였습니다.
땀으로 젖은 몸을 깨끗하게 씻고 수영강습을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걸어갔습니다. 강습받는 아이들 대부분이 초등학교 저학년이라 안전상의 이유로 강습 시간 외에는 물속에 들어가지 말라 이야기해놓는데 그 말에 따라 물 밖에 일렬로 앉아 있는 아이들의 시선이 저의 걸음걸이와 함께 움직이는 모습이 꽤나 귀여웠습니다.
수영하기 전 준비운동을 시키고 출석을 부르는데 오늘 강습에는 두 명이나 아파서 나오지 못해 네 명의 아이들과 수업을 하였습니다. 저학년 친구들이라 수영을 가르치는데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서로 장난치기 바빠 수업에 집중을 시키기에 좀 애먹었습니다. 그래도 한 명 한 명 잡아 집중시키고 수영 가르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 45분이 되었습니다.
강습시간 50분 중 5분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게 풀어놓는데 별거 아닌 시간을 아이들이 참 좋아하더라고요.
저도 아이였을 땐 물을 참 좋아해 여름이 되면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가 동생과 저를 데리고 냇가나 분수로 나가 자주 놀아주곤 하셨죠. 여기 이 아이들도 어릴 적 저희처럼 물 만난 물고기 마냥 물속에서 잠수도 하고 제게 물을 뿌리며 재밌게 노는 모습이 참 귀여웠습니다. 수업 종료 시간이 다가와 수모를 벗고 수영장에 걸터앉은 저를 본 아이들이 머리카락 있는 모습은 처음 본다며 신기해하는 모습도 귀여웠습니다. 물에서 노는 시간도 그렇고 이 수모 하나 벗은 게 뭐라고 그렇게 재밌어하는지.
또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제게 '선생님 뽀로로 친구 루피 닮았어요.'라며 '선생님 귀엽게 생겼네요.'라고 하는데
그런 말 하는 녀석이야말로 뽀로로를 닮아 무척이나 귀여운 녀석이었습니다.
그렇게 짧은 물놀이를 마치고 아이들에게 인사를 시키며 마무리를 하고 다음 타임 어린이 강습을 준비하였습니다.
오후 6시가 되어 아이들 준비운동을 시키고 수업을 진행하려는데 오후 6시 강습 반은 친구들이 두 명밖에 안 왔더라고요.
혹여나 내 수업이 (부모에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아이가 내 수업에 오기 싫어하나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아이들 두 명만 있으니깐 개인과외처럼 더 확실하게 자세를 잡아주잔 마음으로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두 명뿐이었기에 수업시간 동안 하나하나 자세를 잡아주었고 아이들이 잘 따라와 줘서 조금 일찍 끝내 물놀이 시간을 아이들에게 주었습니다. 여기서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게 있습니다. 아이들은 잠수를 좋아하고 그 잠수를 자기가 얼마나 잘하는지 저에게 자랑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요. 한 녀석이 제게 자신이 잠수하는걸 보라며 물속에 들어가 입으로 물방울을 만들곤 '저 도넛 만드는 거 보셨어요?'라며 반짝이는 눈동자로 묻는데 물방울보다 더 동그랗게 반짝이는 그 아이의 눈망울이 참으로 예쁘더라고요.
물속에 있다 보니 제 몸의 튼살과 수술, 화상자국을 본 아이들은 가감 없이 제게 이게 뭐냐며 동물 가죽 같다고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남들과 다른 제 몸을 보고 이상함과 호기심이 공존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한 여자아이는 제 몸이 신기한지 제 등과 배에 난 튼 자국을 살짝씩 눌러보았고 다른 남자아이는 제게 이러더라고요.
'원래 자유시간 없었는데 선생님은 자유시간을 줘서 좋아요.' 제가 아이에게 '아 그전에 선생님은 자유시간을 안 주셨어?'라고 묻자 '네, 그리고 저희가 계속 움직이고 선생님 말도 잘 안 듣는데 선생님을 화도 안 내시고 상냥하게 말로만 해주시는 게 되게 착하신 거 같아요.' 아이의 말에 빵 터져 웃음이 나더군요.
"물에서 노는 게 뭐 그리 좋다고 혼자 잠수하고 놀면서도 재밌어하는 아이의 모습."
"수업시간에 배영을 알려주려고 제 팔 위에 아이를 눕혀 놓자 뭐가 웃긴 건지 빠지고 새로 난 이가 아직 다 자라지 못해 다른 이빨보다 더 작은 이를 보이며 꺌꺌 거리고 웃던 아이의 모습."
"제게 만화 캐릭터 같다며 귀엽다고 해주던, 더 만화캐릭터같이 귀엽게 생긴 아이의 모습."
"제 튼 살을 보고 동물 같다며 만져보려던 아이의 모습."
"잘 놀아주고 자신에게 상냥하다며 제가 착한 선생님 같다 이야기하는 아이의 상냥한 말투."
이 모든 게 참으로 순수하고 귀여웠습니다. 지난번 글에 적은 것처럼 아이들의 순수함은 이타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자신의 것보다 남의 것을 챙겨주는 모습 같은 게 아니었습니다. 물에서 노는 이 시간이 정말로 재밌고 제게 이야기해 준 모든 말들이 본인의 솔직한 감정 이런 모습이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머니. 나이가 들어 늙고 병드는 것에 서글퍼할게 아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순수한 모습이 가려진다는 게 슬픈 일이지 않나 싶습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순수함이지만 이런 순수함을 아이들을 통해 볼 수 있는 게 참 귀중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귀여운 외모를 갖고 있어서가 아닌 이런 아이들의 내면의 모습을 이제라도 조금 느낄 수 있게 된 저는 제가 좋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어린이 수영 강습을 하는 거지만 어찌 보면 이 시간 속에 더 귀한 것들을 저는 이제 조금 보게 된 것 같습니다.
현재 놓인 상황이 버거워 삶을 살아가기 급급하고 매일이 힘든 어머니. 지금 당장 우리의 삶이 좋아지지도 변하지도 않겠지만 이 시간 속에서도 소중한 것들을 보고 느끼셨으면 합니다. 저보다 더 땀을 한 바자기 흘리며 고된 일로 손가락부터 온몸이 아파하는 어머니가 집에 오시기도 전에 먼저 잠에 드는 것에 마음이 무겁지만 내일 새벽 출근을 위해 저는 먼저 자보겠습니다.
부디 어머니의 삶이 하루라도 빨리 평안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