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기념비적인 책이다.
자꾸만 책을 멀리하는 요즘, 매일 책 20쪽 읽기 습관을 시작했었다. 그리고 그 습관으로 읽어낸 책이 바로 '남한산성'이다.
둘째로, 나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읽고 이틀 지나면 등장인물이 헷갈렸다. 꾸며낸 내용이라는 점도 나에겐 흥미가 떨어지는 이유였다. 그래서 재미가 없었다.
그런 내가 소설을 읽기 시작한 이유는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를 읽으면서다. 이국종 교수는 책을 시작하며 본인이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를 좋아하며 너무 많이 읽어 본인의 필체도 김훈 작가를 닮아있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김훈 작가는 글을 어떻게 쓰길래 독자가 필체가 닮게 될 정도로 읽게 만들까. 이게 궁금했다.
골든아워를 읽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책을 읽고 있지만 영화를 보는 것같이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한 장면의 표현이 넓다. 스크린의 중심만 말하는 게 아니라 가장자리 점 하나까지 보여준다. 저자가 말한 내용이 독자는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런 책은 처음 읽어봤다.
그래서 '하얼빈'을 읽어보았다. 이국종 교수의 문체는 확실히 김훈 작가의 문체를 닮아있었다.
하얼빈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을 전후로 글이 전개된다. 마찬가지로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했다.
이토의 지도자적인 관점, 안중근의 살해와 의무 사이 종교적인 갈등, 우덕순의 조력자 역할까지 소설에서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라는 주요 사건을 제외하고도 여러 갈래의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다음으로 읽은 책이 바로 '남한산성'이다. '하얼빈'은 안중근이, '남한산성'은 인조의 삼배구고두가 연상된다. '칼의노래'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칼의노래'가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남한산성'을 읽은 후였다. 그래서 '칼의노래'가 아닌 '남한산성'에 먼저 손이 갔다.
남한산성을 가본 사람도 있고, 영화를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역사를 조금 공부했다면 인조의 삼배구고두 사건에 대해서는 상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간단히 배경을 소개만 해보자면, 조선에서는 명을 받들고 있었고 여진족은 오랑캐로 인식하고 있었다. 여진족이 세력이 커지면서 국호를 청으로 하고 황제에 즉위하면서 조선에게 조공과 명나라에 출병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조선이 거절하자 청은 병자호란을 일으켰고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여기까지가 배경이다. 청병들이 성 주위를 포위한 상태에서 조선 왕조는 겨울동안 남한산성에서 버티는 상황을 상상해 쓴 책이 바로 '남한산성'이다. 이후 조선은 버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청에 투항하게 되고 삼전도에서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찧는 삼배구고두례를 하게 된다. 원래 조공을 바치던 명을 내치고 오랑캐에게 절을 하고 머리를 찧었다는 점에서 치욕적이라고 해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부른다.
한 하늘에 어떻게 두 개의 해가 떠있을 수 있냐며 청군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김상헌과 대부분의 신하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청과 화친을 맺고 모셔야 한다는 최명길 사이의 정치적인 갈등은 소설 내내 계속된다. 그럼에도 김상헌과 최명길은 길에서 지나가다 만나면 절을 주고 받는다. 나의 의견에 죽도록 반대하는 사람을 조우했을 때, 상대를 인정해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작가는 두 인물이 역사적으로도 서로의 인격을 인정해주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소설에서 서날쇠라는 인물을 빼놓을 수 없다. 소설의 중심 줄기는 단연코 김상헌과 최명길의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서날쇠는 카메오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인조의 격서를 실려 성 밖으로 보내는 역할까지 수행한다는 점에서 영웅적 면모도 갖추고 있다.
서날쇠는 본래 대장장이로 천민에 속하지만 머리가 남달랐고 본인이 망가진 병기를 수리하겠다고 자청한다. 이후 김상헌은 날쇠를 인정하고 여러 방면에서 날쇠의 조언을 듣고 따르게 된다. 마지막으로 주변에 있는 각 지방 도서의 군들에 지원을 요청하는 임금의 격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기기에 이른다.
날쇠가 임금의 격서를 가지고 지원군을 요청하러 나갔던 일은 실제로도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계급 사회에서 아무리 전쟁이라는 상황을 빌려 생각해보더라도 천민에게 임금의 격서를 들려보내는 경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조선 왕조는 그정도로 실제로 인재가 없었던 것일까. 또는 천민의 능력을 인정하는 계급 사회의 균열이 생기고 있었던 것일까.
소설 내에서 인조는 대체로 심경을 드러내는 대사가 없다. 안밖으로 최명길의 목을 베어 청에게 보내라는 신하들의 소리에도 인조는 조용하게 최명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인조에게 최명길은 아주 무거운 무게추였을 것이다. 수많은 척화파가 이루는 무게에 최명길은 혼자 수평을 맞추어주고 있다. 인조만이 쓸쓸히 균형을 이루려 노력하는 최명길의 노고를 인지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정쟁이 커질까 말을 아낀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훈 작가는 인조의 침묵을 표현할 수 없었다고 회상한다. 소설 내에서 그 침묵은 과연 인조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독자로 하여금 계속 궁금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신하들이 최명길의 목을 베라고 할 때, 전투에서 많은 군사들이 죽고 패배했다고 보고를 들었을 때, 최명길과 김상헌이 언쟁을 벌이고 있을 때마다 그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좌절감, 분노 등 김훈 작가는 시시각각 바뀌는 감정과 심정을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독자는 읽으면서 더 많은 상상을 할 수 있다.
눈 쌓인 행궁 지붕 골기와가 햇빛에 반짝거려, 마치 갓 잡아올린 생선 비늘처럼 보였다. (p.230)
읽다가 새삼 김훈 작가의 표현력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반짝이는 눈 쌓인 기와 지붕을 생선 비늘같다고 표현했다. 일반인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비유라고 생각이 들었다. 전혀 다른 부류의 두 단어를 하나의 이미지로 결합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문장을 읽고 썼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김훈 작가의 글은 질리지 않는다. 하나를 두고 여러 비유를 들면 독자는 질려버린다. 비슷한 비유를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사용해도 역시 글이 재미없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눈 내린 지붕을 비유하는 정도로 자잘한 부분까지 비유를 하는 글임에도 쉽게 질리지 않는다. 오히려 자세해 마치 영상을 보는 느낌이 든다.
책을 읽고 '남한산성' 영화도 보았다. 알고보니 소설을 원작으로 찍은 영화였다. 그래서 소설의 흐름과 영화의 흐름이 같았고 중간중간 대사가 소설에서의 대사와 똑같았다.
인상깊었던 장면으로는 소설에서 김상헌이라는 등장인물이 있는데 왕이 남한산성에 입궐한 후 며칠 뒤 남한산성에 따라 들어가는 과정에서 강의 얼음길을 알려준 늙은 사공을 죽인다. 사공에게는 어린 딸아이 하나가 있었고 이 아이는 사공을 찾아 집을 떠나 궁으로 들어오게 된다. 인조는 어린 아이가 궁 밖에서 거닐다 들어왔다는 소식에 궁으로 아이를 부르고 김상헌은 이 아이가 사공의 아이임을 알게 된다. 이때 김상헌 역을 맡은 김윤석 배우의 표정 연기가 인상깊었다. 아이가 본인을 알아볼 것에 대한 걱정, 사공을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 등에 사로잡혀 인조가 질문하지만 듣지 못하는 장면이 뇌리에 남는다.
영화에서 최명길이 인조에게 새해에 청의 진영에 세찬을 보내자고 제안한다. 김류는 청에 화친을 제안하는 최명길을 믿을 수 없다고 반박하자 인조는 "영상이 직접가서 보고 오라"고 한다. 말만 청산유수인 신하들을 인조가 본보기로 참교육(?)한 장면으로 사이다 같은 장면이었다. 소설에서는 세찬은 보내지만 김류가 가지는 않는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소설의 내용을 담고자 하다 보니 중요한 내용만 추려서 각색했음을 알 수 있었다. 영화는 소설의 흐름을 잃지 않으면서도 장면의 순서를 믹스매치해 소설과는 다른 맛이 있었다.
'하얼빈', '남한산성', '칼의노래', '흑산' 등 김훈 작가는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는 소설을 많이 썼다. 암기의 과목으로만 생각되는 역사를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남한산성'은 비록 상상의 산물이긴 하지만 김상헌, 최명길, 인조 등의 실제 인물들을 기반으로 한다. 김훈 작가가 무작정 상상으로 작성하는 것이 아님은 소설 한 페이지만 읽어보아도 느낄 수 있다. 한 글자 한 단어 선정에 있어 많은 사전 자료 조사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역사 시간에 병자호란이 발발해 남한산성으로 인조가 피신했고 이후 삼배구고두례를 하며 투항했다고 암기했다. 역사는 그렇게 간단히 암기될 사건들이 아니였다. 현대 사회에서는 전기 난로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못해 고작 가마니로 산 속에서 추위를 버티는 모습, 지원군을 부르기 위해 전화기가 아닌 사람이 직접 가야 하는 모습들은 역사 시간에 알려주지 않는다. 비록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소설을 통해 당시 사람의 생활상을 이렇게나마 추측해보고 생각해보는 것이 진정한 역사이지 싶다.
김훈 작가가 역사 소설을 내주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축복받은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