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 2학년 동안의 용돈은 33만 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용돈이다. 그땐 가능했다. 코로나 시절이었기 때문에 학교는 문을 닫았고 모든 수업은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 덕분에 교통비와 식비가 많이 나가지 않았다. 온전히 내 여가비로 사용하고 오히려 돈이 남아 저축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대학교를 입학하자마자 학원에서 조교 알바를 시작했다. 시급이 타 알바에 비해 높았고 비대면 수업으로 인해 시간이 많이 남아 알바를 많이 할 수 있었다. 꽤 많은 돈을 벌었고 용돈도 남는 마당에 알바로 번 돈을 쓸 일은 없었다. 모두 저축했다.
대학교 1학년이 끝나는 무렵 천만 원을 모았다.
단순히 돈을 모은 것이라고는 못한다. 그만큼 절약했다.
항상 엄마는 옷을 사 오면 입혀보고는 내게 얼만지 맞춰보라고 했다.
'세일하는 옷을 사 왔겠지'를 곱씹으며 옷의 정가에 가까운 가격을 불렀다. 그만큼 옷의 질이 좋았을 뿐 아니라 엄마를 뿌듯하게 만들어주는 나만의 화법이었다.
사온 옷의 가격은 대체로 3만 원을 넘지 않았다. 보통 지난 시즌의 옷들을 사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나는 학생 내내 옆에서 보고 자랐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보고 인터넷에 품번을 검색해 최저가로 구매하는 습관은 엄마에게서 비롯됐다.
하나의 물건을 사더라도 여러 가지 대상을 비교해서 가격, 질, 디자인 등 모든 것을 종합해서 구매했다. 그중에서 가장 비중 높은 평가 항목은 단연코 가격이었다. 가격이 비싸면 마음에 들더라도 포기했다.
더치페이
절약정신은 사회생활에서도 이어졌다.
토스와 같은 핀테크 어플이 성행하면서 계좌이체가 굉장히 쉬워졌다. 친구들과의 더치페이 문화는 나눠서 카드 결제하는 것에서 한 명이 계산하고 n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계좌이체해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한때 한 번에 결제하는 사람은 나였다. 댓 명이 술집에서 술을 진탕 먹는 날이면 영수증에 10만 원은 기본이었다. 계좌에 돈이 정도껏 있어야 결제할 수 있는 금액이었고 대부분의 지갑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한 번에 결제하는 사람은 돈을 받아야 한다. 나는 당연히 n분의 1, 그 단위가 1원이더라도 절삭하지 않고 그대로 요구했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서로 돈 문제가 생기지 않으려면 정확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코로나의 유행이 끝나갈 무렵 학교는 비대면 강의에서 대면 강의로 돌아섰다. 동아리에도 가입하고 친구들이 생기면서 다 같이 밥을 먹는 일이 잦았다. 한 명이 전부 계산하고 돈을 보내주는 문화는 동일했다. 다른 친구가 계산하더라도 돈을 보내주기 위해서 나는 금액을 외워두는 편이다. 분명히 보내줘야 할 돈은 13400원이었는데, 친구가 요청한 금액은 13000원이었다. 친구들마다 절삭의 기준이 달랐다. 십원, 백원은 너무 작은 단위라며 반내림해서 요청했다.
우선은 요청하는 대로 보내주었으나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꿋꿋하게 내 기준을 따라야 하는 것인지 혹은 친구들의 기준대로 내가 낮춰야 하는 것인지.
엄마는 백 원, 오백 원은 굳이 안 받아도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다섯 명에게 오백 원을 받지 않으면 2500원이다. 용돈 30만 원으로 사는 나에겐 가혹한 기준이었다.
생일선물
친구들의 생일을 챙기려고 했었다.
하지만 돈을 모아가는 입장에서 천 원, 만원이 아까웠다. 친구들에게 주는 생일 선물조차도 아까웠다.
물론 생일 선물은 주는 만큼 받는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기프티콘을 뿌리는 만큼 거두었다. 하지만 매 해 뿌리는 만큼 거둔다는 불확실성에 투자하기보다 안 받고 말지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어디까지 선물을 보내야 할까?'라는 고민도 있었다. 어디까지가 생일 선물을 줄 친구고 아닌지 헷갈렸다.
무뎌지는 절약정신
바깥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절약정신이 무뎌졌다.
커피를 마시고 싶어도 비싼 가격에 스타벅스는 가지 않았지만 가다 보니 발걸음이 스타벅스로 향했다. 매달 새로 나오는 음료들은 7천 원에 달하지만 스타벅스에서만 마실 수 있다는 특수성이 나를 이끌었다.
가끔 집중이 안될 때면 스타벅스를 갔다. 커피를 사는 것은 커피뿐만 아니라 내가 공부하는 공간과 시간을 사는 것임을 깨달았다.
군 복무 동안 내 일상은 멈추었다.
규칙적인 삶과 운동으로 입대 후 몸무게가 10kg 늘었다. 집에 있던 옷들은 길이와 허리가 맞지 않았다.
전역할 무렵에는 정말로 맞는 바지가 없었다. 옷을 사야 할 명분이 생겼다.
마침 ZARA에서 할인 행사를 해서 바지 4벌을 구매했다.
4벌은 총 14만 원이었다. 남들은 바지 4벌에 14만 원이면 싸게 구매한 것이라 하겠지만 하루에 이렇게 많은 금액을 지출했다는 것부터가 전의 절약정신은 사라졌다는 반증이었다.
모아놓은 돈의 단위가 커지면서 천 원, 만원이 작아 보이기 시작했다. 전이라면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했겠지만 이제는 편리함으로 바꾸기 위해 거침이 없어졌다. 필요하다는 핑계와 합리화에 불필요한 지출을 감행했다.
다달이 들어오던 고정수입이 사라지니 모아놓은 돈에서 용돈이랍시고 빼 쓰기 시작했다. 나이가 차니 부모님께 용돈을 부탁하는 것도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내 통장은 텅장이 되어 가고 있었다.
절약과 소비
형이 운동화를 사러 간다길래 같이 간 적이 있다. 형은 백화점이라 하더라도 마음에 든다면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운동화 두 켤레를 사는 데에 30분이 안 걸렸다. 나였다면 3시간이 걸렸을 터였다.
형은 비싸게 구매하는 대신 시간을 절약했다.
이런 논리를 배우고 나의 절약정신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하게 사려는 고집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사려고 하면 고민하느라 아파오던 머리가 조금은 편해졌다.
필요한 물건은 미룬다고 필요성이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불편함을 편리함으로 바꿔주는 물건까지 사는 것이 문제였다. 물건을 사고 싶은 욕망이 필요에 의한 것인지, 필요하다는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인지 구분가지 않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큰 금액의 물건도 거침없이 결제하는 나를 보며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와 절약의 중도를 찾고 싶다.
돈을 쓸수록 마치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줄어드는 잔고를 보고는 마음이 아프다.
물질적 부자가 된 듯하지만 마음에 가난이 든다.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행복하지 않은 부자가 무슨 소용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