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에서 벗어나기
지난 주말 영국드라마 "소년의 시간"을 보았다
소년의 시간을 지나온 남자와 결혼했고
소년의 시간을 보낼 두 아들을 키우고 있으며
수많은 소년들에 둘러싸여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드라마의 원제 "adolescence"는 "청소년기"인데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는 소년이 아닌 소년의 "시간"으로 번역되었다 아마도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이행하는 시기적 특성이 갖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리라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남녀에 상관없이 타인의 인정이 중요하다 특히 또래집단 내에서 인정받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곧 존재 이유가 된다
그렇기에 주인공 제이미를 "인셀"이라 명명한 행위, 혹은 집단적 분위기는 그들에게 신체적 살인에 버금가는 인격 살인과 다를 바 없었으리라
그리고 많은 소년들이 이 맥락에서 제이미를 지지하고 응원할 지도 모른다 철물점 알바생이 그런 것처럼...
우리나라 중고등 학생들도 혐오의 양극화가 문화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특히 "너 페미냐?"라는 남학생들의 공격은 소위 잘난(잘나가는) 여학생들을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자주 등장한다
"모쏠이냐"라는 말도 성적 매력이 없어보이는 사람을 놀리는 말로 일상적으로 쓰여왔다
그런데 인셀은 좀 차원이 다르다
비자발적 금욕주의자!
용어 자체가 역설적이다 금욕주의는 그 무엇보다 자발적인, 강인한 의지가 있어야 지키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자발성이 거세된 금욕주의라니!
그것은 자신은 욕망하는데 아무도 나를 욕망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내 의사와 무관하게 금욕주의자가 되어버렸다는 점에서 "모욕적"이다
너는 안돼!~어떻게 네가? 라는 시선을 받으며 내 욕망을 거부당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 존재를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조롱하는 것이며 의미를 박탈하는 것이다
게다가 SNS라는 공간은 사적인 동시에 공적이다
내용은 은밀하지만 공식적인 루트로 확대 재생산 된다는 점에서 공적인 성격을 보인다 그러니 갈등이 발생하면 돌이킬 수도, 의도를 설명할 길도 없다
인간은 존재의 의미가 거부당하면 공격한다
공격의 대상이 자신이 되면 자살이고, 타인이 되면 살인이 되는 것이 다를 뿐 극단적 공격성은 같다
청소년의 "시간"에 주목해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청소년의 시간은 감정의 통제가 원활하지 않다 뇌과학적인 지식을 나열하지 않더라도 20여년 간 지켜본 수많은 청소년들의 사례를 통해 순간적으로, 욱~하는 성향이 표출될 때가 많다는 걸 발견한다 아버지랑 말다툼을 하다 홧김에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폭발적 감정은 유독 청소년들에게서 발견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문제를 진단하고 분석하는 일련의 행위가 결국은 "해결"에 있는 게 아닌가
제이미의 가정은 평범했고 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았을 거라는 편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금슬 좋은 모습으로 모범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결국 제이미는 어떤 결손이나 결핍에 의한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사회제도와 교육의 방향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범죄를 저지른 미성년자인 아이가 "자신의 행위를 이해하는 것"을 "이해하는 작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다
다시 말해
행위의 주체인 소년이 자신을 이해하는 것,
많은 어른들(부모, 교사, 경찰, 심리학자 등)이 소년의 이해를 이해하는 것
그래서 심리학자와 제이미의 대화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판단이 아닌 이해의 맥락에서 우리는 청소년에게 질문을 던져야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들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그들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 "할 수 있도록 그들의 말과 우리의 말을 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왜 "라는 질문을 가장한 질책이 아니라 "어떤 마음"인지 그들의 분노와 감정을 일단 들어야 한다
소년이 여성을 욕망하는 동시에 혐오하게 되고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했던 소녀가 온라인 괴롭힘의 주동자가 되는 현실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아이들을 교화(?)시킬 목적의 동영상 몇편 틀어주는 창체시간으로는 절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특정 이슈에 대한 교육-예컨대 다문화, 학폭, 장애인식, 성폭력예방,딥페이크 등등-을 면피용으로 남발할 것이 아니라 "진짜" 인간에 대한 존중과 이해의 교육과정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교육 기관이 남발하고 조기교육 열풍으로 번졌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