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형태로 쓰기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에 답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왔다. 자각하지 못하던 내 생각을 끌어내며 스스로를 깊이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질문보다는 하루와 감정을 되짚어보며, 말 그대로 일기 형태로 다시 써보려 한다.
토요일, 지나버린 MJ의 생일을 기념해 송도 현대아울렛에서 만나 저녁을 먹었다. 늘 그렇듯 우리는 텍사스 로드하우스에 들러 스테이크와 사이드 메뉴를 주문했다. 식사 중 자연스럽게 다음 여행 이야기가 나왔다.
작년 1월 함께 유럽을 다녀온 뒤로 해외여행은 없었다. 정확히는 내가 계속 미뤄왔다. MJ는 IHG 앰버서더라 같이 여행을 가면 라운지 이용, 객실 업그레이드, 레이트 체크아웃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늘 인터컨티넨탈 같은 럭셔리 브랜드 호텔을 원하고, 비행기도 비즈니스석을 고집한다. 내게는 이코노미도 벅찬 상황이기에 그 요구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내 사정을 잘 아는 MJ가 계속 여행을 제안하는 게 못마땅했다. 그래서 물었다.
“형은 왜 나랑 그렇게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거야? 내 사정 알잖아.”
MJ는 짧게 대답했다. “그냥.”
그 순간 화가 치밀었다. ‘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그는 대부분의 경비를 부담할 생각이었다는 것을.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내 상황을 알기에, 잠시라도 숨을 돌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꺼낸 제안이었다는 것도. 그럼에도 나는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모든 걸 MJ에게 내맡기고 싶지도 않았고, 최소한 밥 한 끼는 사고 싶었지만 지금 내 형편에선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MJ는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MJ는 20대까지 호주에서 꽤나 실력 있는 골프 프로 생활을 하다. 부상으로 프로 생활을 접고 지금은 반백수로 생활하고 있다. 그는 골프를 사랑하면서도 그만두고 싶어 하는 골프와 애증의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다.
프로였던 MJ는 자연스럽게 주변에 골프 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 사람들과 번번이 라운딩과 스크린을 간다.
그런 그는 올해까지만 하고 골프를 접는다는 마음으로 연습장을 가는데 최근에는 오히려 힘을 빼고 대충 치니 비로소 공이 제대로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죽어라 매달려야만 되는 게 아니고, 때로는 힘을 빼야 길이 보인다는 말이었다.
또 그는 광주에서 골프를 치며 알게 된 형님의 사례를 얘기했다. 그 사람은 싸게 들여온 물건을 터무니없이 비싸게 팔아 큰돈을 벌었다. 정직한 방식은 아니었지만, 이 이야기의 포인트는 ‘어떻게 버느냐’보다 ‘버는 것 자체’에 있었다. MJ는 골프와 돈을 연결해 말했다. 죽어라 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방향을 바꿔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 조용히 덧붙였다.
“너무 돈에 전전긍긍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어.”
그의 말을 들으며 많은 걸 느꼈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모두 내가 좋아서 한다고 여겼다. 분명 나는 내 직업을 사랑하고 즐겁게 일을 하지만, 사실은 가족의 생계와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야, 무너진 가세를 다시 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 편히 쉴 틈조차 주지 않은 채 일과 돈에 매달리며 살아왔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나는 그걸 내 능력 부족, 노력 부족 때문이라고 여겼다. 머리로는 “새옹지마”를 떠올리면서도, 마음은 매일같이 조급했고 숨이 막혔다.
몇몇 사람들은 “돈 버는 건 의외로 쉽다”라고 말한다. 지금의 나는 쉽게 공감할 수 없지만, 한 발 물러서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죽어라 노력했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애써도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더라. 실패한 사람도, 성공한 사람도 똑같이 노력했을 것이다. 차이는 어쩌면 운과 방향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나를 이토록 몰아세웠을까. 내가 쉰다고 해서 당장 집안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마치 가족의 인생까지 짊어져야 한다는 듯 스스로를 조여왔다. 사실 나는 아직 내 삶 하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인데 말이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도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무너진 가세를 먼저 세워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순서가 틀렸다. 나부터 바로 서야 한다. 그래야 남도, 가족도 지킬 수 있다.
현실에 짓눌려 목을 조이는 날이 많겠지만, 좁은 사고의 갇혀 스스로를 우물에 가둬 나를 잃지 말자. 지금 당장엔 돈이 되는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어긋나 있겠지만, 세상은 돈이 아니라 결국 기분으로 살아가는 것일 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