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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차 - 우리는 왜 행복을 더 간직할 수 없을까?

오늘 나를 웃게 만든 순간은 언제였나?

by 선옥

지난 화요일, 러닝을 하다 흉추가 잠겨 등의 통증으로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어서 며칠 동안 러닝은커녕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해 일기 쓰기도 며칠간 하지 못했다.


틈틈이 기능성운동을 통해 통증이 많이 나아져 다시 일기를 쓰려는데 며칠 만에 쓰려니 일상생활에서 느낀 기쁨과 행복의 감정들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반면 분노하고 슬퍼하며 괴로워한 사건과 감정은 며칠, 혹은 몇 달이 지나도 여전히 마음속을 떠나지 않는데 우리는 왜 행복한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할 수 없을까?


행복한 기억, 고통스러운 기억 모두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의 차이가 있지만 ‘기억은 기록을 이길 수 없다.’는 참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문장처럼 결국 기억은 잊혀지기에 정확한 기록을 위해 기억을 다시금 떠올려 본다.


직업상 평소 가장 많이 마주치는 건 아이들과 노인들이다. 그런 내가 지인들은 아이와 노인을 좋아하는 줄 알지만, 사실 나는 아이와 노인을 썩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아이들의 이기적이고 예의 없는 모습, 노인들의 고집불통에 가까운 사고방식을 보고 있자면 화가 나다 못해 그들을 무시해 버릴 때도 있다. 그런 내게 역설적이게도 가장 많은 웃음을 주는 것이 또 아이와 노인이다.


어린이 수영 수업 때 내가 “한 바퀴 더 돌고 오라”고 하면 바득바득 싫다고 말대꾸하는 녀석들과 설명을 해도 듣기는커녕 쳐다보지도 않는 녀석들을 보면 머리를 세게 쥐어박고 싶다가도, 수업 시간이 아닌 때에는 내게 와 안기며 장난치고, 집에서부터 간식을 챙겨 와 건네는 모습을 보면 진심으로 웃음이 난다.

KakaoTalk_20250810_231832270_01.jpg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라며 가져온 아이. 정말 지독하게도 말썽꾸러기지만 얼굴과 마음은 너무 예쁘다.


노인들의 불편한 몸과 건강을 위해 운동을 지도하다 보면, 의사소통이 쉽지 않고 몸이 따라주지 않아 노인의 눈높이에 맞는 설명과 동작을 만드는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분들은 내가 밥은 잘 챙겨 먹는지, 더위에 힘들진 않은지 늘 걱정해 준다. 한 번은 며느리가 손녀와 함께 삼계탕을 포장해 와 같이 먹는데 내 생각이 났다며, 당신 몫의 삼계탕을 따로 챙겨 주신 적도 있었다. 이때는 웃음이 아닌 이 노인의 마음에 눈물 나게 감사하더라.

KakaoTalk_20250810_231832270.jpg 이날 같이 밥을 먹었는데 할머니 본인은 거의 안 드시고 내게 삼계탕을 다 덜어 주셨더라.

조그만 녀석들이 타인을 배려하고, 기꺼이 나누는 모습. 젊은 시절 고생하며 쌓아온 신념과 경험을 간직한 채, 병들고 나약해진 몸을 젊은이에게 의지하면서도 젊은이들을 걱정하는 노인의 모습. 이러한 순간들이 안쓰러움과 흐뭇함으로 뒤섞이며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오늘의 일기를 쓰기 앞서 나를 웃게 만든 순간을 적기 위해 지나간 웃음을 떠올리려 했을 땐 잘 떠오르지 않았지만, 이렇게 수면 아래로 잠긴 기억을 다시금 떠올려 기록으로 남기니 그때의 감정이 다시 벅차오른다. 글은 그 감정과 생각을 느낀 당시에 바로 적는 게 가장 좋겠지만, 이렇게 시간이 지난 뒤 곱씹는 것도 참 좋은 듯하다.


살면서 무수히 많은 경험과 감정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 자체보다 기록을 통해 기억을 정리하는 글쓰기 행위가 스스로에게 큰 선물이자 공부라고 느끼며 오늘날 내게 감사하고 웃을 일이 더 많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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