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골라잡기

창작 편집

최인훈의 ‘광장’에서 명준은 개인의 공간인 밀실과 공적인 가치가 존재하는 광장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다. “인간은 그 자신의 밀실에서만은 살 수 없어요. 그는 광장과 이어져 있어요.” 그리고 남한에서의 밀실과 광장에 대해서 평가한다. “남한이란, 실존하지 않는 사람들의 광장 아닌 광장이었다. 그곳에는, 타락할 수 있는 자유와, 게으를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명준은 1949년 5월 월북한 아버지로 인해서 두 번 경찰서에 소환되어 고초를 겪는다. 그해 7월에 인천에서 월북한다. 명준은 북한의 광장에 대해서 비판한다. “광장에는 플래카드와 구호가 있을 뿐, 피 묻은 셔츠와 울부짖는 외침은 없다. 따분한 매스 게임에 파묻힌 운동장.” 명준이 처음 머물렀던 남한에는 개인의 자유는 있었지만, 공적인 광장과는 연결되지 않았다. 월북을 택하며 기대를 품었던 북한에는 밀실은 존재하지 않았다.

명준은 6.25 전쟁 포로가 되어 종전되자, 송환 등록이 시작된다. 그는 오직 중립국만을 반복해서 외친다. 명준은 석방 포로를 실은 인도 배 타고르호에서, 자신이 중립국을 선택한 이유를 토로한다. “모르는 나라, 아무도 자기를 알 리 없는 먼 나라로 가서, 전혀 새사람이 되기 위해 이 배를 탔다. 사람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 성격까지도 마음대로 골라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성격은 타자라는 거울을 통해 강화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주변의 시선에 민감해서, 개인의 성격이 주변의 평가라는 틀에 갇히기 쉽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이러한 평판의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다. 그렇다 할 지라도, 과연 명준이 말한 것처럼, 낯선 땅에 가면 자기 성격까지도 마음대로 골라잡는 것이 가능할까?

내 어림으로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면, 평소 부끄러워 꺼내지 못했던 대담함이나 우리 사회에서는 감춰두었던 잠재 파편을 마음껏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완벽하게 새로운 성격을 골라잡기보다는 발현된 적이 없는 내면 조각이 표출되면서 자아가 확장될 것이다.

나는 낯선 땅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람에 의해서 둘러싸인 경험이 있는지 회고해 본다. 나는 20여 년 전에 홀로 이탈리아 패키지여행을 떠났다. 이 패키지여행의 묘미는 나를 아는 사람은 없지만, 나를 봐주는 사람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밀라노에 도착해서 25명이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그중에서 나의 과거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나만이 홀로 여행을 와서, 가이드는 나를 특별히 신경 써 주었다.

자아를 재구성하려면 선택과 책임의 과정이 필수적인데, 패키지여행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여행사에서 대행한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고민인 ‘어디로 갈지’와 ‘무엇을 먹을지’가 이미 결정되어 있어, 수동적으로 정해진 궤도 위를 달리는 기분이 든다.

그래도 나는 이 패키지여행을 통해서 나를 낯설게 했던 경험을 맛볼 수 있었다. 평소 우리 사회에서 나를 규정했던 사회적 맥락을 제거하고, 이탈리아라는 낯선 나라에서 나라는 알맹이만을 접하게 됐다. 그때 처음 본 사람들과 대화하며, 스스로를 관찰했다. 패키지여행 일행들과 섞여 있지만, 동시에 그들을 관찰해야만 하는 이방인의 위치에 섰다.

명준은 남한을 개인은 존재하지만, 공동체의 뜨거운 이상이 없는 메마른 곳으로 느낀다. 북한에서 본 광장은 자발적인 혁명의 열기가 아니라, 당의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죽은 공간이다. 어쩌면, 명준은 중립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남한이나 북한과는 낯선 곳을 갈구하며, 자신을 낯설게 하지 않았을까?

광장: 최인훈 지음/문학과지성사/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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