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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옹다옹하다 Oct 02. 2023

고양이의 하악질

욕쟁이의 심리

 

 혼자 밥을 먹으러 갔다. 외로움에 기습당한 날이었다. 고독감은 예고도 없이 도둑처럼 찾아왔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었다. 저항할 수 없이 그런가 보다 하고 수긍해야만 했다.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한 쓸쓸함이 찾아오면 상실감과 동시에 허기가 따라왔다. 딱히 배가 고프다기보다는 음식이 주는 포만감으로라도 공허함을 채워야만 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먹어도 먹어도 정허한 마음은 메꿔지지 않았지만. 혼밥이 더이상 창피하거나 흠이 되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 식당이나 카페, 어딜 다녀도 혼자인 사람이 즐비했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독립적으로 변했고 관계는 간소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신으로 식당에 들어가기 싫어서 휴대폰의 연락처를 살폈다. 허물없고 막역하여 치부를 노출해도 될만한 사람을 찾았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았다. 몇 되지도 않을뿐더러 각자 가정과 사적 울타리가 있어서 부담을 주기 싫었다. 몇 분이세요. 한 명이요. 뼈해장국 하나 주세요. 점원의 물음에 쭈뼛거리며 답했다. 이제 팔부 능선을 넘었다. 사실 먹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혼자만큼 좋은 조건도 없었다. 맞은편에 현장 근로자로 보이는 한 남성이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남자는 글라스에 소주를 가득 따라 마시고 있었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는데, 울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문득 알 수 없는 동지애 같은 것이 꿈틀거렸다. 맥주 한 병만 주세요. 먹지도 못하는 술을 주문했다.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마음의 갈증이 딱 한 모금만큼 해갈되는 것 같았다. 젓가락으로 돼지 등 뼈에 붙은 살을 정성껏 발랐다. 손바닥이 아렸다. 잠시 후 맞은편의 남성이 점원과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불만을 점원에게 토로했고 점원은 수긍하지 않았다. 순간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입에서 걸쭉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욕이 말하는 사람을 천박하게 꾸며냈다. 경미한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거친 말이라서 현실과 괴리감이 느껴졌다. 듣는 이를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남자는 성공했다. 왜 욕을 하고 그러세요. 점원도 따지면서 승강이가 커질 기미가 보이자 뒤에서 보고 있던 사장이 나타나 중재했다. 남자가 불같이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욕을 듣는 것은 기분 나빴고 다툼을 보는 일은 조마조마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아저씨 왜 화났어? 마음이 가난해서 그래. 옆자리 꼬마의 물음에 엄마가 답했다. 욕하는 사람에게는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자신을 충분히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심리가 깔려 있었다. 어떤 사람은 불만을 해결하기 어려울 때 다른 이를 비난하거나 비하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문제 해소를 위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 기제가 발동하는데, 그 수단이라고는 겨우 욕설밖에 없는 것이었다. 잘잘못을 떠나 남자에게 진한 연민을 느꼈다. 개운하지 않은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남자의 남루한 마음 행색이 자꾸 아른거렸다.  


 욕쟁이로 불리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가능하다면 과거의 행동과 말, 썼던 글은 모조리 찾아내 불구덩이에 던져 넣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욕으로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던 시기가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던 해, 감당할 수 없는 자유 앞에 미성숙한 신입생은 방종의 제물이 되기 딱 좋았다. 학기 초 하루도 거르지 않는 새로운 만남과 술자리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충청도에서 올라온 나는 과 내에서 일명 웃긴 놈, 엉뚱한 놈으로 통했다. 그걸 또 즐겼다. 욕은 나를 도드라지게 했다. 충청도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의뭉스러운 말발은 나를 개성 있게 포장했다. 그 와중에 아기자기하게 던지는 욕이 나를 센 놈으로 꾸며준다고 생각했다. 마치 부러 불량스럽게 보이기 위해 담배를 배우던 중학생처럼. 2학년 되어 후배가 생기자 센 척은 더욱 가관이 되었다. 당시 음악 동아리에 속해 있었는데, 간혹 후배들을 소집해 얼차려를 시킬 정도로 규율이 엄격했다. 겨우 몇 개월 먼저 태어난 주제에 후배 앞에서 인생을 논하며 어른 흉내를 냈다. 그때 쓰던 화법과 유머의 방식은 아주 못되고 고약했다. 타깃이 되는 후배나 동기의 흠집을 우스꽝스럽게 꾸며 놀림거리로 삼곤 했다. 효과는 탁월해서 딱 한 명만 빼고는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을 수 있었다. 그 한 명에게는 찝찝한 상처를 남기고 말았겠지만. 2학년 첫 학기를 맞아 치악산으로 엠티를 떠났다. 처음 후배가 생겼다는 흥분감에 들떠 주둥아리는 쉴 새 없이 가벼운 말을 남발했다. 씨팔, 존나, 병신이란 단어가 없이는 한 문장도 구사할 수가 없었다. 둘째 날 행사의 말미에 롤링 페이퍼를 돌려가며 서로에게 소감을 남겼다. 덕분에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탁월한 유머 감각으로 앞으로도 후배들 웃기는 일에 매진해 주세요. 욕만 조금 줄이시면 완벽하실 것 같습니다. 막 복학한 선배가 동갑인 여자친구를 처음 데리고 왔다. 이후의 기억은 없지만 그녀는 꽤나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았다. 저급한 욕쟁이를 향한 충고치고는 교양 있고 완곡한 표현이었으니까.


 날카로운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거실로 나가 보니 다옹이가 아옹이를 괴롭히고 있었다. 잠자코 있다가 뒤를 보이면 달려들어 아옹이의 포동포동한 등허리를 물었다. 아옹이는 용맹하게 맞서 싸우지 못하고 배를 드러낸 채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아옹이가 드잡이질을 당할 때 내는 소리는 듣기 민망할 정도로 불쌍했다. 만약 사람 말로 통역하면 '하지 마' 정도 될 것 같았다. 그래도 다옹이의 공격이 계속되면 입을 벌린 채 거칠게 공기를 내뿜으며 하악질을 했다. 그것도 통역하면 '제발 하지 말라고, 이 새끼야' 정도 되려나. 고양이의 하악질을 생각하면 대부분 화를 내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무서워할 때가 많았다. 낯선 동물이나 사람을 맞닥뜨렸을 때 일부러 몸을 부풀리고 큰 소리를 내서 위협하듯 행동했다. 아옹이 입장에서는 자신을 위협하는 공격에 대한 방어 수단이 초라하기 짝이 없는 하악 소리밖에 없다는 사실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글라스에 소주를 가득 따라 마시던 남자의 욕이 그런 것이었을까. 세상이 던지는 맹렬하고 가차없는 공격 앞에서 배를 깔고 독한 욕을 내뱉던 남자. 차마 피 터지게 맞서 싸우지도, 그렇다고 꼬리를 내리고 항복하지도 못했던 욕쟁이.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형도 시인의 <기억할 만한 지나침>을 오마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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