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강사
지혜를 이어 옮기는 문장을 전달하는 선배의 카톡이 열린다. 오늘의 경구는 친구에 관한 것이다. “세 부류의 친구가 있다. 하나는 음식과 같아 매일 필요하고, 하나는 약과 같아 가끔 필요하며, 하나는 질병과 같아 항상 피해 다녀야 한다.”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가 떠오른다. 유오성에게 음식 같은 친구는 누구일까? 유오성에게 장동건은 매일 필요하지만, 쉽게 삼켜지지 않는 밥이다. 어릴 적부터 함께 컸고, 싸우고, 웃으며, 서로의 밥심으로 살아온 사이다. 그러나 밥은 뜨거울 때와 식을 때가 다른 맛을 내듯, 그들의 우정도 세월과 욕망 속에서 식어가며 결국에는 서로의 목을 겨누는 비극으로 뒤집힌다.
장동건의 마음속에는 두 개의 불이 타고 있다. 하나는 존경의 불, ‘유오성처럼 되고 싶다’는 열망의 불이고, 다른 하나는 질투의 불, ‘나는 왜 유오성만큼 될 수 없나’하는 열등의 불이다.
이 두 불이 함께 타오르며, 장동건을 광기로 몰아넣는다. 유오성의 카리스마, 그 거칠고도 인간적인 향수는 장동건의 삶을 흔들었고, 그는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해 ‘유오성을 죽여야 한다’는 착각에 빠진다.
장동건이 유오성을 죽이려 한건 단지 경쟁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그 우정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너무 뜨겁고, 너무 깊어서, 결국 파멸로밖에 식힐 수 없는 우정이 돼버렸다.
장동건에게 유오성은 넘을 수 없는 거울이고, 유오성에게 장동건은 떼어낼 수 없는 밥이자 상처다. 그들의 우정은 한쪽이 살아 있는 동안, 결코 공존할 수 없는 운명이다.
존경과 질투
먼지 낀 골목을 함께 달리던 날들
햇살은 늘 너의 어깨에
먼저 내려앉는다
나는 그 빛을 따라 걷는 그림자
너의 웃음 뒤에서
세상을 배우고
너의 침묵 속에서
두려움을 삼킨다
어느 날
존경의 끝에서 피어난
질투의 꽃 한 송이
그날 이후 우리의 우정은
따뜻한 밥처럼 향기롭다가
씹을수록 입안이 쓰기만 하네
나는 너를
미워하지 못하네
질투 속에도
사랑이 스며 있기에
이제야 알았네
존경과 질투는
같은 뿌리를 가진 나무
하나의 햇살 아래 자라나
서로를 향해 가지를 뻗다
끝내 엉켜버리는 운명임을
유오성의 눈으로 보면, 서태화는 거친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약 같은 친구다. 쓴맛이 나지만, 마음의 열을 내려주는 존재. 서태화는 공부 잘하고, 조용하며, 늘 정상적인 길을 걷는 친구다. 유오성의 세계, 주먹, 의리, 생존, 폭력, 그것과는 다른 질서 속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유오성은 그를 보며 한편으론 부담을 느낀다. 그 간극이 부끄러움이자, 동시에 동경이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서태화는 유오성에게 쓴 약처럼 필요하다. 가끔 찾아와 “괜찮나?”하고 묻는 그 한마디가, 세상의 냉기에 절은 유오성의 마음을 잠시나마 데워준다.
유오성은 마음 한구석에 ‘내가 공부만 좀 했으면’하는 미련이 있다. 서태화는 그 미련의 얼굴을 하고 찾아오는 친구다. 그래서 그를 보면 가슴이 쓰리고, 그 쓰라림이 곧 인생의 해열제가 되었던 것이다.
가지 않은 길
너는 내게 약 같은 친구네
한 모금의 쓴 향기로
내 안의 불을 식혀주는
멀고도 잔잔한 위로
내 걸음은
먼지 속을 헤매고
너의 발자국은
햇살 위에 닿는다
나는 늘 너의 뒷모습을 보며
묻지 못한 질문을 품는다
저 길 끝엔 어떤 바람이 부는가?
너는 다만 미소로 답하네
말보다 깊은 온기로
세상엔 아직 다른 길이
있음을 알려주며
가끔 너의 생각이 스치면
가슴의 열이 잠잠해지네
그건 약의 효능이 아니라
내가 가지 않은 길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었을지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너를 향해 조용히
고개 숙인다
쓴맛으로 나를 살린
가지 않은 길 위의 친구
너에게
정운택은 유오성에게 질병 같은 친구일까? 정운택은 어릴 적부터 늘 곁에 있었다. 함께 욕하고, 싸우며, 피 흘리고, 세상과 맞짱 뜨는 법을 배운 친구. 하지만 그 안에는 늘 유오성이 외면하고 싶었던 자신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즉흥적이고, 폭력적이며, 불안에 휘둘리는 성정. 그건 유오성의 본능이었지만, 동시에 그가 가장 두려웠던 부분이었다.
그래서 정운택은 늘 유오성의 곁에 있으면서도 그의 영혼을 병들게 한다. 그는 끊어내야 할 과거였고, 놓아버리지 못한 충성의 그림자였다. 병은 몸을 해치지만, 몸이 살아 있음을 가장 분명하게 느끼게 한다. 정운택은 그런 존재다.
정운택이 곁에 있어야 유오성은 자신이 여전히 거리의 사내임을, 의리의 인간임을 느낀다. 그러나 그 병은 끝내 유오성을 무너뜨린다. 유오성의 의리와 자존심을 먹어 치우며, 그를 피의 운명으로 이끈다.
질병이라는 이름의 우정
그는 내 안이 열이었네
젊은 날의 피 속에서 잠든 불씨
지워도 남고
멀어져도 돌아오는 그림자
우린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먼지를 뒤집어쓰며 자라네
그의 웃음은 상처의 냄새를 품고,
그의 눈빛엔 어딘가 아픈 충성이 있네
나는 그를 멀리하려 하나
그리움이 다시 나를 데려가네
몸이 열을 앓듯
마음은 그리움으로 앓네
그는 나를 병들게 하지만
그 병이 있어 나는 살아 있네
의리라는 이름으로
이제야 알았네
우정이란 때로
낫지 않는 병이 되어
가슴 한구석에서
조용히 열을 내리는 것임을
우리는 음식 같은 친구나 약 같은 친구를 바란다. 음식 같은 친구는 매일의 안식이다. 함께 밥을 나누고, 말없이 곁을 지키며, 존재만으로도 허기를 달래주는 사람. 그런 친구는 특별한 위로나 교훈보다, 그저 존재 자체로 위로가 된다. 지친 하루 끝에 따뜻한 국 한 모금처럼, 그의 말 한마디, 웃음 한 번이 삶을 다시 살아보게 만든다.
약 같은 친구는 쓴맛으로 우리를 맑게 하는 사람이다. 가끔 찾아와서 진실을 말하고, 눈을 뜨게 하며, 내가 어디서 길을 잘못 들었는지 조용히 알려주는 존재. 그의 말은 아프지만, 그 아픔이 지나가면 마음이 투명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젠가 그 약 같은 친구의 쓴맛을 ‘고마움’이라 부르게 된다.
그러나 병 같은 친구는 본능적으로 멀리하려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병 같은 친구에게서 우리는 우리의 진짜 얼굴을 배운다. 욕망, 질투, 불안 같은 살아 있다는 감각.
결국 우리는 음식과 약을 원하지만, 인생은 어쩔 수 없이 병 같은 인연을 품은 채로 살아가야 한다. 그 병이 아플수록, 음식의 따뜻함이, 약의 쓴 향이 더 깊게 느껴진다. 우리는 밥 같은 친구로 살아가길 바라지만, 결국 우리를 완성시키는 건 병처럼 남은 그리움과 상처다.
나는 어떤 부류의 친구일까? 10여 년 동안 매주 토요일 아침에 산행을 같이 했던 선배는 나에게 말한다. “후배는 바위산 같은 친구네!” 순간 나는 놀란다. 나는 쉽게 흔들리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일까?
바위산
그는 바람 속에서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
비가 스쳐가도
계절이 바뀌어도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는 이
그는 말없이 세월을 견디며
수많은 발자국을 품는다
누군가는 그를 믿고
누군가는 오르다 돌아가네
그는 그 모든 흔적을
품은 채
고요히 하늘을 우러르네
그의 그 단단함 안에는
언제나 한 줄기
외로움이 흐르네
그는 무너지지 않네
외로움을 품을 줄 아는 돌
세월의 바람에 침묵으로 지키는
그 이름
바위산
30여 년 동안 내 곁을 변함없이 지켜준 친구는 아내가 유일하다. 과연 아내는 나를 어떤 친구라고 생각할까? 이건 단순히 인간관계의 부류가 아니라, 내가 세상과 맺고 있는 정서의 무늬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내가 깊이 듣는 사람이며, 조용히 곁에 머물며 말보다는 이해로 덮어주면, 나는 음식 같은 친구일 것이다. 그녀는 내 곁에서 자기의 언어가 부드러워지는 걸 느낀다. 마치 따뜻한 국물에 딱딱한 마음이 풀려나듯이. 그래서 나를 떠올리면 그저 안도감이 먼저 온다.
한편, 내 말이 언제나 부드럽지만, 단단한 중심을 가지면, 나와 대화한 뒤에는 그녀가 조금은 자기를 돌아보게 된다. 내 말이 마음을 찔렀지만, 왠지 그게 맞을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약 같은 친구로 느낄 것이다. 이건 사랑보다 어렵고 미움보다 오래가는 관계다.
어떨 때는 내 존재가 그녀에게 너무 강렬해서, 그녀의 내면을 흔들어버린다. 그녀는 내 언어에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나는 어떤 친구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병이 되기보다는 약이 되어가길 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