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과 아파트

일타강사

라면과 아파트는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통일된 무언가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는 단순한 식습관과 주거 선택의 문제를 뛰어넘어, 표준화된 한국형 욕망 구조를 대표하는 산물이다. 둘 다 대중적 실용성을 지닌 B급 문화에서 출발해서 이제는 한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라면과 아파트는 한국형 도시화가 만든 생존의 즉시성과 삶의 구조화를 대표하는 두 축을 이루고 있다. 라면은 도시의 속도 경쟁에서 끓어낸 국물 음식이고, 아파트는 도시의 밀림 속에서 쌓아 올린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둘 다 도시의 질서와 개인의 불안을 동시에 수용하는 한국형 생활양식의 알레고리다.


나는 요즘 대략 일주일에 2번 정도 라면을 먹는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100개 정도의 라면을 먹는 셈이다. 한국인의 평균이 연간 80개이니, 평균보다는 살짝 더 먹고 있다.

내가 라면에 열광하게 된 시기는 대학에 입학해서다. 나는 상경해서 대학 인근의 하숙집에서 지냈다. 당시 하숙집 국룰은 아침과 저녁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때 어머니가 주시는 용돈은 일주일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선배들은 그런 나를 보면서, 주옥과 같은 충고를 해주었다. “용돈을 받으면, 한 달 동안 생존하기 위해서는, 바로 라면 1박스를 확보해라.”

나는 그 충고에 따라 어머니가 주신 용돈으로 제일 먼저 안성탕면 1박스를 사서, 내 방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꼬불쳐 두었다. 라면은 나에게는 서울살이의 초고효율 음식이었다.

하루는 동문 선배가 우리 신입생들을 불러 모았다. 그 형은 한턱을 내기 위해서 우리들을 부대찌개 식당으로 데려갔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대찌개를 먹었다. 라면 사리와 함께 먹는 부대찌개 국물 맛은 최고의 별미였다.

쉼 없이 햄, 소시지, 밥을 입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그가 나에게 묻는다. “부대찌개에서 부대는 무슨 뜻일까?” 나는 대답한다. “혹시, 무언가 부수적으로 딸려 있는 것 아닌가요?” 그가 웃으며 이야기한다. “부대찌개는 예전에 미군 부대의 잔반으로 끓였던 거야?” 나는 바로 부정한다. “설마요.” 나에게 부대찌개는 한동안 소울푸드였다. 당시에는 무언가 축하할 일이 있을 때면, 친구들과 부대찌개를 먹었다.


우리 사회에서 라면의 사회적인 평판은 어느 위치에 있었을까? 1980년대까지만 해도 라면은 서민들의 애환과 생존의 정서를 담아내는 대표적인 상징이었다.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임춘애는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는 여자 육상계에서 3개의 금메달을 땄다. 그는 인터뷰에서 “하루에 세끼 라면 먹으며 훈련했다.”는 인터뷰를 남겼다. 이 인터뷰는 신문 기사와 방송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며, 우리 국민들을 눈물짓게 했다.

그는 국민적 애잔함, 국가대표의 헌신, 먹먹한 애국심을 자극하며, 가난을 딛고 일군 금메달리스트로 우뚝 섰다. 방송에서는 어머니와 함께 라면을 끓이는 장면, 힘들게 훈련하는 모습, 우승 후 울먹이는 얼굴을 반복적으로 송출했다. 그는 근면, 성실, 희생의 아이콘이 됐다. 이후 라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결핍을 견디는 사람들의 고단한 정서를 상징하는 생활의 은유가 됐다.


이 당시까지는 삼양라면이 업계를 완전히 평정했지만, 1989년 우지 파동 한방으로 삼양라면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삼양라면은 “기술적으로 잘못이 없다”라고 해명했지만, 감정적으로 이미 돌아선 소비자의 맘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삼양은 위험한 기업으로 전락했다.

이 사태를 계기로 농심은 라면의 제국을 구축했다. 그들은 “식물성 기름을 사용, 안전한 라면”을 강조하며, 신라면을 홍보했다. 신라면은 한국 라면의 대명사 위치를 차지했다. 1990년대부터는 드라마, 소설 등에서 라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함께 끓여 먹으며, 감정을 공유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는 구승준이 서단을 좋아하게 되면서, 그녀의 감정 상태를 떠보기 위해서,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멘트를 날린다. 하지만 그녀는 한국적인 문화 코드를 알지 못해서, “라면을 왜 먹어요?”라고 답변한다. “라면 먹고 갈래요?”를 노골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밤을 함께 지새울까요?” 정도일 터인 데. “라면 먹고 갈래요?”는 애교가 넘치지만, “밤을 함께 지새울까요?”는 살짝 구리다.

가령, 가벼운 분위기에서 “라면 먹고 갈래요?” 물어보면, 질문을 받는 당사자는 부담 없이 “오늘은 조금 바쁜데요” 정도로 거절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밤을 함께 지새울까요?”는 즐겁게 날리기가 어렵다. 결국 느끼하게 질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답변을 해야 되는 쪽도 어색하기만 하다.


한편, 영화 ‘기생충’에는 채끝 짜파구리가 등장한다. 짜파구리는 가난한 자취생이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혼합하여 끓여 먹기 시작했다. 소위 B급 레시피였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서민의 생존 음식과 최고급 채끝 스테이크를 결합한 것이다.

과연 봉준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이선균 조여정 부부는 라면을 먹지만, 라면처럼 살지 않는다.” 아니면, “진정한 부자는 B급의 맥락조차도 장식으로 소비할 수 있다.”를 이야기하려 했나? B급 짜파구리에 A급 채끝 스테이크를 얹은 혼종의 문화적 아이러니는 기호 소비의 계급적 위선을 드러낸다.


라면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웬만한 한식과는 잘 어울린다. 특히, 매운맛과 감칠맛의 대명사 김치와는 천생연분이다. 또한 라면은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지만, 국, 찌개, 탕을 중시하는 우리의 국물 문화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따라서 라면은 밥 대신 먹어도, 밥과 같이 먹어도 언제나 맛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말보다 즐겨 쓰는 단어는 ‘식구’이다. 아마도 국물을 같이 떠먹는 습관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식구는 국물뿐만 아니라 정서도 공유하는 내 편을 뜻한다. 그래서 우리는 잔칫날이나 명절에는 가장 좋아하는 소고기 국물을 식구들과 나누어 먹었다. 한국의 라면 수프는 이러한 로망을 반영하여 소고기 육수를 기본으로 하면서, 매운맛을 첨가한 빨간색을 띠고 있다.


2010년대에 이러한 매콤한 빨간 맛 라면을 뒤흔든 도전자가 등장한다. 바로 이경규의 ‘꼬꼬면이다. 백색 닭육수를 베이스로 한 ‘꼬꼬면’은 당시에는 패러다임을 흔든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안타깝게도 과도한 미투 경쟁으로 한국인의 혀는 다시 매콤한 빨간 라면의 품으로 돌아갔다.

반면에, 불닭볶음면은 한국을 뛰어넘어 세계적 미각의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극단적인 매운맛을 도전하는 음식으로 콘텐츠 화하며, 10~30대를 중심으로 해방감을 자극하고 있다. 나는 이미 쌍팔년도 아저씨가 돼버려서 그런지, 도저히 불닭볶음면을 견딜 수 없었다. 즉, 매운맛의 고통을 참아내지 못한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사는 20대 조카는 한국에 귀국할 때마다 불닭볶음면을 즐긴다. 그를 보면서 불닭볶음면은 10대~30대 세대에서 단순한 매운 라면을 넘어서, 이미 열정의 서브컬처를 형성했음을 알게 된다. 유튜브에서 불닭볶음면 챌린지를 보면, 그들은 먹기보다는 서로 촬영하여 밈화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

나는 라면이 B급 문화에서 출발해서 한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콘텐츠로 자리 잡은 지금의 상황이 신기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라면은 한국의 근대화가 입안으로 들어온 풍경이자, 속도의 시대가 만든 가장 맛있는 소울푸드가 되었다. 라면은 일본에서 들여왔지만, 창조적으로 변용하여 한국 고유의 문화로 탈바꿈한 대표적인 음식이다. 이는 단순한 수용이 아니라 문화적 재창조의 결과인 것이다.


영화 ‘친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선생님이 장동건에게 “아버지 뭐 하시노?”라고 묻는 대사를 주저 없이 선택할 것이다. 그가 장동건에서 이 질문을 한 이유는, 아마도 장동건의 사회적 계급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 질문은 1980년대까지는 사회적 위상을 스캐닝하기에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계층적 구조는 그전에 비해서 훨씬 더 복잡해졌다. 따라서 지금은 “아버지 뭐 하시노?”라고 묻지 않는다.

과연 지금은 사회적 계급을 알아내기 위해서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그 답은 “너 어디 사니?”이다. 그리고 더 노골적으로는 “너 어느 아파트에 살아?”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파트의 평당 가격이 자산의 바로미터이고, 경제적 신분이다. 결국 과거 “아버지 뭐 하시노?”보다 “너 어디 사니?”가 훨씬 더 정교하고 치명적인 사회적 질문이다.

아파트는 1970년대부터 도시에 인구가 폭증하면서 대량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서 정책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경제적 계급의 지표가 돼버렸다. 결국 한국에서는 사는 곳이 사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아파트가 막 보급되기 시작할 1980년대 초반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라는 새로운 삶의 공간을 갈망하는 시대적 정서를 깊게 깔고 있는 노래가 있다. 바로 윤수일의 ‘아파트’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로 시작하는 이 노래에서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는 ‘강북에서 강남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단칸방에서 아파트로’를 부르짖고 있다. 또한 “갈대숲”은 한강 변의 아직 도시화되지 않은 경계 지역을 가리킨다. “바람”은 불안과 기대의 메타포다.

이후 ‘아파트’는 야구장이나 대학 축제에서 널리 응원곡으로 활용됐다. ‘아파트’의 가사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에서 외로움을 노래하고 있지만, 멜로디가 흥겨워서 그런지, 가사와 상관없이 집단적 흥을 유도했다. ‘아파트’의 가사는 묻히고, 리듬은 떠올라, 정서는 휘발되고, 흥만 남는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2024년 전 세계적으로 히트 친 로제의 ‘아파트’는 한국 사회가 아파트를 사랑하는 방식이 어떻게 질적으로 변화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윤수일의 ‘아파트’가 도시적 외로움 속 욕망의 공간이라면, 로제의 ‘아파트’는 이미 사랑의 공간이 되어버린 도시적 정서 그 자체다. 윤수일에게 ‘아파트’는 간절함과 공허함의 상징인 반면에, 로제에게 ‘아파트’는 일상성과 로맨스가 중첩된 감정의 무대인 것이다.

586세대에게 아파트에 대한 감정은 신분 상승의 대상이지만, MZ세대에게 아파트는 정서적 리얼리즘이다. 그래서 MZ세대들은 아파트 게임을 즐긴다. MZ세대에게 아파트는 공감되는 공간이며, 사랑이 벌어지는 배경인 것이다. 로제는 “Sleep tomorrow, but tonight go crazy”를 외친다.


라면과 아파트는 둘 다 한국 산업화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이 둘 자체는 한국형 산업화가 어떻게 국민의 식생활과 주거 방식을 표준화하고 제도화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강력한 증거물이다. 라면과 아파트는 산업화가 한국인에게 남긴 가장 일상적인 문명이자, 근대화의 감정 구조를 담은 문화의 코드이다.

라면은 시간을 돈처럼 아껴야 했던 시대의 음식이었다. 라면은 산업화된 고독을 끓여낸 즉석의 국물이다. 아파트는 산업화가 만든 콘크리트 계급 피라미드의 기본 유니트다. 라면과 아파트는 사회 시스템 안에 개인의 삶을 끼워 맞추는 구조물이다. 라면과 아파트의 기괴함을 노래한다.


라면과 아파트


라면은

산업화가 끓여낸 시간,


아파트는

산업화가 쌓아 올린 공간.


우리는

라면 국물 안에서 외로움을 녹이고,

아파트 벽 안에서 서열을 정리한다.


라면과 아파트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불현듯 1994년 성수대교 붕괴와 1995년 삼풍 백화점 와해가 떠오른다. 성수대교 붕괴는 그 자체로 철근이 뒤틀리고, 콘크리트가 부서져 강물 위에 무기력하게 내려앉은 사건이었지만, 그 파편은 물리적 구조물 너머로 번져, 한국 사회라는 구조 자체를 흔드는 균열이었다.

그때까지 우리 사회는 콘크리트로 나라를 세우고 있었다. 도로, 교량, 아파트 등, 속도와 효율, 개발과 성장, 그것이 곧 성장이라 믿었다. 하지만 성수대교가 무너지자,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토록 믿고 의지하던 것들이 정말 튼튼한 건가요?”

콘크리트는 강인해 보이지만 그 안의 철근이 부식되면 속절없이 무너져 버린다. 그건 마치 절차는 갖췄지만, 성찰 없는 행정, 법은 만들었지만, 책임지지 않는 사회와 닮았다. 성수대교는 외관의 단단함이 진실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처절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1960~80년대를 지배했던 ‘건설 국가’의 신화는 삽과 콘크리트가 기적을 일군다는 믿음 위에 세워졌다. 하지만 그 신화가 사람을 짓눌렀을 때, 우리들은 처음으로 개발 논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속도 경쟁을 했는가?”

우리들은 그날 이후, 다리를 건널 때마다 의심과 불안을 가슴 한켠에 품고 건넜다. 그건 구조물을 향한 감정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감각이 바뀌었다는 뜻이었다. 안전이란 말이 단지 물리적 보호를 넘어서 신뢰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걸, 우리는 그제야 알게 됐다.

그리하여 성수대교는 한국 사회의 콘크리트 근대가 맞이한 첫 균열이었고, 그 무너짐 속에서 우리는 물었다. “진짜 단단한 사회란 무엇인가?” 그 질문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속도에서 품질로 천천히 방향을 틀기 시작한 슬픈 출발점이었다.


1995년 와해된 삼풍 백화점은 또 한 번 한국 사회를 패닉으로 몰아넣었다. 삼풍 백화점이 마치 모래 위의 성처럼 와해됐을 때, 한국 사회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와해는 단순한 구조물의 몰락이 아니라, 당시 한국 사회의 탐욕, 방관, 침묵 등 그 모든 죄악이 콘크리트 잔해 속에서 한꺼번에 폭로된 순간이었다.

삼풍은 무너지기 전부터 이미 기울고 있었다. 설계 변경, 무리한 증축, 금이 간 기둥을 무시한 채 계속된 영업.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돈이면 뭐든 된다”는 탐욕의 건축 철학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 탐욕은 천천히 무너지는 기둥처럼 조용히 사람들의 생을 으스러뜨렸고, 마침내는 무수한 목숨을 잿더미 아래로 묻어버렸다.


백화점은 가장 안정해야 할 공간이어야만 했지만, 그 공간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을 때, 우리들은 절망 속에서 외쳤다. “아무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았다.” 그건 단지 건물의 와해가 아니라, 사회 계약의 붕괴였다. 국가는 우리들의 보호자가 아니라, 무관심한 방관자였다.

1990년 중반, 한국은 OECD 가입을 눈앞에 둔 ‘선진국 진입 직전’의 나라였다. 하지만 삼풍의 잔해 속에서 드러난 건, 겉만 번지르르한 시스템과 기초부터 썩어 있던 관리 구조였다. 선진국이란 고층 빌딩이 아니라, 생명을 대하는 태도라는 것을 삼풍은 너무도 비극적인 방식으로 가르쳐 줬다.

삼풍은 와해됐고, 그 무너짐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개발 시대의 마법을 끝장냈다. 이후 우리들은 ‘무조건 믿지 않는다’는 감각을 갖게 되었지만, 정부의 개혁은 늘 사후 약방문이었다. 눈물과 분노 위에 세워진 미봉책이었기에, 이후 세월호까지도 막아내지 못했다.


한국 사회는 참 오래도록 마음속에 무너진 다리 하나, 기울어진 건물 하나씩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무너졌던 성수대교, 와해되었던 삼풍 백화점, 그리고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세월호까지. 그것들은 단지 물리적 사고가 아니라 공동체의 신뢰가 붕괴된 상처였다. 그러니 치유란, 단순한 복구가 아니라, 다시 짓는 것만으로는 그 무너졌던 마음까지는 복원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너무 자주 “잊자” 또는 “앞으로 나아가자”는 말로 슬픔을 뒤로 감추었다. 하지만 상처는 묻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하고 껴안는 것만이 진짜 치유가 싹틀 수 있다. 기억하되, 그 기억을 책임과 변화로 이어가는 것, 그것이 첫걸음이다.

우리 사회는 빠르게 달리느라 너무 오랫동안 말하는 사람만 있었고, 경청하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도 진심으로 귀 기울이지 않았고, 억울한 사람은 외로이 울부짖지어 야만 했다. 이제는 다른 이의 상처에, 분노에, 눈물에 기꺼이 귀 기울일 때다.


이제는 묻고 싶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만 하는가?“, 사회가 GDP 숫자보다 중요한 것을 말하게 되고, 학교가 점수보다 인성을 키우게 될 때, 비로소 치유는 시작될 것이다.

눈물은 더 이상 약함이 아니라, 무너진 세계 속에서도 사람다움을 놓치지 않은 증거다. 그 눈물을 함께 흘릴 수 있는 사회, 서로의 슬픔에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사회라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러니 묻자. ”우리가 다시 지어야 할 건, 다리인가, 백화점인가, 아니면 사람 사이의 신뢰인가?“ 치유는 새로운 콘크리트를 붓는 것이 아니라, 그 콘크리트 안에 다시는 무관심과 탐욕이 스며들지 않도록 서로의 목소리와 눈물, 그리고 진심을 차곡차곡 쌓는 것이다. 그동안 겪었던 너무 많은 무너짐을 기억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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