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우리는 서로에게 글쓰기 페이스 메이커가 되기로 했다!
작년 이맘때쯤 나에게는 '어른' 제자가 생겼다.
나와 그녀의 만남은 2008년 신규 2년차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38선 휴게소'를 지나며 진짜 북한으로 가는 거 아니야 놀랬던 기억의 첫학교는 말만 경기도지 실질적으로는 '강원도' 턱밑이었다.
우리는 철원의 날씨를 보며 옷을 꺼내 입었다.
관사 생활을 해야 했던 우리는 '라떼는 말야'의 전형적인 레파토리가 절로 나올만큼 찐 전우애 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20여년 동안 여러 학교에서 많은 동료 교사를 만났지만 여전히 오래오래 관계를 이어오는 동료는 첫학교에서 만난 이들이다.
그런데 어쩌다 그녀는 동료에서 나의 '제자'가 되었는가?
그 시작은 정말, 우연히, 일어났다.
열혈 교사인 그녀는 논문을 쓰고 있다고 했고, 지도 교수에게 내용이 아니라 문장이 어법적으로 맞지 않음을 지적받았다며 민망해 했다.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다 첫째와 시작한 책읽고 요약하기 활동 노트를 보여주게 되었는데, 눈을 반짝이며 그녀는 말했다.
"이거 나도 해도 돼?"
나는 알고 있다. 그게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가를.....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특히 배움의 크기가 커지고 나름의 자리 혹은 위치에 서게 될 때, '모른다'는 것 혹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다. 아니 남들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다.
'아~~ 그거요. 들어 본 것 같아요' 라며 얼버무리고, 화제를 돌린 경험이 나에게도 분명 있다.
그런데 그녀는 정말 진지하고, 간곡하게 나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나도 글을 잘 쓰고 싶어!"
그렇게 우리는 글쓰기 수업의 첫발을 얼떨결에 내딛었다. 우리 아들과 똑같은 책으로 일주일에 한 챕터씩 문단별로 내용을 요약해서 제출했다. 이 책이 얼마나 무지막지한가 하면, 한 챕터의 양은 1장~1장반 정도이지만 이것이 무려 100강이다. 다 끝내려면 2년은 걸린다.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미하게 끝내는 일이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가.
더구나 어른이 되면 우리의 핑계는 갈수록 많아지고 합리화의 기술도 늘어간다.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우리는 지금도 글쓰기로 연결되어 있다.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과제를 몰아내기도 하고, 뒤로 미루기도 하는 이 학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을 제출하고 있다.
지금은 우리 아이의 진도를 앞서나가며 49강을 제출했으며, 오늘은 우리집에 놀러와서 그간 책을 읽으면서 요약한 흔적을 나에게 자랑하는 "모범생"의 아우라를 풍겼다. 올해 이 책을 끝내고 우리 아이와 책거리를 거하게 하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어른제자'의 끈질김은 말해 뭐하랴.
그래서일까. 나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매주 한 편씩 피드백을 달면서 요약이 가진 힘을 느꼈다. 요약하기에서 중요한 전략이 무엇인지, 어떤 단계를 거쳐 성장해 가는지 그 과정을 제대로 '경험'하면서 학교 현장에서는 제대로 가르칠 수 없었던 '글쓰기'를 잘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사실, 이전까지 '요약'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책을 많이 읽고 깊이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저절로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가르칠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몫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나의 '어른 제자'를 가르치면서 깨닫게 되었다. 요약하기는 '훈련'을 통해 충분히 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그건 오히려 수영이나 피아노를 치는 일과 비슷했다. 누구나 오랜 시간 꾸준히 연습하고 다듬어 가면 시간과 노력의 힘만으로 실력이 좋아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녀는 40대에 글쓰기 훈련을 시작했지만 결코 늦지 않았다. 어차피 평생 글을 쓸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배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더 배우고 싶다고 했다. 몸이 힘들고 스트레스가 있을 때, 글을 쓰면 행복하다고 했다.
이보다 더 큰 글쓰기 예찬이 있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녀는 글쓰기가 가진 힘과 본질을 이미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그 맹목적인 글쓰기에 대한 사랑을 질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나의 '제자'라고 했지만 과연 내가 선생이고 그녀가 나의 제자인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이제 서로에게 '페이스 메이커'가 되는 것이다.
혼자서는 어느 속도로, 얼마나 달려야 하는지 막막하고, 그러다 그만할까 포기하고 싶어질 때,
옆에서 함께 달려주는 지지자 말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자신의 리듬을 찾고, 나의 체력과 속도에 맞는 글쓰기의 마라톤을 완주할 든든한 페이스 메이커!
올해 그녀는 책을 출간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 만큼 힘들고, 두렵고, 지쳤다고 했다. 왜 책을 쓴다고 했을까 수많은 후회와 자책이 이어진 시간도 건너 마침내 그녀는 책을 썼고 세상 밖에 내보냈다.
나는 또 주책없이 눈물이 난다.
그녀가 고군분투했을 문장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나와 함께 한 1년의 글쓰기 훈련이 극적인 성장은 아니더라도 글쓰기에 지지 않겠다는 의지는 붙잡을 수 있게 해 준 것 같아서 기뻤다.
이제 나도 앞장 서 걸어가는 그녀를 페이스메이커로 두고 속도를 좀 내보려 한다.
나의 목적지는 어디인지, 어떤 속도로 달려야 하는지 아직은 모호하지만 멈추지 않고 글쓰기를 하다 보면 방향이 보이지 않을까.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다는 것!!
오늘도 브런치에 'Monday Writting'은 거르지 않은 나 자신을 칭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