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봉
아들의 중간고사가 끝난 덕에 속초로 가족 여행을 떠난다. 저녁을 먹고 루프탑 풀장으로 향한다. 왼쪽 저편에 청초호가 펼쳐지고, 오른쪽 저편에 속초 바다가 넘실댄다. 바다 저편 등대에서 초록빛이 깜빡인다. 나도 손을 내밀어 그 초록빛을 움켜쥔다. 개츠비는 바다 건너편의 초록빛을 왜 움켜쥐려 했을까?
개츠비에게 초록빛은 단순한 불빛이 아니라 그의 인생 전체를 지탱하는 신기루 같은 꿈이었기 때문일까? 그 초록빛은 데이지였겠지. 개츠비에게 데이지는 잃어버린 사랑이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찰나였다. 그 초록빛을 움켜쥠으로써,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통해 자기 자신을 구원하려 했다. 가난했던 제임스 게츠에서 벗어나, 새로 창조한 ‘개츠비’라는 인물이 완성되려면, 그 초록빛이 반드시 그의 손안에 들어와야 했던 것이다.
초록빛은 또한 성공과 부, 신분 상승을 상징했다. 그 빛은 손에 닿지 않지만, 그것을 움켜쥘 수 있다면, 개츠비는 더 이상 웨스트 에그의 신흥 부자가 아니라, 이스트 에그의 영원한 주인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상상했다.
결국 개츠비가 초록빛을 움켜쥐려 한 것은 사랑을 되찾고, 자신을 구원하며, 꿈을 현실로 바꾸려는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그 불빛은 언제나 바다 건너편, 그의 손아귀가 닿지 않는 곳에서 영원히 반짝이고 있었다. 개츠비는 손에 닿을 듯 다가오는 꿈이 사실은 결코 붙잡을 수 없는 허상임을 끝내 깨닫지 못했다.
초록빛
밤마다 개츠비는
바다 끝에 매달린 초록빛을 향해
손을 뻗었네
그 빛 속에는
잃어버린 사랑이 있었고
가난을 지우는 구원이 있었지
빛은 늘 가까워 보였으나
손끝에 닿을 때마다
멀어져 가는 신기루
개츠비는 끝내 움켜쥘 수 없었으나
초록빛을 향해 내민 손길 속에
삶 전체가,
꿈 전체가 타올랐네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데이지를 통해 완성될 자기 운명을 사랑했다. 그에게 그녀는 한 개인이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 계급 상승, 자기 구원의 모든 상징이었다. 그러니 그 사랑은 이미 무겁고 파괴적인 신화가 돼버렸다.
데이지가 이미 다른 세계인, 이스트 에그에 속하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개츠비는 과거를 되돌릴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불가능한 믿음을 놓지 못한 탓에 그의 사랑은 그를 지켜주지 못하고, 끝내 개츠비를 죽음으로 몰아간 운명의 덫이 되었다.
만약 개츠비가 데이지를 사랑하되, 그녀를 하나의 인간으로만 바라보았다면, 개츠비의 삶은 비극이 아닐 수도 있었을까? 그러나 개츠비는 사랑을 넘어 자기 존재의 신화를 데이지에게 걸어버렸기에, 사랑은 곧 비극으로 변했다.
나는 개츠비를 생각할 때마다, ‘쇼생크 탈출’의 듀프레인을 소환한다. 두 인물은 서로 다른 이야기 속에 존재하지만, 놀랍게도 깊은 곳에서 닮은 영혼을 지니고 있다.
개츠비는 데이지와의 과거를 되돌릴 수 있다고 믿었고, 끝내 손에 닿지 않는 꿈을 향해 살아간다. 듀프레인은 절망의 감옥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수십 년 동안 벽을 깎아 자유의 길을 만들어 낸다. 둘 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을 끝내 믿었다는 점에서 닮았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통해 자기를 구원하려 했다. 듀프레인은 탈출을 통해 자유로운 자기 자신을 되찾으려 했다. 부당한 감옥살이를 끝내고, 바다와 햇볕 아래에서 진정한 삶을 되찾으려 했다. 둘 다 결국 사랑이든 자유든, 자기 존재를 다시 쓰려는 몸부림이었다.
개츠비의 신화는 총성과 함께 붕괴한다. 그는 꿈을 붙들려다 허상에 휩싸여 죽음을 맞이한다. 듀프레인의 신화는 자유의 바다 위에서 실현된다. 그는 끝내 희망을 현실로 바꾸며 살아남는다. 같은 믿음과 집착이 한쪽에서는 비극, 다른 쪽에서는 해방이 된 셈이다.
빛과 바다
어둠 속에서
개츠비는 초록빛을 움켜쥐며
사라진 시간을
그 빛 속에 되살리네
돌벽 속에서
듀프레인은 바위를 깎네
끝없는 감옥의 밤을 넘어
푸른 바다의 새벽을 기다리네
한 사람은
빛을 향해 쓰러지고
한 사람은
바다로 걸어가네
개츠비와 듀프레인
눈동자에 머문 것은
끝내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